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뉴스도 폭력이지? - 열매맺는나무

이쯤 되면 뉴스도 폭력이지?

2013년 11월 5일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뉴스’라는 티비 프로그램이 있다. 소식을 전해주는 일을 한다. 이런 기능을 가진 미디어로 신문도 있고 라디오도 있다. 또 인터넷 뉴스도 있다. 라디오 뉴스와 티비 뉴스가 비슷한 점은 시시때때로 자기 좋을 때 자기가 하고 싶은 뉴스를 읊는다는 점이다. 보고 듣는 이의 선택과 기호는 중요하지 않다. 정해진 시간에 일방적으로 뉴스를 쏟아낸다. 

 

그런 점에서 신문과 인터넷 뉴스는 다른 특색을 지닌다. 정보를 받는 사람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여지가 있다. 소식 내용을 바꿀 수는 없어도 내가 알고자 하는 내용을 원하는 시간에 알 수 있다. 

 

티비는 동영상을 제공하는 특성상 시청자에게 미치는 시각적, 심리적 영향이 다른 매체와는 사뭇 다르다. 서로 특종을 제공하려는 경쟁은 보다 자극적인 장면을 별 여과 없이 시청자의 안방으로 그대로 쏘게 만든다. 피 흘리는 사건 현장이 나오고 오열하는 유족의 모습을 비추고 이미 세상을 뜨고 없는 갖가지 폭력의 어린 희생자들의 과거 피해 모습과 정보를 자세히 캐 내어 제공한다. 내가 알고 싶지 않은 내용이라도 그 시간에 그 채널로 티비를 켜 놓은 이상 꼼짝없이 봐야 한다.    

 

티비와 다른 뉴스 매체가 다른 것은 1:1이 아니라 1:多 대응 매체라는 점이다. 그 시간 그 공간에 어떤 구성원과 함께 있건 일단 티비 뉴스를 틀었다면 꼼짝 없이 다 함께 보고 들어야 한다. 교사의 파렴치한 짓이며 국제적 인사의 망신, 끔찍한 테러현장, 인권유린사태, 가까운 동네에서 일어난 성범죄, 인신매매까지 나이제한 없이 일방적으로 제공한다. 이른 아침, 출근 준비 등교준비를 하면서 혹은 아침을 먹으면서 일기예보나 교통상황을 들으려던 이들은 이런 식으로 시각적, 감정적 공격을 무차별로 당한다. 우리 집 아이들이 “뉴스야 말로 19금”이라고 말하고 다닌지 오래다. 이런 뉴스는 시간대 별로 하루 종일 되풀이 된다. 그리고 집집마다 뉴스를 좋아하고 뉴스만 시청하는 식구는 거의 한 사람씩 꼭 있다.  

 

티비와 라디오는 그래도 뉴스프로그램을 선택해 틀어야 나오니 피할 수 있다. 하지만 피하기 어려운 뉴스가 있다. 바로 SNS를 통해 접하게 되는 뉴스다. 트위터에서 방송국이나 신문사 계정을 팔로우하면 원하지 않는 순간에도 흘러가는 타임라인에 뉴스가 튀어 나온다. 같은 방식으로 페이스북에서 해당 페이지를 좋아요~ 하면 트위터에서 제공하는 뉴스보다 더 자세하게 시도 때도 없이 전해준다. 심지어는 아까 본 소식도 누군가 그 기사를 ‘좋아요’하면 몇번이고 몇 번이고 다시 나타난다. 아무리 내가 ‘최신글’로 정렬하기를 선택하더라도 댓글이나 좋아요를 누군가 새로 하면 그것도 ‘최신’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렇다. 얼마 전부터 그렇게 바뀌었다. 

