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부르짖으라 – 안식을 위한 기도

2017년 8월 15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 안식을 위한 기도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혔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다시 임하니라. 가라사대,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으로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 예레미야 33:1~3

 

1. 내게 부르짖으라 -일을 행하고 이루시는 하나님

1) 천지창조와 구원의 하나님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할 대상은 물론 하나님이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고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가 부리짖어 기도드릴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실까? 어떤 하나님이시길래 우리에게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실까?

2절에 보면 그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지 스스로 밝히고 계신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으로 여호와라 하는 자라고 하신다. 이 말씀은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말씀과 2장 1절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하신 천지창조와 연결된다.

일을 만들어 행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다.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로마서 4:17)이시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다 이루었다“(요한복음 19:30) 하셨을 때 그 절정을 이루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시는 것이다.

 

2)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처음과 끝 뿐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모든 일들,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분이시다. 예레미야 33장 4절~9절 말씀은 그런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는 말씀이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편 127:1)’라고 했다. 갈대아 군대를 막으려는 것 같은 인간의 노력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면 소용이 없다.

 

2.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1) 갈급하면 부르짖게 된다

마음이 간절하면 자연스레 부르짖게 된다. 어릴적, 괴로운 마음에 아주 간절히 기도드릴 때면 정말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부르짖어 기도하곤 했다. 그런데 가장 친밀하게 의지했던 분이 할머니였는지 그럴 때면 우습게도 ‘할머니~’하는 말이 먼저 나오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우리집 최고 권력자는 할머니였고, 할머니는 늘 나와 함께 하는 존재였다. 할머니에게 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곤 했기에 급하면 할머니부터 찾는 것이 버릇이 되어 그랬나보다. 그때마다 어머나 놀라며 다시 아버지, 하나님을 불렀고 오래지 않아 그런 습관은 고쳐지게 되었다.

그렇다. 아이가 할머니 품에 안겨 모든 것을 털어놓고 의뢰하듯이 우리는 갈급하게 되면 저절로 하나님께 부르짖게 된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내 연약한 점, 갖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하나님 앞에 쏟아놓으면 마음에 평화가 오고 힘을 얻게된다. 그 다음엔 장성한 군인처럼 그 문제와 마주해 씨름하고 투쟁하는 기도를 하게되는 것이다.

 

2) 소리내서 하는 기도는 한국식(Korean style)이라고?

설교시간에 국제 모임에서 통성기도를 할 때 종종 ‘오늘은 한국식으로 기도하자’고 한다는 말을 들었다. 검색해 보니 그런 경우가 상당히 많은 것 같았다. 한국사람만 소리내서 기도하는가, 한국사람은 다 소리내서 기도하는가 등등의 의문이 가기도 하지만, 외국인들의 눈에 소리내어 기도하는 것이 코리안 스타일로 비춰질 만큼 특색있게 보였나보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웨일즈 부흥이나 인도 부흥, 평양 부흥 등을 보면, 큰 영적 각성이 있었던 곳에서는 어디나 부르짖는 기도가 있었다. 소리내서 하는 기도는 한국식이 아니라 간절하면 누구나 하게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3. 부르짖으라는 것이 단순히 목소리 볼륨을 높이라는 것일까?

1) 한나의 기도

사무엘상 1장을 보면 자식이 없어 괴로워하는 한 여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엘가나의 아내 한나는 사랑받는 아내였지만 자식이 없었다. 남편은 ‘열 아들보다 내가 낫지 아니하뇨(8절)’할 정도로 극진히 위로했지만 자식을 얻고 싶은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한나는 실로에 가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했다(10절). 하지만 입술만 움직이고 소리는 들리지 않아 제사장 엘리는 한나가 술취한 줄로 알았다. 한나는 이때 드린 기도의 응답으로 아들 사무엘을 낳았다.

 

2) 혈루병 앓는 여인의 기도

마가복음 5장 24절~34절에 보면 12년간 혈루병을 앓던 여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무리 가운데 섞여 예수님 옷에 손을 대자 실제로 곧 피가 그쳤다. 예수님은 누가 내 옷에 손을 댔느냐고 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이리 밀치고 저리 밀치는 가운데 누가 내 옷에 손을 댔느냐는 질문은 몰라서가 아니다. 이미 이 여자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셨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한나는 부르짖어 기도하고 통곡했지만 옆에 있던 제사장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선 들으시고 응답하셨다. 혈루병 앓던 여인은 심지어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들으시고 그 믿음에 응답하셨다.

