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한 그릇의 인심

2014년 7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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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한 그릇의 인심

몇 달 전 인천공항에서였다. 비행기에서 내려 집에 가기 전, 부모님을 모시고 P모 제과점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마셨다. 약을 잡수셔야 하는데 아뿔사, 사정을 모르고 이 딸은 다 마신 일회용 컵을 잽싸게 버린 뒤였다. 걱정 마시라, 물을 받아 오겠다며 카운터로 가서 직원에게 물을 청했지만 답은 ‘아니오’였다. 물은 따로 제공하지 않으니 화장실 옆에 있는 음수대를 이용하란다. 외부에 있는 제과점이나 커피 전문점(물론 전국의 모든 가게를 다 이용해본 것도 아니고, 즐겨 가는 곳도 한정되어 있긴 하지만)에서 물을 제공하지 않는 것은 못봤다. 심지어 따뜻한 물이나 얼음물을 준비해 놓고 고객이 요구하는 대로 제공하기도 한다. 헌데 우리나라 관문이라 할 수 있는 공항에서 이런 경험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얼마 전까지 물을 돈 주고 사 먹는 다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다. 물은 언제 어디서나 청하기만 하면 댓가를 지불하지 않고도 마실 수 있는 것이었다. 학교 다닐 때 세계지리 시간에 “유럽에서는 석회 때문에 수질이 좋지 않아 마실 물을 병에 담아 팔고, 사람들은 그것을 비싼 돈을 주고 사 마신다. “는 말을 듣고 놀랐었다. “옛날에는 우리 집 우물이 약수나 마찬가지여서 배 아픈 사람들이 와서 청해 마시곤 했었다.” 는 어른들의 말씀을 듣고 자랐다. 수도물을 마시게 되면서 차츰 우물물은 마시게 되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지하수 오염으로 허드렛 물로만 쓰게 되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주 어릴 적에도 이미 서울 시내 가정용 우물은 식수로 사용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까닭에 ‘나중에 오염이 심해지면 우리 나라에서도 물을 병에 담아 할게 될까?혹시 그렇게 되면 깨끗한 공기도 팔게 되려나?’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이렇게 빨리 현실로 들이닥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1980년대쯤 크리스탈이니 다이아몬드니 하는 생수가 배달되기 시작했고, 90년대로 들어서면서 석수를 시작으로 갖가지 이름을 달고 ‘생수’를 동네 가게에서도 사 마시게 되었다. 과거 우물물이 그랬듯, 수돗물은 졸지에 그냥은 먹지 못할 더러운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여과 정수과정을 거친 물보다 어디서 퍼 왔는지 알 수 없는 지하수나 개울물을 더 쳐주는 야릇한 세상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노후된 수도관과 청소하지 않은 물탱크 등을 보고는 누구든 비위가 상하고 건강을 생각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생수나 정수기 업체의 마케팅 전략이기도 했겠지만, 이를 계기로 수도관이 교체되는등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2천년대로 넘어와서도 물을 나누는 인심에는 별 변화가 없었다. 공공장소나 식당에서는 물론 물건을 파는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에서도 구석구석 생수통이나 정수기를 두고 마실 물을 제공했다.

 

하지만 그것도 최근 들어 바뀌고 있다. 그런 움직임을 경험한 것은 영화관과 공항에 있는 제과점에서였다. 많은 극장에서 수익을 높이기 위해 비싼 가격에 간식거리와 음료를 팔고 있는데, 판매율을 높이기 위해서인지 언제부턴가 물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인천 국제공항의 모 제과점에서도 앞에서 말한 것 처럼 고객에게 물을 제공하지 않는다. 커피나 기타 음료를 이미 사서 마신 고객에게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공항 내부에 있는 다른 가게들을 모두 이용한 것도 아니고, 이용했던 모든 가게에서 물을 부탁한 적도 물론 없지만, 물을 제공하는 인심이 메마르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 생수를 사 마시던지(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평소에 흔히 보던 대중적인 브랜드의 국내산 생수는 공항에서 찾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아니면 바깥에 있는 음수대 꼭지를 틀어 분수처럼 거꾸로 솟는 물줄기에 입을 가져다 대고 재주껏 들이마셔야 한다. 점잖은 어르신이나 장애인, 어린 아이들에게도 예외는 없다.

 

어찌 보면 좀 서글프다. 바가지 그득 담은 물 위에 버들 잎 띄워주는 배려는 아니더라도 콜라나 에비앙 한 병 팔아 남는 이문에 밀려 버리는 이웃의 목타는 사정이 서글프다. 이제 제 물은 제가 챙겨 가지고 다니지 않으면 물 한 모금 못 마시는 그런 세상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