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 어느 작가의 일기

2016년 12월 10일

버지니아 울프, 어느 작가의 일기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박인환이 누군지, 숙녀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 목마를 타고 과연 어딜 떠날 수나 있는 건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이 구절로 인해 익숙한 이름 버지니아 울프. 옛날 어린 시절 연습장 표지에 그림과 함께 적혀있던 구절로 버지니아 울프를 알게 되고, 집에 있는 책장 어디엔가 같은 이름의 작가가 쓴 책이 있다는 생각에 뒤져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델러웨이 부인‘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당연히 재미 없었습니다. 초등학생이 읽기에 무슨 재미가 있었겠습니까. 그림도 없는 2단 세로 쓰기 책은 글씨가 성경책 보다도 작았습니다.

 

이 책은 버지니아 울프가 26세 였던 1915년 부터 53세가 되기까지 썼던 진짜 일기를 뒷날 남편 레너드 울프가 버지니아의 문필생활과 관련된 부분만 엮어낸 책입니다. 책을 통해 보는 버지니아는 감정 기복도 심하고 자주 아팠던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그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합니다만, 그것 보다는 오히려 초조하거나 비참한 기분일 때 주로 일기를 써서 그런 면이 더 부각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중고등학교 때 썼던 일기가 대부분 그렇거든요. 친구와 싸웠을 때, 뭔가 오해받거나 내적 갈등상황에 있을 때,  부모님이나 선생님으로 부터 꾸중을 들었을 때, 일이 생각만큼 풀리지 않을 때 꼭 일기를 쓰곤 했습니다. 밖으로 폭발시키는 것 보다는 나았으니까요. 누군가 그 일기를 본다면 조울이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해가 됩니다. 격정을 표현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어디에라도 풀어놓을 데가 필요한 법이니까요.

 

일기내용은 주로 자기 일이나 사람들에 대한 의견, 인생이나 우주에 대한 생각이며, 글을 구상하고 진척상황 정리에 관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버지니아는 글을 달려가듯 날아가듯 끝까지 스피디하게 써 내려간 다음,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쓰는 식으로 타이핑 하면서 고치곤 했는데, 열 몇 번씩 고쳐 출판했다는 대목에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워드 프로세서는 커녕 수동 타자기를 사용했을테니 정말 대단합니다.

 

이 책을 읽을 때는 거의 숙제처럼 읽었는데요, 학교다닐 때 영문학 개론시간에 간간이 듣던 인물이나 작품 외엔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고 주로 그런 사람들이나 출판사와 얽힌 이야기들이니 어쩔 수가 없더군요. 게다가 정말 두꺼워요. 671쪽이나 됩니다. 아직 읽지 않은 분이라면 관심있는 주제 중심으로 뽑아 읽는 방법도 괜찮을 거라고 말씀해드리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글쓰기에 대한 태도나 생각이라든지, 버지니아 울프가 읽은 책에 관한 탐구, 그 글의 시대적. 공간적 배경에 관한 탐구 등을 예로 들을 수 있겠네요.

 

이처럼 나만을 위해 글을 쓰는 습관은 글쓰기의 좋은 훈련이 된다는 신념이 나에게는 있다. 글쓰기는 근육을 이완시켜 준다, 잘못을 저지르거나 실수를 한다해도 신경쓸 것은 없다. 이처럼 빨리 쓰고 있으니 대상을 향해 직접적으로 순식간에 돌진하게 된다. 그러니 닥치는 대로 단어를 찾고 골라서 간단없이 그 단어들을 내던져야 한다. 지난 1년동안 직업적인 글을 쓰는 일이 좀 편해진 것 같은데, 이것은 차 마시고 난 뒤에 스스럼없이 보낸 반 시간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38쪽)

나는 지금 전속력으로 ‘댈러웨이 부인’ 전부를 처음부터 다시 타자하고 있다. 이것은 ‘항해’ 때도 비슷했는데,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렇게 함으로써 전체를 젖은 붓으로 손질할 수 있고, 또 따로따로 만들어져 말라버린 부분들을 융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138쪽)

이제 공습 장면을 거의 다 베꼈다. 틀림없이 열세 번째 수정 작업일 것이다. 내일 발송한다. (4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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