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보다 vs. 예배 드리다

2013년 7월 25일

얘들아, 정말 오랫만에 쓰는 편지로구나. 

그동안 편지가 뜸 했던 것은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요즘 줄곧 뭔가 손에 잡히지 않아서 였어. 특히 최근 들어서는 스무날 가까이 쉬지 않고 비가 내려 몸도 마음도 좀 축 쳐지고 의욕이 없었단다. 이제 반가운 해가 나기 시작하니 좀 더 의욕적으로 지내볼까? ^^

 

며칠 전에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흔히 ‘예배 본다’는 표현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예배 드리는 사람과 예배 보는 사람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 말이지. 

 

1. 본다는 것과 드린다는 것

우선 ‘본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자. 

본다는 것은 관찰하는 것을 의미하지.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의 행동을 지켜 보는 것. 제3자의 입장. 행동의 객체. 방관자. 등등이 떠오른다. 

그럼 ‘드린다’는 어떨까? 

보는 것보다는 내가 움직이는 것이니 행위자, 행위의 주체, 당사자가 되겠다. 보는 것 보다 훨씬 적극적인 참여 형태라고 할 수 있겠다.

 

2. 무엇을 드릴까?

그럼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무엇을 드리는 것일까? 예배 드리는 것은 나를 드리는 것이야. 시간을 드리고 물질(옛날옛날에는 아마 제물이라고 했겠지?)을 드리고 마음을 드리고 결국에는 나를 드리는 것이지. 온전한 나를 드릴 때 온전한 예배가 될 수 있단다.  

 

3. 어떻게 드릴까? 

그렇다면 어떻게 드려야 하는 걸까? 답은 ‘온 맘과 정성 다 해’ 드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저 예배시간에 가서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 만으로는 예배 드리는 것이 아니지. 그저 보는 것만도 못할 수 있단다. 내 마음과 정성을 다 한 시간이야 말로 진정 나를 드리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보면 별 차이 없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런 작다고 볼 수 있는 차이들이 실은 여러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단다. 예배는 자신을 드리는 것인데 영화나 쇼를 보는 것처럼 보는 것, 듣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사람들은 종종 입맛에 맞는 설교를 찾아 쇼핑하듯 정처없이 떠도는 생활을 하기도 하고, 설교는 듣는 사람의 입맛에 맞춰지게 되기도 하고 그 비중은 점점 커지기도 한다. 그래서 또 여러가지 문제들이 생기기도 하는 거지. 예배는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또 이렇게 온전하게 드리는 시간이 쌓이고 쌓이면 내 자신이 얼마나 많이 변하게 될지 우리로선 알 수 없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속담이 있지. 철따라 내리는 성령의 단비에 시시 때때로 내 자신이 적셔질 때 우리는 큰 나무로 자라 선한 열매맺는 좋은 나무가 될 것으로 믿는다. 며칠 있으면 또 주일이 온다. 이번 예배도 우리 잘 ‘드려’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