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에 대한 견해

2017년 6월 21일

방언에 대한 견해

처음부터 말하지만 나는 방언 기도를 못하고 해본 적도 없다. 하지만 방언에 관한 극단적인 생각들에 동의하지도 않는다. 방언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뜨겁게 기도하고 열정적으로 봉사하는 것을 보면 나와는 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감탄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 방언 기도에 대해 색다른 정보를 접하고 깜짝 놀라 곰곰이 생각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이에 대해 차분히 정리를 해보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1. 방언이란

1) 사전적 의미의 방언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방언은 다음과 같다.

  1. <언어> 한 언어에서, 사용 지역 또는 사회 계층에 따라 분화된 말의 체계.
  2. <언어> [같은 말] 사투리(어느 한 지방에서만 쓰는 표준어가 아닌 말).
  3. <기독교> 신약 시대에, 성령에 힘입어 제자들이 자기도 모르는 외국 말을 하여 이방인을 놀라게 한 말. 또는 황홀 상태에서 성령에 의하여 말해진다는 내용을 알 수 없는 말.

 

영어사전(New Oxford American Dictionary)에서 tongues를 찾아보면 ‘살과 근육으로 된 기관. 포유동물의 입속에 있다(the flesh muscular organ in the mouth of a mammal…)’라는 설명과 함께 ‘아래에 있는 the gift of tongues를 보라’는 말이 나온다. 또 그 아래에는 ‘speak in tongues’라는 것도 나와 있는데 그 뜻은 각각 다음과 같다.

the gift of tongues – the power of speaking in unknown languages, regarded as one of the gifts of the Holy Spirit(Acts 2).

방언의 은사 – 모르는 언어로 말하는 능력. 성령의 은사 중 하나로 간주된다(사도행전2장).

 

speak in tongues – speak in an unknown language during religious worship

방언으로 말하다 – 예배 중 모르는 언어로 말하다

 

2) 성경에 기록된 방언

맨 처음 나타난 방언 현상은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서였다. 사도행전 2장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다. 그것은 온 집안에 가득했고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했다. 사도행전 2장 4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었다.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하지만 그 전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성령이 역사하실 것을 마가복음 16:17, 18절에서 이미 말씀하셨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1) 성령의 은사

방언은 성령의 9가지 은사 중의 하나다. 성령을 나타내시는 것은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 능력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다른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고린도전서 12:7~10)

 

(2) 방언의 종류

성경에 기록된 것을 보면(이에 대해서는 이미 방언에 관한 성경 구절이란 글에 정리를 해둔 바 있습니다. 혹시 제가 놓친 구절이 있으면 댓글로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방언은 그 대상이 하나님만을 향한 것이냐 아니냐에 따라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과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된다.

 

가.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은 외국어의 형태로 나타난다.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방언이 이에 해당된다. 오순절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때 각지에 흩어져있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여있었는데, 이들은 아마 디아스포라1였나보다. 이것을 듣고 놀라 외쳤다.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2:8)”

외국어로서의 방언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기에 통역도 가능하다. 고린도전서 12장 10절, 28절, 30절과 14장 5절, 13절, 26~28절에 보면 방언과 방언 통역에 대한 말씀이 나온다. 방언 통역 역시 성령의 아홉가지 은사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학자들에 따라서는 사도행전 2장에서는 통역 없이도 각 지역 사람들이 각자의 언어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고린도전서에서 말하는 방언과 방언 통역의 은사는 외국어로서의 방언이 아니라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말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2

 

나.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

외국어로서의 방언이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이라면, 하나님께 영으로 비밀을 말하는, 알아듣는 자가 없는 방언에 대한 기록도 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고린도전서 14:2)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비밀한 언어로 1:1로 하나님과 독대하다니, 방언의 첫째가는 유익이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방언은 다른 사람만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말하는 자신도 그 뜻을 알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방언 통역의 은사가 없으면 자기 입으로 한 방언의 뜻을 자신도 깨우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고린도전서 14:13, 14)

 

(3) 방언을 위한 지침

가. 방언하기를 원하심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고린도전서 14:4~5)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린도전서 14:18)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고린도전서 14:39)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하여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한다’고 하셨고, 바울 자신도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는 것을 감사한다’ 라고 했다.

