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이야기 2-이집트로 내려간 아브람

2013년 11월 2일

아브라함이야기2-이집트로 내려간 아브람

나의 신부, 나의 누이

아브람은 고향을 떠나 벧엘 남쪽으로 옮겨갔다. 어느 해, 그 땅에 심한 기근이 들어 아브람은 이집트로 이주하기로 했다. 이집트 근처에 도착했을 때, 아브람이 아내 사래에게 말했다.

‘내 생각에 당신은 너무나 아름답다. 우리가 부부라는 것을 알면 이집트 사람들이 나를 죽이고 당신을 뺏을지 모르겠다. 그러니 내 아내라 하지 말고 누이라 하자. 그렇게 하면 내 몸이나 목숨은 아마 안전할거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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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ram’s Counsel to Sarai (watercolor circa 1896–1902 by James Tissot

파라오도 반한 사래의 미모

그들은 이집트에 도착했다. 사래의 미모는 아브람의 예상대로 이집트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고, 고관들도 보고 파라오 앞에 가서 그 아름다움을 칭찬했다. 그 결과, 파라오는 사래를 궁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파라오역시 사래의 미모에 반하고 말았다. 그는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자신의 여인으로 삼기로 작정했으니, 자신이 사래에게 매혹된 만큼 그 오래비에게 엄청난 후대를 했다. 연인이 될 사람의 가족에게 넉넉하게 베푸는 것은 여인과 그 가족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것이 될 테니, 그 정도 물질로 여인의 마음과 몸을 얻는 것은 파라오에게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을 것이다. 아브람은 자기 아내 사래를 다른 사내 파라오의 연인으로 넘기는 대신,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다. 그리고 소원대로 자기 목숨을 구했다.

아브람이 제 꾀에 넘어간 것이든, 원래 예상했던 결과였든 간에 어쨌든 그는 혼인하여 부부로 함께 늙어가던 아내를 다른 나라로 이민 가자마자 그 나라 왕의 여자로 넘겨주게 되었다. ‘함께 늙어가던’ 이라는 말이 이상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고향 하란을 떠날 때의 나이가 아브람은 75세였고 사래는 아홉살 연하 66세였던 것을 생각해 보면 이집트에 도착했을 때의 나이는 그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았을 것이 아닌가. 사실 당시 사람들의 수명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 넘는다. 보통 200세 전후로 살았고, 초산 연령도 삼십대(남성기준)였다. 하지만 아무리 수명이 길고 노화 속도가 더뎠다고 하더라도 66세에 한 나라의 왕까지 넘어갈 만한 경국지색이었다니 정말 대단하다.

사래의 속내는 어땠을까?

목숨을 부지하는 것 까지는 아브람이 목적한 바였을 테지만, 아내를 다른 사내의 손에 넘기는 것 까지 예상했었을까? 아브람이 오누이라고 하자는 꾀를 냈을 때 목적한 바는 무엇이었을까? 남의 아내를 뺏는 것과 남의 누이를 데려가는 것, 어느 것이 수월한 것일까? 후자가 쉬운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나를 죽이고 너를 뺏어가는 상황에서 내 목숨을 안전’하게 한다는 것은 ‘내 목숨과 너, 둘 다’지키는 것이 아니라, ‘내 목숨이 소중하니 네가 양해해라’는 것이었던가.

물론 고대 유목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생각이 현대와는 많이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시민’에 여자는 포함되지 않았고 신약시대에도 사람 숫자를 셀 때 여자와 아이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자의 마음까지 많이 달랐을까. 자기 자신을 지키고자 부부사이를 부정하고 남매라고 주장하는 남자에 대해 실망스럽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왜 들지 않았을까. 대찬 여자라면 ‘오냐, 알았다’하는 생각까지 들기도 했을 것이다.

 

파라오가 사라를 돌려보낸 까닭은?

그러나 사래는 궁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아브람에게로 돌아가게 되었다. 아브람이 못견뎌 목숨을 걸고 파라오 앞에 사실을 고하고 사래를 도로 찾아온 것… 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래의 일로 파라오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놀라고 기가 막힌 파라오는(누가 그렇지 않겠는가. 어쩌면 남자로서 한심하게 여겼을 수도 있고, 큰 재앙을 당하게 한 아브람이 괘씸했을 수도 있었겠다.) 아브람을 불렀다.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파라오는 이렇게 아브람에게 이렇게 이른뒤, 신하들에게 명하여 그와 그의 아내, 그리고 그의 ‘모든 소유’를 보냈다. 성경에 보면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라고 나와있다. 사래를 데려올 때 아브람에게 주었던 것을 도로 가져갔다는 말은 없다. 그렇게 했다면 모양 빠지는 일이 되었겠지. 세상만사 세옹지마라더니 아내를 잃을 뻔 했던 아브람은 이 일로 오히려 재산을 불리게 된 것인가.

 

부끄러운 모습까지 보여주는 성경

성경의 매력은 흔히 위인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의 삶을 윤색하거나 보정하는 것 없이 이렇게 부끄러운 부분까지 그대로 싣고 있는 점이다. 갖가지 삶의 모습들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책이 성경이다. 성경 속 사람들은 마치 오늘날 우리 처럼 이런 저런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손에서 놓지 않으시고 끝까지 손을 잡아 주시고 넘어지면 일으켜 세우시고 구덩이에 빠지면 건지신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위안을 받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역시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힘을 주시며 함께 하실 것이라는 것을 믿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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