 

3) 부르짖는 것은 밀도 문제다

하나님께서는 상한 심령을 찾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편 51:17)’ 라고 했다. 우리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선 그 마음의 간절함과 믿음을 보신다. 부르짖는다는 것은 단순히 목소리의 볼륨 문제가 아니라 ‘밀도’의 문제다. 마음 중심의 자세 문제다. 단 10분을 기도해도 온 마음 다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부르짖어야 한다.

 

내게 부르짖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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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 Matthew 2017년 8월 17일 5:46 오전

    나는 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까?

    작년말, 올해초, 성령의 움직임을 조금씩 느끼고 체험하기 시작한 제 아내는 가끔 저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자신도 하느님의 목소리가 듣고 싶은데 아직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 입니다. 그래서 답답해 합니다.

    저는 “간.절.함. , 열.정. 이 없어서 그래.” 라고 밖에 답해줄 수 없습니다.

    저처럼 그 어마어마하신 조물주를 직접 만나게 된 경험을 한 것 도 아니고, 벼락같은 그분의 목소리를 들어본것도 아니라서,

    하느님을 두려워하라는 성경말씀을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어떤 엄청난 체험이 없었으니 그분에 대한 열정이나 그분의 임하심에 대한 간절함이 부족한 것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아내는 조금씩 조금씩 영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조금씩 그분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희망이 있고 저에게 큰 기쁨이 됩니다.

    하지만 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그분에 대한 간.절.함. 이나 열.정. 이 전혀 없습니다.

    그냥 주일이니 가기싫은/귀찮은 교회나 다녀오고 주 중 에 있는 작은 일정에 하나일 뿐 입니다. 자신들의 마음을 열고, 그분을 받아들인다면 얼마나 큰 기쁨과 사랑과 행복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지를 모르니, 제 마음이 무너질 뿐 입니다.

    • 열매맺는나무 2017년 8월 17일 6:14 오전

      사모님께서 하나님을 만나가는 귀한 체험을 하고 계시군요. 기쁜 일입니다. ^^
      그런데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들도 있고 만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이 과거가 되어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2:4)고 책망하시고 회개하고 첫사랑을 회복하라고 하시나 봅니다. 간절함을 가지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과 말씀을 사모하며 미세한 그 음성에 귀를 기울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 Matthew 2017년 8월 17일 7:50 오전

        이틀전 유튜브에서 Messianic Jews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인 유대인들) 간증 동영상을 보고 있는데 제 아들이 제 서재로 와서 그 동영상을 보고 싶어했습니다. 몹시 감동적인 내용이라 제 아들도 보게 해줬는데,

        제 아들이 “그런데 아빠, 이사야 53장은 어떤 내용이야?” 라고 동영상에서 언급된 성경구절을 물어보길레, 이사야는 예언서고 그 구절은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라고 알려줬습니다.

        그랬더니 자기방에가서 그 성경구절을 읽고 내려와서 몹시 상기되고 기쁜 표정으로 저에게 자기도 그 구절을 읽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제 아이들이 종교를 갖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단지 Messianic Jews 분들이 말씀하는 것 처럼 삶자체가 하느님과 하나되는 그런 삶을 갖기를 바랍니다.

        내가 코딩을 하고 있던, 부얶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던, 아침부터 잠에 들때까지 모든일의 중심은 하느님이 되는… 어떤일을 하고 있던, 항상 마음만큼은 하느님을 향해있고, 하느님을 생각하는 생활. 내 인생의 전부가 하느님과 일치되는 삶이라면 절대 하느님과의 관계가 과거형이 될 수 없을텐데,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모든 종교는 사악하다.”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가 전부다.” 라고 말하는 Messianic Jews 분들의 말씀이 진리임을 저 역시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와 사랑을 주셨고, 우리 마음속에 새로운 계명을 심어주셨는데, 어느 목사님의 말씀처럼, “사람들은 그걸 다시 율법화 하고 문서화 해서 모두를 속박하는 희한한 재주를 가진” 존재인 것 같습니다.

        • 열매맺는나무 2017년 8월 17일 1:08 오후

          네. 종교로 포장하는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자기에게 이롭게 사용해왔는지. 머슴부리듯 이용해왔죠. 식구들에게 말하곤 합니다. 종교가 아니다. 4대종교, 타종교..이런 말 하지 말자. 예수님, 말씀, 믿음, 사랑..이런 것들은 그저 역사고 사실이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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