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리의 이웃인가?

2014년 3월 9일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의 죽게 된 채로 내버려 두고 갔다.

마침 어떤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이와 같이, 레위 사람도 그 곳에 이르러서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다가 그 사람이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가까이 가서 그 상처에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에 자기 짐승에 태워서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다음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서 여관 주인에게 주고 말하기를 ‘이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겠습니다’하였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너도 그와 같이 하여라.” 

 

1. 누가 우리의 이웃인가?

‘선한 사마리아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제사장, 레위 사람, 사마리아 사람 중에 누가 이웃이냐고 묻는다. 그럼, 거꾸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웃은 누구이고 우리의 이웃은 누구일까?

가. 심리적, 도덕적 위기에 선 사람이 우리의 이웃이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이라는 것은 지리적 조건과 더불어 타락의 길로 들어선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 심리적 갈등과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우리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웃이다.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는 사람이 12세 인구 가운데 7명중 1명 꼴로 있다는 통계분석결과도 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기에 안으로 곪게 되고 이것이 더욱 심각하다.

 

나. 문제에 봉착한 사람이 우리의 이웃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여러가지 문제를 만난다. 개인, 가정, 사회, 국가, 건강, 재정, 교육, 자녀, 직장… 문제는 가짓수도 많다. ‘문제 없는 곳은 없다. 있다면 오직 공동묘지 뿐’이란 말을 할 정도로 문제 없는 사람은 없다. 어찌 보면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이런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이 바로 우리 이웃이다. 강도 만나 가진 재물도 뺏기고 폭행으로 몸마저 다쳐 생명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우리 이웃이다.

 

2. 왜? –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바로 우리기 때문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우리 이웃이라면, 왜 이런 사람이 우리의 이웃일까? 그것은 우리가 바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외식에 물들고 ‘저 사람은 그럴 만 하니 그런 일을 당한다’고 정죄하는 제사장이나 레위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