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든다는 것, 그리고 입말교육

2013년 6월 28일

나이가 들면  말이 많아지고 누군가를 가르치려 든다고 사람들은 곧잘 말 한다. 그리고 그것을 늙어가는 증표로 삼는다. 중장년에 접어드는 사람들 스스로도  ‘말을 줄이자, 남을 가르치려 들지 말자’고 다짐하곤 한다. 말하고 누군가를 가르치려는 것 자체가 남에게 끼치는 민폐로 여겨지고 있는 느낌이다. 

 

 

@Irish-Eyes/morguefile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인류가 오늘날 이만큼 발전하게 된 것은 먼 조상때 부터 쌓인 경험과 지식, 그리고 지혜를 후손에게 전달하여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 역할을 담당하기에는  나이 어린 사람보다는 역시 경험 있는 연장자가 적합했을 것이다. 그들은 후배들에게 사냥하는 법, 열매를 채취하는 법, 농사짓는 법, 이성을 사랑하고 관계를 유지하는 법, 아이를 낳고 기르는 법, 부모에게 효도하는 법, 착한 일을 하면 상을 주고 나쁜 짓을 하면 벌을 주어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법 등등의 오만가지 것들을 가르쳤을 것이고 젊은이들은 생존과 안락함, 효율적인 생활을 위해 겸손히 배웠을 것이다. 교육기관이 만들어지기 전이나 그 후에도 가정이나 사회에서 행해지던 그러한 교육은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필수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오늘날엔 나이든 사람의 그러한 역할을 반기지 않게 되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행해져 유전자에 입력되어버린 연장자의 ‘가르치기 스킬’은 누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느 연령대가 되면 자동적으로 발현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반기지 않는데 기능은 저절로 실행되니 서로 껄끄러워 지는 것은 당연할 터. 사실 나이든 사람의 입장에서도 당황스러울 것이 스스로 원하지 않아도 저절로 시전이되니 억제하기도 쉽지 않고 ‘내가 이제 늙은 것인가’싶어 씁쓸하기도 할 것이다. 

 

 

 

@kconnors/morguefile

 

 

언제부터, 그리고 왜 연장자의 가르침을 불편하게 여기게 된 것일까?

그 원인으로 우선 교육기관이 전체 교육중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진 것을 들 수 있겠다. 교육기관이 따로 없었을 때에는 경험 많은 연장자의 가르침이 유일한 교육이었지만 점차 그 역할을 교육기관이 떠맡게 되어 연장자의 가르침은 그리 필요없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둘째로는 교육내용의 변화를 들 수 있다. 배울 것들의 범위가 넓어지고 깊어짐에 따라 경험과 그에 따른 지혜만으로는 부족하게 되었고, 이는 전문적이고 고등한 교육기관에 대한 의존을 심화시키고 연장자의 경험은 비 전문적이고 상대적으로 수준이 낮은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세째로는 가족형태가 바뀐 것도 그 이유이다. 삼대 이상이 모여살면 위계질서 없이는 생활이 어렵다. 어른의 이야기에 순종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고 그것은 습관처럼 굳어진다. 하지만 부모-자식으로 구성된 가족, 더구나 외동이로 구성된 가족에서는 더 이상 대가족에서 볼 수 있는 위계질서는 물론, 형제간에 형성되는 종류의 위계질서도 경험해 보지 못하고 성인이 된다. 부모와의 관계도 옛날과 비교하면 거의 친구관계나 다름 없다.  연장자의 말씀에 순종하기는 커녕 들을 기회도 없는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갑자기 학교라는 사회를 경험하게 된다.  군대에 가게 되고 직장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다 또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는다. 요즘엔 1인 가구 비율도 상당하다. 심리적으로, 습관적으로 이제 사람들은 누군가의 가르침에 조용히 귀 기울이기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고 생활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연장자의 입말교육은 더 이상 필요없는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 하면 그렇지 않다.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와 역할이 모두 변화된 요즘이야 말로 더욱 연장자의 입말교육이 가치를 발휘할 때이다. 

 

첫째, 자연스럽게 듣기, 말하기 교육이 이루어진다. 입말교육은 쓰고 읽는 교육이 아니라 말 그대로 입으로 전하고 귀로 듣는 교육이다. 듣기교육의 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강조되고 있다. 연장자의 입말교육은 자연스럽게 듣기능력을 키워준다. 또한 논리적으로 말 할 수 있는 능력이 길러진다. 어른에게 질문하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려면 감정적, 단답형 언어가 아니라 조리있게 말해야 함을 깨닫게 되고 따라서 생각하는 힘과 논리적으로 말하는 능력을 기르게 된다. 

