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닭 이야기

2016년 7월 1일

여름, 닭 이야기

 

’백세미’라는 닭 이야기로 뉴스가 시끄럽다. 처음엔 백세미라고 해서 百歲米라는 브랜드 쌀 이름인줄 알았다. 하지만 알고보니 희다는 뜻의 백 白에 반반이란 뜻의 semi를 합쳐 만든 이름의 삼계탕용 닭을 말하는 것이었다. 백세미는 산란용 암탉에 종계의 정자를 인공수정 시켜 25일에서 30일 정도 키운다. 문제는 규제, 관리감독 없는 환경에서 부화, 사육함으로써 질병과 항생제에 과다노출되어 있고, 닭값이 폭락해도 달걀이나 치킨 값은 그대로라는 것이라고 한다. 

 

 

백세미에 관한 문제가 제기된 것은 최근이 아니었다. 2004년에도 똑같은 문제가 제기되었던 적이 있었는데, 십년이 넘도록 아직까지 해결이 안되고 되풀이 된다는 것이 대단하다. 그럼 그동안 우리가 먹었던 닭들이 경제문제를 빼더라도 건강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던가… 바로 엊그제 영양센터에서 먹은 삼계탕과 전기구이 통닭이 생각난다. 아마 그것도 같은 닭으로 만들었겠지. 

 

밖에서 사먹는게 문제니 집에서 만들어 먹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해도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백세미를 주로 키우는 것은 일반 농가보다 하림이나 마니커 같은 기업이기 때문이다. 수퍼에서 사오는 닭의 대부분이 그런 기업제품 아니던가. 뉴스를 보면 텃밭도 있어야겠고 닭장도 있어야겠다. 

 

 

복날이면 엄마 손을 잡고 간 시장에서 마음에 드는 닭을 골랐다. 아파트 처럼 층층이 있는 닭장 철망 사이로 보이는 큰 닭 작은 닭 빨간 닭 흰 닭…. 크기도 색깔도 다양한 닭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닭은 고르는데도 요령이 필요하다. 어린 시절 – 닭을 사다 백숙을 해먹고 여름방학 그림일기에 썼으니 초등학교 1,2학년 때였을 것이다 -부터 좋은 닭 선별요령을 전수받은 셈이다. 닭장을 가만히 지켜본다. 적당한 크기에 또릿하고 예쁜 닭으로 고른다. 

 

주인에게 내가 고른 닭을 알려주면 주인은 닭장 문을 열고 닭을 꺼낸다. 사람에 따라 닭을 잡는 방식도 다르다. 한 손으로 양 날개를 뒤로 잡고 꺼내는 사람도 있고 한 손으로는 아래쪽을 받쳐 드는 사람도 있다. 잡을 때도 목을 꺾는 사람도 있고 날갯죽지 어딘가를 꾹 누르는 사람도 있다. 무협영화도 아니고 닭의 혈자리를 눌러 기절을 시키다니 이런 이들이야 말로 鷄林의 고수가 아닐지. 그렇게 잡아 통에 넣고 뚜껑을 닫으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통이 돌아가고 닭털이 뽑힌다. 통에서 나와 깨끗이 손질되고 씻긴 닭을 건네 받고 셈을 치르면 된다. 집에서 키울 애완용 닭도 아니고 잡아 먹을 닭을 마음에 드는 걸로 고르다니… 이렇게 써놓고 보니 참 묘한 느낌이다. 요즘 아이들은 자기가 먹는 치킨의 살아생전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본 적 있으려나. 

 

어린 시절 여름마다 엄마와 할머니가 약병아리로 백숙을 폭폭 끓여주셨던 것은 몸이 약하다고 생각하신 내 몸을 어떻게 좀 보해서 여름을 지치지 않고 잘 나게 하려고 해서였다. 국물을 많이 잡지도 않고 폭 고아서 진하게 낸 국물을 하얀 백자 그릇에 따라 소금 후추 간을 한 다음 따끈할 때 쪽 하고 마시라고 하시고 할머니, 엄마, 내 동생은 약발이 다 우러난 고기와 뱃속에 넣어뒀던 찹쌀 밥을 먹었다. 그런 정성에도 불구하고, 염치없게도 난 그 보약같은 닭국물이 진저리나도록 싫었다. 푹푹 찌는 더운 날 뜨거운 국물을 마시기도 싫었거니와 노란 기름이 동동 뜬 닭국물을 먹기란 정말 고역스러웠다. 지금 생각하면 동물성 지방이 심혈관 질환을 일으킨다는 것도 모를 때였고 오히려 그런 기름기를 영양분이라고 생각했을 시절이니 그럴 수 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 정말 괴로웠다. 지금 같았으면 “닭껍질과 기름은 떼고 조리해주세요”라는 부탁이라도 했을텐데. 