 

나. 예배 중엔 교회의 덕을 세울 것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을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이나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고린도전서 14:5~6)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서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고린도전서 14:9)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린도전서 14:19)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다불과 세 사람이 차서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고린도전서 14:26~28)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한 것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고린도전서 14:37)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린도전서 14:40)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방언은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은 교회의 덕을 세운다. 따라서 많은 사람이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교회에서는 통역되지 않은 일만 마디 방언보다 깨달은 마음으로 하는 다섯 마디 말이 더 유익하다. 찬양도 설교도 없이 교인들이 각자 방언만 한다면 예배가 어떻게 이뤄지겠는가. 따라서 공적인 예배자리에서 방언할 때에는 통역을 세우고 2, 3인만 해야 하고 통역할 사람이 없으면 교회에서는 하지 말고 혼자 있을 때 하나님께 하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도 자기를 선지자나 신령한 자로 여기고 고집을 부릴 때는 하나님의 명령임을 명심하라고 말하는 한편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도 하셨다. 모든 것을 적당히, 질서대로 하라고 하셨다.

 

 

2. 방언에 대한 견해들

분명 하나님 말씀은 하나인데 해석들은 어찌나 분분한지 견해들도 다양하다. 그것은 방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다음은 글을 쓰기 위한 자료를 모으던 중 접하게 되었던 여러 견해다.

 

1) 부정적 견해들

(1) 방언의 시대는 끝났다

방언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는 ‘방언의 시대는 끝났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그 생각의 근거는 두 가지 것에서 비롯된다. 하나는 고린도전서 14장과 사도행전 19장의 성령세례와 방언의 기록 이후에 방언에 대한 더 이상의 기록이 없다는 것과 사도행전 28:7~10에 기록된 멜리데 섬의 신유사건3 이후로 기적적인 은사의 기록은 더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고린도전서 13:8에 기록된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라는 말씀이다. 따라서 사도시대 이후 방언은 ‘그쳤다’는 입장이다.

 

(2) 방언은 가짜다 – 학습된 것이다

방언이 끝나 사도시대 이후 더는 볼 수 없는 것이라면, 오늘날 교회에서 볼 수 있는 방언은 무엇인가. 그저 학습된 것에 불과하다는 견해다. 성령의 은사로서의 방언을 지나치게 사모하는 사람들이 방언을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 나타난 산물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집단최면상태에 가까운 것으로 보기도 한다. 자기 목소리에 대한 통제를 포기하고 몇 마디 음절을 되풀이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말을 하게 되거나 록 콘서트에 열광하는 팬들의 반응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3) 방언은 마귀의 역사다

방언의 시대가 끝났고 오늘날의 방언들이 학습된 가짜에 불과하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배후에는 마귀가 있으며, 방언은 미혹의 영이 역사하는 것이라는 견해다. 그것은 다음 두 주장과 연결된다.

 

가. 다른 종교에도 있다

놀랍게도 방언은(적어도 방언과 비슷한 현상은) 교회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단이나 사이비, 다른 종교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진언, 주문 등을 되풀이하여 외우거나 영적 황홀경에서 의미 모를 소리를 중얼거림으로써 속이 시원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체험을 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한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방언은 마귀의 역사지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

 

나. 예수회와 관련된 음모론

예수회의 음모로 교회에 천주교의 방언 운동이 일어나게 했다. 오늘날 교회에서 개최하는 각종 부흥회, 기도회 등의 모습을 보면 천주교의 것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 예수회 신부였던 알베르토 리베라 박사의 간증이 이를 증거로 제시된다. 4

 

 

2) 긍정을 넘어선 견해들

(1) 방언은 성령 침례 및 구원의 증거다

방언의 은사를 지나치게 중시한 나머지 방언은 성령세례의 증거며 따라서 구원의 증거이므로 방언을 받지 못한 사람은 아직 구원받지 못한 상태라고 보는 견해다.

