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얼 퍼거슨의 시빌라이제이션(Civilization)

2016년 12월 11일

 

지난 10월, 리디북스에서 ‘니얼 퍼거슨 100% 포인트백, 10년 대여 이벤트‘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10,000원에 10년 대여하면 1만원을 포인트로 돌려주는 이벤트였죠. 읽어보고 싶었던 책인데 책 가격만큼 그대로 포인트로 돌려준다니 감사한 마음에 읽게 되었습니다. 돌려받은 포인트로는 읽고 싶었던 또 다른 책을 구입해서 잘 읽었구요. ^^

 

 

시빌라이제이션이란

이 책의 제목은 아시다시피 ‘시빌라이제이션 civilization’입니다. 시빌라이제이션의 사전적 의미는 문명, 문명화를 말합니다. 이 말에는 미묘하게나마 교화(敎化)의 뉘앙스가 비치는 느낌입니다만, 누가 누구를 교화하는 것일까요? 문명인이 비문명인을 교화하거나 비 문명인이 스스로 문명인이 되고자 하는 노력을 통해 일어나는 결과와 그 과정을 말한다고 생각됩니다. 서로 다른 문명이 만나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아가며 변화하는 것이라고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이야기 할 수도 있겠지만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것 처럼 상대적으로 더 강력한 문명이 그렇지 않은 문명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겠습니다. 그런 까닭에 일본은 문명화의 답을 脫亞入歐에서 찾았고, 우리나라 역시 서양의 옷을 입고 머리를 자르는 것을 개화의 상징이라 여겼을 수도 있습니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를 경영하기 위해 식민지를 문명화하는데 힘썼는데, 이 경우엔 의심할 바 없이 문명화는 바로 서구화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서양과 그 나머지 세계

니얼 퍼거슨이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은 서양문명입니다. (서양이 과연 어디고,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학자마다 다르고 애매모호합니다만) 서양과 나머지 세계를 나누고, 15세기 이전에는 강력했던 동양(이슬람, 중국)을 추월해 500년 이상 주도권을 잡고 세계를 이끈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21세기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계속 주도권을 서양문명이 쥘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지금은 서양이 주도권을 쥔 막바지고, 동양이 다시 일어나 세계를 주도해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 이 책의 큰 주제입니다. 

500년전 서양문명이 패권을 잡게 된 이유 6가지

1. 경쟁 

– 지형적, 지리적 여건으로 단일권력이 집중된 중국과는 달리 유럽은 국가권력이 다중분산되어 있었다. 14,15세기까지 유럽의 국가조직은 1,000~500여개나 되었다. 

– 정화의 항해와 콜롬부스의 항해는 그 동기부터가 달랐다. 

2. 과학

– 인쇄, 광학, 물리, 화학, 생물학 등의 과학 발달은 군사적 강점을 제공했다.

3. 재산권

– 특히 영국의 경우 일찍부터 발달된 지방자치와 시민의 재산권 보장은 북아메리카 식민지 경영에 있어서도 두각을 나타내게 했는데, 국왕에게 모든 토지 소유권이 있었던 남아메리카와 다른 양상을 보이게한 결정적인 근거로 해석하고 있다.

4. 의학

-의학의 발달은 건강 증진과 수명 연장의 결과를 가져왔다. (식민지배를 받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분명 유감스럽긴 합니다.)

5. 소비사회 

– 산업혁명으로 인한 생산증가로 소비가 늘고 물질적 생활방식이 자리잡히게 되었다.

6. 직업윤리 

– 신교에서 유래한 도덕적 틀과 행동양식이 근검절약과 교육에 힘을 쏟게 되었고 이는 자본축적으로 연결되었다.

문명의 위기와 붕괴

이 책에서 니얼 퍼거슨은 전쟁이 일어날지 말지는 산불만큼이나 예측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한 문명이 일어나 성장하고 쇠퇴하는 것은 사실이나 몰락하는 것은 순식간이라고도 합니다. 로마제국도 영국제국도 소련 붕괴도 서서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낭떠러지에서 추락하듯 급격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서양이 아닌 지역에서도 모두 서양을 따라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것 처럼 이것이 문명화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서양이 아닌 나라에 있어 각종 경제지표의 성장은 그 나라들이 서구화를 시도한 시기에 비례한다고 합니다. 2007년 금융위기는 동양이 서양을 더욱 빠르게 따라잡게 하는데 일조하기도 했구요. 

 

새뮤엘 헌팅턴은 21세기가 문명의 충돌로 얼룩질 것이고, 문명간의 경계가 곧 미래의 전선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즘 지구촌 상황을 보면 점점 맞는 말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문명이 서로 마주치는 자리중 몇몇 곳은 화약고나 다름 없는 상황이고 각종 테러로 인해 전장이 따로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예로부터 앞으로의 일을 알려면 과거를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책 역시 앞으로의 일을 알고자 역사를 다시 되돌아봅니다. 

 

이 책의 주제는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주장에 대한 설명이나 들고 있는 예도 자세합니다.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재미만큼 진도가 팍팍 나가지는 않습니다. 분명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는데 어쩐지 한번 더 번역해가며 읽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쉬운 책도 아닙니다. 역사를 보는 시각도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 경제 문화 과학을 넘나들며 하는 이야기는 많은 것을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관점도 제공하고, 아니라고 불끈하게 하는 대목도 있습니다. 한번 직접 읽어보기 권합니다. 번역하며 읽는 느낌이라고는 했지만, 화려한 화보에도 불구하고 읽다 나가떨어진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만큼은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