감자 - 열매맺는나무

감자

2013년 5월 22일

 

길었던 겨울, 그리고 꽃샘 추위. 봄이 오나 싶더니 어느새 여름에 밀려나려는지 볕에 서면 땀이 배어 난다.

요맘때쯤 되면 새로 나와 우리 입을 즐겁게 해주는 햇 감자. 감자 국, 감자 전, 감자 수제비… 많기도 하다. 강원도에 가면 감자 송편까지 있으니 감자로 못하는 음식은 또 뭘까. 감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이 1824년인가 1825년이니 19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감자 요리가 이렇게 다양한 것을 보면 그때도 우리 입맛에 잘 맞았나 보다. 

 

이런 감자를 싫어하는 분이 계셨는데, 바로 시아버님이셨다. 일제 강점기와 6.25동란을 거쳐 어려웠던 시절, 밥보다 많이 드셨던 까닭에 감자는 보기도 싫어하셨다. 늦가을에 결혼해서 처음 맞는 초여름 어느 아침 , 어른들을 뵈러 갔던 시댁에서 진하게  우려낸 멸치 국물에 감자 국을 끓이려다 어머님의 귀띔으로 급하게 다른 국으로 바꿔 올려드렸던 기억이 있다. 그러니  감자 수제비는 당연히 제일 싫어하셨을 거다. 

 

 

 

   1882, Vincent Van Gogh(1853-1890)

캔버스에 유채, 82 x 114cm, 암스텔담 반고흐 미술관, 네덜란드

 

 

감자가 꼭 없는 사람들만의 음식이었으랴마는,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귀하다 든지 너무나 가난하다 든지 해서 감자를 먹을 수 밖에 없던 사람들은 서양에도 있었다. 그 자취를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이라는 작품에서도 찾을 수 있다.  

 

천장에 매달린 흐린 램프 불빛 아래 감자와 차를 나누는 탄광촌 사람들.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것이 미술 일진대, 일견 이 그림에는 아름다운 사람도 없고 아름다운 빛깔도 없다. 해바라기에서 보았던 불타오르는 정열도, 별이 빛나는 밤에서 보았던 밤 하늘 별의 움직임도 없다. 칙칙하고 어둠침침한 색이 화면에 넘친다. 그럼에도 이 그림이 정다워 보이고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한 번 보고 또 보자. 그래. 그래도 모일 수 있다는 게 어딘가. 고된 하루 일을 마치고 한 지붕 아래 모여 나눌 음식이 있다는 게 또 어딘가. 고단한 현실이지만 감사가 있기에 불거진 손 마디와 굳어버린 표정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엔 평온함이 있다. 무표정해 보이는 얼굴, 입꼬리에 슬쩍 흘린 미소에 비치는 안분자족의 그림자. 그래서 이 그림은 아름답다.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