 

(2) 방언은 신앙의 성숙이나 믿음의 깊이를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다

이 견해는 방언을 구원의 증거라고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신앙이 성숙해지면 받는 것이므로 그 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라고 본다. 따라서 누구나 늘 방언 받기를 사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3. 방언에 대한 나의 견해

1) 성령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성령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성령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부활하신 다음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 오셨던 그때 부터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 까지다. 지금 이 순간 역시 성령시대에 속한다. 성령 하나님께서 성전된 우리 안에(내 안에) 계시면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신다.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를 도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각자에게 알맞은 능력을 주신다. 그것이 바로 고린도전서 12:7~10에 나오는 성령의 은사5고, 갈라디아서 5:22~23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열매6다.

성령 시대가 끝나기 전까지 선한 열매를 맺기 위해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데 어째서 그 가운데 방언의 은사만 끝날 수 있을까. 온전한 것이 오기 전까지 예언도 방언도 지식도 폐하거나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천국에서 주님 앞에 서게 되면 이 땅에서 받았던 은사들은 그치거나 폐해진다.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한 이 세상에선 필요했지만, 온전히 알게 되는 그곳에서는 더는 필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에도 사랑만은 남아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13절에서도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라고 했던 것이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고린도전서 13:8~10)

 

2) 학습된 방언, 악한 영이 역사하는 방언도 있다

방언이 성령의 은사 가운데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오늘날 방언으로 보이는 모든 현상이 다 성령의 역사 하셔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방언하는 사람이 개인적으로 부럽거나, 교회 분위기나 믿음의 선배들의 강권으로 방언을 사모한 나머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억지로 ‘익히게’ 되는 경우도 있다. 개중에는 ‘할렐루야’를 되풀이하라거나 주기도문을 500번씩 반복한다든지 심지어는 다른 사람의 방언을 듣고 따라 해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행위다. 나도 남도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 하나님만 아는 방언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성령이 주시는 은사, 선물이다. 내가 배우고 연습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짜다.

이렇게 억지로 방언을 구하려다 보면 악한 영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마귀는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베드로전서 5:8). 시기 질투, 초조함을 바탕으로 해서 구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기 어렵다. 마귀의 먹이가 되기에 십상이다. 실제로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젊은 신학교 시절 밤에 산기도 갔다가 큰일 당할 뻔했던 경험담도 들을 수 있다. 기독교를 표방한다고 하면서 ‘입신’, ‘쓰러짐’의 용어를 써가며 성령 운동을 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방언이나 예언은 물론 환상과 환청 등 기이한 경험을 은사라는 포장 아래 지나치게 추구하다 보면 마귀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그 결과로 생겨난 이단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함정에 빠졌던 사람 중엔 직분 맡았던 사람들도 있다. 문선명은 주일학교 선생님이었고 박태선은 장로였다.

 

3) ‘구원의 증거=방언’이라는 등식은 성립할 수 없다

성도들이 무리하게 방언을 구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방언을 성령을 받은 증거나 더 나아가 구원을 받은 증거로 간주하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다르게 주시는 아홉 가지은사 중 하나가 방언이다. 내가 비록 방언은 못 한다 할지라도 다른 여덟 가지 은사(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침, 능력 행함, 영 분별, 방언 통역) 가운데 하나를 받았을 수 있다. 그중 한 가지만 가지고 성령을 받았다, 아니다를 논할 수 없다. 방언을 성령세례의 증거라는 주장을 보면 사도행전 19장 말씀7 을 그 근거로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역시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 가운데 방언과 예언 두 가지일 뿐이다. 설사 이 구절이 확실한 근거가 된다 해도 그렇다. 예언은 어디로 가고 똑 떼어서 방언만 그 증거로 삼는 것인지 궁금하다.

더구나 방언을 구원의 증거로 여기는 것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로마서 1:17)’ ,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로마서 3:27)’ 하는 말씀을 부인하는 것과 다름없다.