 

살아있는 닭을 골라 그자리에서 잡아주는 시스템이 재래시장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1970년대 후반 즈음까지 아파트 상가에서도 이렇게 닭을 잡아줬다면 믿을 수 있을런지. 그 이후에도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즈음에는 확실히 있었다는 사실이 기억나는 것은 기막힌 추억때문이다. 그무렵, 여의도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날도 다름없이 복날이 되어 닭을 사러 아파트 지하상가로 갔다. 당시 내가 살던 대교아파트에는 상가가 두 동이 있었는데, A동 지하는 좀 더 밝고 깨끗한 분위기였던 데에 반해 B동 지하는 어두컴컴하고 좀 더 재래시장 같은 분위기였다. 아파트 상가였음에도 (그것도 지하!) 닭장이 있었으니… 하여간 그날도 마음에 드는 닭을 골랐고, 닭집 사장님은 목을 휙 꺾더니 털 뽑는 통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수영장에 있는 탈수기 처럼 텅텅 위잉 소리를 내며 돌아가더니 아뿔사. 뚜껑이 제대로 닫히지 않았었나보다. 통 속을이리저리 부딛치며 돌아가던 닭이 뚜껑이 열리면서 튀어나왔다. 좀비! 듬성듬성 털이 남은 닭이 목이 꺾인 채로 이리저리 내달리는데… 끔찍하다면 끔찍할 그 광경이 기막히도록 놀라우면서 꼭 그만큼 웃음이 나오는데, 현실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이건 만화야. 만화의 한장면이야… ‘그렇게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한번 본 사람은 잊을 수 없는 그런 광경이었다. 

 

닭을 고르는데도 요령이 있다. 삼계탕이나 약으로 하는 백숙을 끓이려면 작은 약병아리로 골라야 한다. 병아리다운 노란 털을 벗어버리고 정수리로 빨간 볏이 막 나오기 시작하는 녀석들을 약병아리라고 하는데, 식량이라기 보다는 보신하는 약으로 많이 쓰기에 藥자를 넣는다. 요즘 문제가 되는 백세미가 나오기 전에는 알 낳는 닭으로 쓰지 못하는 수평아리 웅추(雄雛)를 백숙이나 삼계탕 재료로 삼았다. 오래 키울 가치가 없는 수평아리들은 초등학교 교문 앞에서 아이들에게 팔리거나 이렇게 약병아리로 복날을 위해 길리웠다. 백세미란 것이 나와 그나마도 쓸모 없어진 이 수평아리들은 요즘 그대로 믹서에 갈려 반려동물의 사료원료로 쓰인다고 하니 마음 한자락이 쓰려온다. 

 