 

둘째, 학교나 학원에서는 가르치기 어려운 비학문적 요소를 담당할 수 있다. 연장자의 입말교육은 원래 학문적 지식 보다는 경험에 의한 지혜를 교육하는데 최적화 되어있다.  필자가 예전에 아이를 업거나 유모차를 밀고 나가면 온 할머니들이 모두 육아전문교사가 되곤 했다. 그분들은 언제나 자발적으로 가르쳐주고 도와줄 준비가 되어있는 듯 보였다. 어린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고 ‘떼끼 놈들, 어린 녀석들이 벌써부터 담배를 피우나.’하고 슬쩍 호통을 치시면 아이들은 뒷목을 문지르며 씩 웃었다.’죄송합니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흡연은 나이가 어리건 많건간에 개인적인 문제로 건강이 나빠지더라도 그것은 본인 책임이니 남의 건강에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알아서 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못피우게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 아이를 이미 남의 아이가 아니라 그 순간 만큼은 자기 자식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전 세대 어르신들에게는 네 아이, 내 아이가 아니라 ‘우리 아이’라는 개념이 있기에 가능하다. 

 

셋째, 비약이라고 생각되기도 하겠지만 많은 청소년 문제가 해결되고 나아가서는 범죄율도 낮출 수 있다. 부모들은 맞벌이로 바쁘다. 교육은 학교가 맡아주겠거니 하지만 몇 시간 뿐이다.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하지만 연장자들이 모두 입말교육 전담 교사라고 생각하면 그 사각지대는 대폭 줄어든다. 

 

 

 

 

 

넷째, 노인문제를 줄일 수 있다.  해마다 늘어나고 평균수명도 나날이 길어지고 있다. 노인이 흔해지면 노인세상이 되겠거니 생각하지만 흔한 것은 본디 대접 받기 어려운 법이다. 앞으로 대중교통수단에 노약자보호석 대신 젊은이, 임산부 보호석이 등장할 수도 있다. 우스개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이런 추세라면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이렇게 늘어가는 노인인구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문제거리로 전락시키지 않으려면 활용해야 한다. 지금도 몇몇 어르신들은 어린이 교육기관에서 ‘옛날이야기 해 주는 선생님’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야말로 구전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많은 노인 인구를 몇 안되는 청년인구가 봉양하기는 어렵다. 노인도 자립능력을 갖춰야 한다. 젊은이들과 아이들이 노인들의 말에 귀기울이는 것은 노인인구의 경제적 자립도를 높일 뿐 아니라 자존감을 높여 심리적 안정을 꾀할 수 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의 말을 쓸데없는 참견, 노화의 증거 등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어 반대로 생각해보고자 연장자의 입말교육의 좋은 점, 가치, 필요성 등을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여기엔  전제조건이 있다. 

 

첫째, ‘어른이 어른다운 어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글을 쓰는 나도 몇 년 후면 분명 어르신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그때 내가 나답지 못하고 어른답지 못하면 자신있게 다른 사람들에게 조언할 수 있을까?

 

둘째, 어디까지나 참견이 아닌 조언이어야 한다. 많은 이들이 연장자의 말을 귀찮거나 불쾌한 것으로 여기는 이유가 원하지 않고 필요하지 않은데 지속적으로 같은 이야기를 꾸준히 강요하기 때문이다. 적절한 때 적절한 조언은 감사를 불러온다. 

 

셋째, 어리석은 자에게는 조언하지 말아야한다. 어리석은 자는 적절하고 꼭 필요한 조언을 들어도 받아들일 줄 모르고 오히려 반감을 갖고 해꼬지하려한다. 예로부터 미련한 자의 귀에는 지혜로운 말도 업신여김 거리라고 했다. 

 

 

 

 

 

 

세상의 모든 아이를 내 아이, 우리 아이로 생각해 보듬어주고, 어르신의 말에 귀 기울이는 그런 세상이 오면 참 아름답겠다. 그런 세상은 비가 와도 환하고 어려운 일을 당해도 행복하고 용기를 잃지 않을 수 있는 행복한 세상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