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퍅케 됨을 면하라

2017년 10월 9일

강퍅케 됨을 면하라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멀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히브리서 3:12~14

 

강퍅

강퍅. 굳셀 강剛에 괴팍할 퍅愎을 쓴다. 쓰기도 어렵지만 읽기도 어렵다. 성격이 까다롭고 고집이 센 것을 말한다. 도무지 뉘우치지 않는 돌 같은 심령상태로 성경에서는 ‘목이 곧다’로 종종 표현되기도 한다 1

킹제임스 성경에는 간단하게 ‘be hardened’라고 나와있다. 역시 돌 덩이 같이 딴딴한, 완고한 상태를 말한다.

마음이 굳어진 이런 상태에선 남의 말은 듣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다. 감동도 없고 안식도 없는, 인격적으로 단절된 상태다. 살았으되 살았다할 수 없다.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 상태다.

문제는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이런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깨어 기도하고 서로 권면해야 하는 이유다.

 

오늘, 피차 권면하여, 강퍅케 됨을 면하라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서로 권면2하는 것은 다음날로 미룰 수 없다. 또 거를 수도 없다. 오늘, 지금 당장, 매일매일 해야하는 일이다.

피차 권면하여

비박이란 말을 아는가? 산행에서 텐트 없이 노상에서 밤을 보내는 것을 비박이라고 한다. 창피하지만, 난 이 말을 非泊인줄 알았다. 알고보니 biwak3, bivouac4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웬만한 곳에서는 침낭에 들어가 별을 보다 자는 낭만을 누릴 수 있지만, 해발 8천미터가 넘는 곳에서는 다른 이야기다. 생명이 걸린 일이다. 잠이 들면 죽는다. 영화 히말라야가 그렇지 않은가. 잠들지 않으려면 서로 잠들지 않도록 권면해야 한다.

구역모임 같은 소모임이 바로 이런 역할이다. 꼭 구역예배가 아니라도 좋다. 친구나 가족끼리 서로 기도하고 권면하는 것은 세상에 휩쓸려 잠들지 않고 강퍅하게 되지 않는 구조활동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

처음 가졌던 확신을 끝까지 견고히 잡아야 한다. 그러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된다. 참예한 자는 partaker를 말한다. 공유하는 사람, 생사고락과 은혜를 서로 나누는 사람을 말한다. 천국에 참예하는 자가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매일매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억지로 하는 사람에게는 의무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partake란 공동의 축복이나 특권을 함께 누리는 것이다.

매일매일이 승리의 행진이고, 매일매일이 천국잔치다. 오늘도 그렇고 천국 가서도 물론 그렇다. 하루하루가 모두 감동이고 안식이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5해야하는 것이다.

강퍅케 됨을 면하라

[참고글]

[관련글]

Footnotes

  1. 라이프성경사전 강퍅하다
  2. exhort-남에게 열심히 권하다, 강력히 권고하다. 타이르다. 훈계하다
  3. biwak(독일어) 야영, 노영 露營
  4. bivouac (프랑스어) 야영, 야영지. (영어)특히 등산 때 텐트를 치지 않고 만든 야영지, 텐트를 치지 않고 야영하다.
  5. 데살로니가전서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 Ann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것이 자연스럽게 되면 좋겠지만. 서로 권면함으로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는 친구가 곁에 있으면 좋겠네요. 저도 그런 친구가 되었으면 하고욤 ㅎㅎ

    • 춥고 산소 희박한, 잠들면 죽는 그런 고산지대에서 ‘야, 자냐?’하고 서로 깨우는 장면을 우리 생활에서 서로 권면하는 것에 대입해보니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요. 내가 과연 그렇게 절실하게 옆사람을 깨웠던가. 죽어가게 놔둔 것은 아니었나 반성 많이 했습니다. 아무래도 이 블로그가 앞으로는 그렇게 깨우는 역할을 많이 담당해야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 과정에서 Ann님도 좋은 친구 해주시기 바라마지 않습니다.
      고맙습니다. ^^

  • “마음이 굳어진 이런 상태에선 남의 말은 듣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다. 감동도 없고 안식도 없는, 인격적으로 단절된 상태다. 살았으되 살았다할 수 없다.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 상태다.

    문제는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이런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내 생각만이 옳고, 나만이 진리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더 데레사 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육체적인 고통으로 죄를 속죄한다는 괴상한 신학을 갖고 “그 고통 예수님께 드리세요.” 라고 하면서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은 고통속에 죽어가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정작 자기 자신은 심장에 문제가 생기자 유럽에서 편안하게 수술을 받고 최신 의료혜택을 다 받은. 왜? 자기도 진통제 없이 수술을 받지? 고통이 죄를 속죄한다며?

    하느님이 우리의 고통을 즐기시는 분이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내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들에게는 엄격한 사람들. 하다못해 예수께서 그렇게 싫어하던 바리사이파 사람들도 그런 이중잣대를 갖고 살지는 않았습니다.

    • 테레사 수녀가 그런 분이었던 줄은 미처 몰랐네요.
      언행일치, 스스로에겐 엄격하고 남에겐 관대한 분들이 존경받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겠죠. 저도 객관적인 눈으로 보면 과연 어떨지… ㅠ
      날마다 죽노라는 고백이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라는 말씀에는 이런 것도 포함되겠죠. 매튜님도 저도 날마다 죽고 다시 태어나며 넉넉히 이기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