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때 필요한 것

2014년 12월 22일

노트북을 열고 글쓰기 프로그램을 켠다. 텀블러에 담아 놓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살 것 같다. 커피는 이미 식어 미지근해졌지만, 그래도 좋다. 발치에 둔 전기난로가 따끈하니 더 좋다. 다시 한 모금 마신다. 연료가 다 떨어져가던 차에 기름을 넣은 것 처럼, 아님 배터리 간당간당하던 스마트 폰에 충전기를 연결한 것 같이 반짝하는 느낌이다. 여유로운 것이 이제 글도 술술 풀릴 것 같다. 실제 앞으로 술술 풀리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더라도 그런 기분이 든다. 왜 그럴까?

 

[pixabay이미지]

 

일의 종류

일은 닥쳐야 후다닥 되는 일이 있고 여유를 두고 느긋해야 하는 일이 있다. 청소나 설거지 같은 일들은 그때그때 해도 기분 좋지만 시간이 촉박하다고 안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없을 때 원래 초능력이라도 갖고 있었던 것 처럼 후다닥 해치워버릴 수도 있다. 십자수나 뜨개질, 낱말풀이나 스도쿠 같은 퀴즈는 어떨까? 아니면 재미로 하는 독서는? 그런 종류의 일들은 시간 여유에 상관 없이 어느 때나 시작하고 끝낼 수 있다. 하지만 여유 있는 시간에 방해받지 않아야 비로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내게는 바로 ‘글쓰기’가 그렇다. 생각하고 그 생각을 풀어내는 일은 다른 일과는 달리 집중과 몰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집중과 몰입

집중과 몰입이 필요한 일은 여유 역시 필요하다. 훈련과 습관에 의해 일에 빠져드는 시간을 단축할 수도 있고, 일단 몰입이 되면 이미 다른 것이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어지간한 자극으로는 방해받지 않는다. 하지만 잦은 방해로 일머리가 자꾸 토막 나면 아무래도 끊어진 것을 다시 이어 집중하기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몰입할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을 찾아 한밤중이나 꼭두 새벽에 깨어 일어나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게 된다.     

 

체력

문제는 체력이다. 아무리 실력이 좋고 정신력이 강하다 해도 그것을 담고 있는 몸이 시원치 않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지구력 없이는 버틸 수 없다. 중간에 포기하게 되고 ‘이만하면 됐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끝장을 보기 어렵다. 공부도 그렇지만 다른 일에서도 역시 체력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체력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꼭 필요하다. 

가끔 힘이라는 것을 여자와는 별 상관 없는 것, 남자에 있어서 보다 덜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주부가 되어서는 더욱 그렇다.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면 다섯 시 반에는 일어나야 여섯 시 이십 분 쯤 아침을 먹이고 일곱시 좀 못되어 등교시킬 수 있다.  더 커서 직장생활을 하게 되더라도 그 시간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고 나면 부지런히 집안 일을 마치고 나도 일하러 나간다. 내 공식적인 근무시간은 오후 2시부터 7시 까지지만, 이런 저런 일들로 오전 역시 바쁘긴 마찬가지다. 일을 마치고 나면 집과 일터가 가까운 나도 7시 반이 넘는다. 부지런히 밥을 먹고 치우면 여덟 시 반. 초저녁 잠이 많은 나는 저녁 먹고 나서는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일을 하면 탈이 난다. 스테퍼나 아령을 이용해 가볍게 운동을 하고 식구들과 이야기 하거나 책을 보다 잠이 든다. 그리고는 다시 아침. 내 시간을 찾아 뭘 하려면 네 시 반에는 일어나든가 지금처럼 퇴근 전 요행이 찾아온 시간을 금쪽 같이 써야 한다.  

엄마들의 하루 사이클은 대개 그렇다. 아침 일찍부터 근무해야 하는 직장 맘들은 더욱 바쁜 일상을 보낸다.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휴식이 아니라 다른 식구들을 서포트 해야 하는 또 다른 내 일이 주부를 기다리고 있다. 자녀가 어리면 몸이 힘든 일이 많고 장성한 뒤엔 머리와 마음을 쓸 일이 늘어난다.  이런 빡빡한 일상은 체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주부야 말로 몸이 자산이다. 여자의 체력은 국력이다. 

 

 

Nanum Gothic;짧은 이 글을 쓰는 50분간 세 번의 방해가 있었다. 두 번은 제자가 방문했고 한 번은 남편의 호출이었다. 12월을 돌이켜 보니 아이들 취업이나 다른 문제로 바쁜 일이 많았다. 바쁜 일정은 무리하도록 만든다. 결국 지난 주는 감기기운을 핑계로 아무것도 못하고 쉬어버렸다. 감기가 걸린 것도 아닌데 두통과 콧물을 동반한 감기기운은 사람을 꼼짝 못하게 했다. 짧고 가벼운 방해는 없는 것보다는 못하지만 그리 큰 장애는 되지 못한다. 바쁜 일도 체력만 된다면 문제가 안된다. 중요한 것은 역시 체력이었다. 나이가 어느 정도 되면 자기가 하는 일에 실력은 자연스레 쌓인다. 반면 체력은 떨어진다. 잘 먹고 잘 쉬는데 덧붙여 몸도 역시 단련해 줘야 한다. 숨쉬는 것 외에 운동하는 것은 싫어하는 내게 지난 주말은 큰 교훈을 안겨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