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여행 1 – 안압지, 대릉원, 천마총, 월성

2013년 8월 17일

7월 31일 부터 8월 3일 까지 3박4일 동안 경주 여행을 하고 왔다. 다음은 미처 올리지 못한 사진들. 여행기 쓰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올리게 되었다.

 

 

안압지

 

안압지는 원래 밤풍경 감상목록에 들어 있었지만, 숙소에 짐을 풀고 심심해져버린 까닭에 과감하게 일정을 변경하고 땡볕관람을 하게 되었다. 용감하게 배낭메고 뚜벅이로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왔다. 

옛날 수학여행 때 보았던 것과는 정말 많이 달라졌던 안압지 풍경.

 

 

월지(月池; 안압지의 원래 이름) 바닥에서 발견된 일종의 주사위. 사진에서 보는 것 처럼 여러가지 명령이 쓰여있어 술자리에서 던져 나오는 행동을 하도록 하게 되어 있다. 조금 응용하면 연예 프로그램에서 사용하기에도 손색 없어 보였다.

 

 

언덕 위 느티나무 고목. 운치 있어 보이는 것이 정자보다 명당이다. 이 나무는 얼마나 오랜 시간을 이 곳에서 보냈던 것일까.

 

 

 

 

월성(月城) 주변 연못에 심긴 연꽃. 키가 좀 더 컸다면 더욱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을 텐데 연꽃과 눈높이가 비슷해 많이 아쉬웠다. 

 

 

 

대릉원(大陵園)

 

 

천마총으로 유명한 대릉원은 2000년에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경주역사유적지구 다섯 곳 가운데 하나 이다. 입구에서 천마총으로 가는 길에 미추왕릉이 나오는데, 나중에 나오다 볼 생각 하지 말고 미추왕릉부터 먼저 보고 나서 천마총으로 가야한다. 나오는 길에 다시 돌아가서 보는 것은 구조상 좀 힘들다. 

 

 

 

대릉원 입구쪽 경주빵집. 사실 이곳이 원조 경주빵집은 아니다. 진짜 원조는 황남빵으로 경주역 맞은편 골목에 있다. 가게는 크지만 먹어보려는 관광객들이 번호표 받고 밖에까지 줄을 늘어서 있으므로 인내심 없는 분들은 신경주역에 마련된 황남빵 판매소를 이용할 수도 있다. 대전에서 성심당 미처 들리지 못한 사람들이 대전역에서 튀김 소보로나 부추빵을 사 먹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신경주역에서 먹은 햄버거[footnote]신경주역 주변은 허허벌판이고, 역사 안에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라고는 기소야와 롯데리아 두 군데 밖에 없다. 신경주역 주변 맛집을 검색해보면 입을 모아 ‘기소야’라고 하는 데는 맛때문이라기 보다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데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겠다[/footnote]로는 조금 부족한 느낌이었기에 이곳에서도 경주빵을 먹었다. 진열장 앞에 맛볼 수 있게 시식용 빵들도 바구니에 담겨 있었고, 시원한 차와 의자도 놓여 있어 기분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작은 배려 하나가 경주 전체에 대한 인상을 좋게 했다. 갓 만들어 낸 경주 빵은 비단 원조가 아니어도 환상적이었다. 찰보리빵까지 두 상자를 사서 봉투에 들고 다니며 먹었다. 찰보리빵은 도라에몽에 나오는 도라야끼[footnote]1. 징을 닮은 빵 : 도라=징, 야끼=구이 2. 100년전, 서양식 팬케이크에서 응용한 간식 3. 도라에몽이 좋아해서 도라야끼. 등등 도라야끼라는 말의 유래에 관한 설(設)은 많다.[/footnote]와 상당히 비슷했는데 그것보다 촉촉하고 말랑말랑 쫄깃한 느낌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대릉원 입구에서 미추왕릉, 천마총 쪽으로 가는 길. 좌우로 펼쳐진 송림이 울창하다.

 

 

경주엔 배롱나무 꽃이 한창이었다. 시내 가로수도 배롱나무, 여기저기가 적자(赤紫)와 뇌록(磊綠)의 향연이었다. 아무래도 경주는 배롱나무로 기억될 것만 같다. 

 

 

천마총 입구. 옛날 수학여행이 생각났다. 더운 날씨였는데도 사람을 피해가며 사진 찍기란 무척 어려웠다. 

 

 

 

 

 

 

첨성대와 월성

 

수학여행때 본 첨성대는 정말 허허벌판에 달랑 첨성대 하나였다. 코 앞까지 버스도 들어갔었던 것 같다. 지금 주변은 잘 단장되어있고 조명시설도 잘 되어 있어 밤에 보면 멋진 곳 중 하나이다. 

 

 

 

 

월성 안 가득 피어있는 코스모스. 옛날부터 이곳은 코스모스로 유명했다고 한다. 신라문화제라는 축제도 성대하게 열렸었고, 이곳에서 잠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남편은 첨성대 코스모스를 그려 처음으로 상장이라는 것을 받았다고. 월성은 커다란 공원처럼 정비되어 있다. 워낙 넓은 곳이라 특이하게도 자전거를 대여해준다. 많은 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월성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안압지, 대릉원, 첨성대, 월성 등을 따로 구분해서 쓰긴 했지만, 사실 뚝 떼어 둘 만큼 먼 곳은 아니다. 오히려 한 덩어리 처럼 시내 한 복판에 붙어있는 곳이다. 길만 건너면 국립경주박물관이고, 다시 북쪽으로 길을 건너 올라가면 황룡사, 분황사가 있다. 경주는 도시 전체가 이천년의 역사가 담긴 박물관이다. 유럽의 문화재들이 아직까지 많이 남아있는 것은 석조구조물들이 많아서 이고, 신라를 비롯한 많은 건축물이나 문화재들이 제 모습을 간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나무로 만들어진 것들이 많아서였다. 잦은 외침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문화재들은 거의 나무나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들이거나, 그 속에 담겨진채 보존되어 있는 것들이 많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경주는 고분(古墳)의 도시이기도 하다. 마치 구릉지 처럼 시 안팎으로 자연스럽게 펼쳐져 있다. 이 옛날 무덤들을 모두 통털어 고분이라고 한다. 왕이나 왕비의 무덤이라고 확실시되는 것들은 능이라고 하고, 확실하지는 않지만 특별한 유적이 발견되거나 한 무덤을 총(塚)이라고 한다. 나머지는 모두 분(墳)이다. 고구려나 백제의 무덤이 도굴된 것들이 많은데 비해 신라의 유물들은 그 부장품의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도굴된 고분이 적다. 그 이유는 돌을 쌓아 만든 돌무지덧널무덤이 많기 때문이다. 일단 입구가 없다. 도굴하기 위해서는 안으로 파고 들어가야 한다. 설사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파낸 이상의 흙과 돌이 쏟아져 내리기 때문에 도굴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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