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 죽음을 이겨낸 사랑의 길

부활 - 죽음을 이겨낸 사랑의 길

 

부활 – 죽음을 이겨낸 사랑의 길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몸 찢고 피 흘려 돌아가셨다. 죽음을 피치 못하게 당하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내어주셨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할 길이 없어서였다. 그리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다.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향한 그 사랑을 끊을 수 없고 우리를 다시 사망권세 아래 놓이게 할 수 없다.

 

영광에 이르는 길

우리를 위해 대신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신 것 자체도 얼마나 감사한가. 또 얼마나 송구한가. 대체 내가 무엇이기에. 하지만 그 고난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돌아가신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영광에 이르는 과정이었다.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누가복음 24:25~26)

 

영생에 이르는 길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께선 그 고난으로 우리도 함께 죽고 그 부활로 함께 살게 하셨다. 또 그 뿐 아니라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 영 죽을 우리가 죄 없다 하심을 받고 천국에서 세세영원토록 하나님과 더불어 하늘 유업을 받아 왕 노릇 하게 하시니 그 감사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찌어다. (로마서 6:8~11)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에베소서 2:4~6)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요한계시록 21:7)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요한계시록 20:6)

 

우리가 닮아 따라가야 할 길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따라가라고 하신다.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닦아놓은 길을 걸으며 열매나 거두라는 의미는 아니다.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을 본받아 행하라는 뜻이다.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린도전서 15:5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혀 죽은 사람만이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할 수 있다. 부활은 죽음을 전제로 한다. 죽지 않고서는 부활할 수 없다. 지금도 나는 못박혔다 하면서 벌떡벌떡 일어나고, 함께하는 부활은 사모하되 죽으려고는 하지 않는 그런 못난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다행히, 그리고 감사하게도, 우리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셨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갈대같은 우리를 흔들릴 때마다 인도하고 지켜주신다.

 

그리스도를 닮는다는 것은 죄악된 것에서 분리되어 거룩한 삶을 사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은혜뿐 아니라 고난도 함께 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빌립보서 1:29)

초대 교회부터 지금에 이르도록 기독교인들이 전적으로 환영받는 장소나 시기가 있었을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탄압 받거나 배척당하고 있다. 또 믿음 자체가 금지된 지역도 있다. 시간이 가면 갈 수록 그런 상황은 더 악화되리라 생각된다. 비록 신앙의 자유는 있더라도 내 믿음을 가족들이 달갑게 여기지 않거나 반대할 수도 있다. 선택의 순간이 올 수도 있다.

우리가 당하는 혹은 당할 고난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고난이 아니다. 오히려 영광과 복에 이르는 고난이다. 또 혼자 당하는 외로운 고난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도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디모데후서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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