너무 큰 닭은 질기다. 토막을 내서 닭찜을 한다면 모를까 통째로 넣고 끓이기엔 적당치 않다. 병아리도 아닌 듯 다 자란 닭도 아닌 듯한 그런 어린 닭을 골라야 한다. 너무 작아도 먹을 게 없으니까. 크기를 정했으면 눈빛이 또렷하고 활기찬 닭, 깃이 반드르르 윤이 나고 고른 닭을 골라야 한다. 그렇다고 크고 질긴 닭은 나쁘고 작고 연한 닭은 좋다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 아무래도 어리고 작은 닭이 연하긴 하겠지만 큰 닭도 조리시간을 길게 잡으면 쫄깃한 식감을 살릴 수 있다. 또 연하고 질긴 것은 비단 크기나 연령에 비례하지 만은 않는다. 자란 환경이나 운동량과도 관계가 있다. 집에서 꼼짝 않는 사람과 밖에 나가 운동하는 사람의 근육량이 차이나듯, 비좁은 닭장에 갇힌채 자란 닭과 놔먹이는 닭은 차이날 수 밖에 없다. 갇힌채로 사료먹는 닭과 넓은 마당에 풀려 마음대로 운동하고 먹는 닭중 어떤 것이 더 건강할까. 옛날식 토종닭과 요즘 논란이 되는 백세미를 먹을 때 몸에 미치는 영향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토종닭이라니 생각나는 일이 있다. 거의 20년도 넘었던 어느 날, 아마 1990년이었을까. 집에서 쉬고 있는데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엄마가 진관사 앞에서 토종닭을 사주시기로 했으니 시간되면 빨리 가자는 것이었다. 당시에도 그런 ‘놔 먹이는 토종닭’은 먹을 기회가 흔치 않았던지라 다른 생각 할 겨를도 없이 준비를 마치고 데리러 온 친구의 빨간색 차를 타고 진관사로 향했다. 지금은 죄 울창한 아파트숲으로 재개발되었다지만, 그땐 여기가 과연 서울 맞나 싶을정도로 한적한 시골동네 같기만 했다. 논밭을 지나고 염소, 닭, 돼지, 개들이 느긋하게 돌아다니는 그런 집 앞에 차를 세웠다. 미리 연락을 해둔듯 했는데도 방에 들어가서 한참을 기다려서야 백숙이 나왔다. 친구 어머니는 부산 분이신데, 서울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그런 요리 비결들을 알고 계셨다. 토종닭의 맛은 물론 백숙의 뽀얀 살을 소금이 뿐 아니라 파마늘로 양념한 멸치액젓에 찍어먹기도 한다는 것을 그날 배웠다. 소금과 먹을 때의 담백함과는 또 다른 묘한 감칠맛이 매력이었는데, 비리지 않을까하는 우려와는 달리 파와 마늘이 그런 맛은 다 잡아줘 짭쪼롬하고도 콜콜한 젓갈 맛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분이 딸 친구인 나와 나눌 생각을 하지 않으셨더라면 내 평생 그런 토속적인 곳에서 그 맛을 경험해 볼 수 있었을까. 그 이후로는 누구와도 한번 간 적이 없는 유일하고도 무이한 경험이었다. 음식과 정은 나눌수록 맛있고, 우리를 풍요롭게 한다. 

 

토종닭에 얽힌 이야기가 또 하나 있다. 결혼하고 잠시 시댁에서 살 때 였다. 여름이면 닭장수가 트럭에 닭을 싣고 “닭이 왔어요. 빠알간 토종닭이 왔어요” 하면서 온 동네를 돌아다녔다. 백숙엔 작고 어린 닭, 찜이나 튀김에는 다 자란 큰 닭이란 진리를 무시하고 ‘푹 삶으면 이런 닭이 오히려 쫄깃하니 씹는 맛 좋이 좋다’는 닭장수의 말에 시어머니와 나는 홀랑 넘어가 생전엔 빨갰다는 ‘토종닭’을 한 마리 샀다. 크기도 정말 엄청 컸다. 집에 들어와서 깨끗이 씻어 고으려는데, 세상에, 어찌나 닭이 큰지 이 닭이 들어갈만한 냄비도 솥도 하나도 없는 것이었다. 다리는 또 얼마나 긴지. 제일 큰 솥단지를 꺼내 아무리 집어 넣으려 우겨봐도 그 긴 다리를 뻣뻣이 치켜 들고 있는 닭의 모습에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글쎄 닭다리를 잡고 웃음보가 터져버렸다나. 고부간에 닭 다리 한짝씩 잡고 웃다 힘이 빠지도록 실실 웃던 기억은 세월이 흐르고 어머니가 돌아시고도 4년이 흐른 지금까지 우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별로 웃길 것도 없었는데 왜 우린 그날 닭다릴 붙들고 그렇게 웃었을까. 그 맛이 얼마나 쫄깃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마주보고 킬킬대며 웃던 기억은 아직도 그대로 남는 것을 보면, 닭은 씹는 맛으로만 먹는 것이 아닌가보다. 역시 추억은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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