구원에 말씀 외에 무슨 다른 증거가 필요한가. 증거와 확신이 필요하다면 말씀을 읽고 주야로 묵상하는 것밖에 없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9)

말씀을 믿고 의심하지 말자8.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야고보서 1:6~8)

 

4) 방언은 신앙의 수준을 측정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방언을 성령을 받은 증거나 구원의 증거로 생각하지는 않더라도, 신앙의 수준이 높아야 방언을 한다, 방언하지 못하는 사람은 믿음이 약하거나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믿는 가족을 따라 예배드리러 갔다가 갑자기 방언을 하게 되면서 믿게 되는 사람도 있다. 또 반대로 오랜 세월 믿음을 지켜온 어르신들이나 목회자들도 방언을 못 할 수도 있다. 방언이 신앙 수준에 따라 오는 것이라면 방언하는 초신자의 신앙 수준이 방언 못 하는 어르신이나 목회자보다 월등하다는 말이 된다.

 

5) 기준은 하나님 말씀이 되어야 한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9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바라보고 나아가기보다는 자기 잣대로 해석하기를 잘하고 양떼처럼 그리로 몰려가기도 잘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신앙의 기준은 -생활의 기준도 마찬가지지만- 어디까지나 하나님 말씀이 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말씀을 오려내고 붙여 아전인수격으로 자기 뜻을 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해서도 안 된다.

방언은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과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이 있다.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은 교회에서 예배 시 통역을 세우고 두세 사람이 차례를 정해 할 수 있다.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은 공적인 자리에서가 아니라 홀로 하나님과 기도할 때 하는 것이 좋다. 모든 것은 질서 있게 순리대로 해야 한다. 하지만 방언하는 것을 금하지도 말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 성령이 역사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그것은 우리가 천국 갈 때까지 계속된다. 따라서 성령의 역사하는 한 성령의 은사도 계속된다. 방언 하나만 똑 떼어 끝났다고 단정 짓는 것은 무리다. 마지막 때를 사는 이때, 영육 간의 혼탁함은 말할 수 없다. 앞으로 더 할 것이다. 마귀는 믿는 자마저 하나라도 더 꾀려고 애쓴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방언 현상 전부가 성령의 역사는 아니다. 하지만 나나 내 가까운 사람이 하지 않는다고 해서 100% 마귀의 장난이라고 도매금으로 묶어버려서도 안 된다. 하나님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누구를 쓰실는지 모른다. 마귀의 음모나 장난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그 자체도 문제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우리의 열심에 하나님은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다’10고 하실 수도 있다.

 

 

[참고했던 글]


방언에 대한 견해

 

 

1 디아스포라(diaspora).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팔레스타인을 떠나 온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이르던 말. 네이버 국어사전
2 Simon Kistemaker(복음주의 신학자, 신약성서 학자, 주석가)의 주장을 언급한 글을 찾아볼 수 있었다. 방언이란 무엇인가
3 바울은 로마를 향한 마지막 전도 여행 중 폭풍을 만나 배가 부서지고 표류하다 멜리데 섬(말타 Malta) 에 상륙하여 구원을 얻는다. 보블리오라는 그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 아버지가 열병에 걸리게 되었다. 바울이 안수하고 기도하자 그의 열병이 나았다.
4 가. 전직 예수회 신부였던 알베르토 리베라 박사가 회심 후 교황청과 예수회의 음모를 낱낱히 밝혔다고 한다. 나. 하지만 이것으로 은사주의 전체를 매도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적극적으로 저지해야 했을만큼 초기 은사주의가 성령에 의한 것이었다는 반증이라는 주장도 있다. 다. 한편으로는 알베르토 리베라의 사기극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Alberto Rivera wiki 알베르토 리베라 만화
5 성령의 은사.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다른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6 성령의 열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love)희락(joy)화평(peace)오래 참음(longsuffering)자비(gentleness)양선(goodness)충성(faith)온유(meekness)절제(temperance)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7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 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 두 사람쯤 되니라.(사도행전 19:1~7)
9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신명기 5:32)
10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이사야 55:8~9)
11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신명기 5:32)

12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이사야 5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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