 

사람은 공격을 받으면 다치게 되고 상처를 입게 마련이다. 뉴스로도 상처를 받는다. 그 결과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고 움츠리게 만든다. 뉴스를 통해 범죄를 간접체험한 효과를 얻는다고나 할까. 이유있고 적절한 두려움은 사람을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만들어 실수를 줄이게 하지만, 많은 두려움은 쓸데 없는 걱정을 하게 만들고 망설이게 만든다. 그리고 사람을 의심하게 만든다. 

 

내가 아이들을 기를 때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 가운데 하나가 ‘홀로서기’다. 언제건 아이들은 독립하기 마련이다. 단지 빠르고 늦고 차이일 뿐이다. 아들이건 딸이건 혼자 밥 벌어 먹고 밥 해먹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살아갈 줄 알아야 한다. 장소도 상관 없다. 외국이건 지방이건, 같은 서울 하늘 아래서건 나와 같은 지붕을 쓰건 아이들은 독립해야 한다. 육체적으로 감정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아이들은 독립해야 한다. 떨어진 단추 달고 구겨진 옷 다리는 것 같은 기능적인 것들은 독립하기 전에 갖춰야 한다. 그리고 그 실전연습은 여행이다. 

 

아이들은 용감하다. 언제고 출발할 준비가 되어있다. 가끔 만용을 부리는 아이들도 없진 않지만. 겁내는 것은 거의 언제나 부모들이다. 늘 하는 말이 “너를 못믿는게 아니라 세상을 못믿는거다.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하는 것이다. 세상이 이렇게 무섭다는 것은 누가 가르쳐 줬나. 뉴스가 가르쳐줬다. 

 

뉴스가 가르쳐주는 또 한 가지는 ‘그럴만하다’는 태도다. 피해자는 모두 그럴만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왕따는 그럴만한 구석이 있었고, 성범죄 피해자도 그럴만하게 꾸미고 그럴만하게 늦은 시간에 나다녔단다. 학교폭력 피해자 역시 그럴만했기는 마찬가지다. 책임은 피해자에게 있다는 건가. 가해자의 잘못은 그럴만한 이들에게 참지 못했다는 점 하나고, 술을 먹고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이었다는 것이 일관된 변명이다. 책임 실종의 사회다. 그래서 피해자들은 전학가고 회사를 그만두고 이사를 간다. 가해자들은 학교에 남고 회사에 남고 동네에 남는다. 

 

이런 세상에서 사람들은 움츠러든다. 자식 문제에서는 더욱 그렇다. 소싯적 배낭여행, 세계일주를 꿈꾸던 부모들도 아이들 문제-특히 딸의 여행문제-에 이르러서는 손사래 치며 반대하게 된다. 머리로는 안다.  짧은 여행길을 나서지 못하게 한다면, 실제 길고 긴 인생이란 여행길엔 어떻게 내보낼 것인가. 내가 끝까지 봐줄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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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1. 티비뉴스, 피해야겠다. ‘당신은 뉴스보면 과도하게 흥분하니까 보면 안돼’라며 틀어 놓는 사람이 하나 있다. 다른 방으로 도망가야겠다. 

덧붙임 2. 페이스북에서 뉴스 페이지 좋아요 취소해야겠다. 불쌍한 아이들 소식은 왜 이렇게 자세히 소개해 주는지. 어제는 새엄마 손에 세상을 떠난 아이의 다리뼈 사진까지 보여주더라. 솔직히 치밀었다. 

덧붙임 3. 이 글 초반부 쓸 때, 어디선가 엄청난 소리가 들려왔다. 젊은 여자의 히스테릭한 목소리와 자지러지는 아이 울음소리. 그리고 쿵쿵거림. 산후우울증 걸린 여자의 아동학대는 아닐까 음 졸였는데, 여자보다 침착하고 느긋한 남자의 저음이 들렸다. 조금 안심이 되었다. 적어도 모두 흥분한 상태는 아니니까. 어제밤에는 좋다고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축하하더니… 뉴스로 놀랜 가슴은 들리는 목소리만으로도 이런저런 상황을 상상하게 만든다. 이거 일종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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