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3 – 태풍

2008년 7월 31일

두런두런 들리는 말소리에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니 천정에 달린 둥근 형광등에 눈이 부시다. 잘 떠지지도 않는 비벼본다. 덜컹덜컹 들창이 흔들린다. 엄마 아빠랑 동생까지 내가 자는 할머니 방으로 몰려왔다. 엄마가 촉촉히 물기 흐르는 배를 깎아 내민다. ‘자다 말고 웬일이야?” 하지만 말 없이 받아 먹는다. 달디 단 배즙이 손목을 타고 흐른다. 얼른 혀로 핥아 버렸다. 엄마한테 들킨 것 같아 헤헤헤 웃어버렸다. 

쿵.
뭔가 부딛치는 소리가 난다. 
와장창. 
냅다 깨지는 소리.

갑자기 무시무시한 소리가 나더니 빗소리가 크게 들린다. 아빠가 벌떡 일어나 뒷마루로 나가신다. 미닫이 문을 열자 쏟아져 들어오는 빗물과 바람. 
응?
빗물?
비가 왜 들어오지? 집안에? 
한 손에 배를 들고 나가보려 하지만, 할머니가 팔을 잡아당겨 앉히고는 못나가게 한다. 
“나가지 마라. 방해된다.”
엄마가 수건이며 걸레를 들고 밖으로 나가더니, 뒷마루에 있던 움직일 수 있는 짐들을 안방으로 옮기기 시작한다. 예~엣날 할머니의 궤짝 트렁크, 내 동화책들, 와. 거기 쌓였던 짐들이 참 많았구나. 

“어떻게 됐니?”
“나가시지 마세요. 뒷마루쪽 슬레이트 지붕이 날아가 버렸어요. 지금은 어쩔 수 없고, 내일 아침에나 살펴봐야겠어요.” 할머니의 물음에 아빠가 대답한다. 쫄딱 젖어버린 아빠. 춥다. 어른들이 걸레를 들고 들이친 비를 닦아내고 정리하는 것을 보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 

아침이다. 
조용하다. 뒷마루로 고개를 내밀어 보니, 있어야 할 하늘색 슬레이트 지붕은 어디론가 날아가고 진짜 새파란 하늘이 빛나고 있다. 신발을 신고 뒷마당으로 달려나갔다. 진짜 파란 하늘이다. 입이 딱 벌어진다. 안방에 덧달아낸 뒷마루쪽 지붕은 날아가고 장독대 위 항아리도 몇 개는 깨졌다. 옥수수밭 옆 개집에서 뛰어나온 초코가 마구 꼬리를 친다. “너 안무서웠니?” 옥수수대도 다 드러누웠는데 호박넝쿨은 담장 울타리에 매달린채 그저 멀쩡하다. 떨어져 나간 우리집 지붕은 어디로 날아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