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빗소리

2014년 7월 23일

장마, 빗소리

비가 내린다. 장맛비다. 이제야 겨우 장마가 시작 되었다. 어젯밤부터. 길고 긴 여름 동안 너무나 가물었다. 땅은 갈라지고 먼지만 날렸다. 담쟁이 덩굴마저 누렇게 죽어버린 목 마른 여름이었다. 어찌나 건조했는지 … 뉴스에서 보는 저수지나 댐들은 거의 바닥을 드러낼 지경이었다. 비가 온다. 생명을 담은 비.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동안은 정말 매일 샤워하는 것도 송구했다. 시골에서는 제한 급수로 화장실 변기나 세탁, 설거지, 세수에 쓰일 물도 귀한데, 나는 서울 산다는 이유로 아침 저녁 샤워를 하다니. 폭염주의보까지 내렸던 까닭에 먼지와 땀으로 뒤범벅 되어 버려 물이라도 끼얹지 않고서는 하루를 시작할 수도, 잠이 들 수도 없는 나날이었다. 물이 출렁여야 할 논이 물기 하나 없이 거북이 등처럼 되어 버린 뉴스 화면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고 있다. 작년만 하더라도 비가 하도 오래 내려 이제 우리나라 기후를 건기와 우기로 나눠야 하는 건 아닐까 했었는데, 올해는 7월 하순이 되어서야 장마가 시작되다니. 다른 때라면 장마도 거의 끝물이 아닌가 말이다.

 

빗소리가 좋다

그래도 힘찬 빗소리와 덜컹덜컹 창문을 흔드는 바람 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놓인다. 안정이 된다.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오기 전에는 2층에 있는 내 방이 옆집 옥상과 마주하고 있어 이렇게 비가 오면 빗소리가 정말 대단했다. 옥상 바닥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는 자다가도 내 귀에 꽂히곤 했다. 창밖을 보면 굵직한 토란대와 거기 달린 커다란 잎들이 흔들흔들 출렁이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우산으로도 씀직한 토란 잎들은 하니와 클로버에 나오는 주인공이 클로보클로 분장한 모습이 생각나 그땐 아직 어렸던 우리 아이 손에도 쥐어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

한옥에서 듣는 빗소리

그보다 오래 전, 내가 아주 어릴 적에 살던 집이야 말로 비가 오면 대단한 모습이 펼쳐지곤 했다. 그 집은 백 년도 더 전인 19세기 말, 조선 시대에 지어진 집이어서 그곳 마당에서 찍은 사진을 본 사람들은 언뜻 고궁으로 착각하기도 했었다. 오래 묵은 정원수와 기와지붕을 보면 사람들은 절이나 궁궐을 연상하게 되나 보다. 그 집 지붕 처마에는 푸른 옥빛으로 칠해진 빗물받이가 있었는데, 모인 빗물은 안방 창 앞에 있는 닭(혹시 봉황이었을까?)머리 모양의 홈통을 통해 아래로 떨어지게 되어 있었다. 그 아래에는 너럭 바위와 조약돌이 빈틈없이 깔려 있어 빗물이 쏟아질 때면 폭포 같은 소리를 내는 한편, 바닥이 수압으로 움푹 패이는 것을 막아줬다. 나는 비가 오는 날이면 길쭉한 창을 열어 젖히고  닭이 토해내는 폭포수 같은 물줄기와 하늘에서 내리는 빗줄기가 연출하는 장관과 음악을 감상하는 것을 즐겼다. 그 뒤로 보이는 주목과 향나무, 단풍나무, 사철나무, 개나리, 라일락 같은 나무는 아름다운 덤이었다.

 

아파트에서 빗소리가 들리나

근사했지만 무척 낡았던 그 집을 두고 아파트로 이사한 뒤로는 더 이상 빗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비 그친 뒤 깨끗하게 씻긴 잎새 위를 도르륵 굴러 떨어지며 비를 마무리 짓는 그런 모습도 보기 어려워졌다. 안과 밖의 단절. 반투명 창호지로 막힌 듯 이어지던 안팎의 세상은 아파트의 이중 유리창으로 거의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아도 소리로 감각으로 이어졌건만, 유리를 통하니 눈으로는 훤히 보이는데 들리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는 기묘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답답했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 것만 같았다. 답답함이 없어질까 창을 열고 소리도 질러 봤다. 그러다 이웃이 생각보다 가까이에(양 옆 뿐 아니라 위 아래에 까지!)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옷장에 머리를 집어 넣고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답답한 것은 여전했다.

 

답답하지 않게, 바람이 통하는 집

그런 경험 때문일까? 지금도 아파트에 살지만 답답한 것이 싫어 맞바람 시원하게 치도록 늘 사방 창을 열어 놓고 지낸다. 그래야 답답하지 않다. 살아본 중 가장 답답한 주거형태는 주상복합 아파트다.환기라고는 될성싶지 않은 창 같지 않은 창이 제일 문제다. 활짝 열어 젖힐 수 없게 빼꼼 틈만 내게 되어 있는 창, 맞바람은 절대 치지 못하게 되어 있는 구조, 환기는 기계로 억지로 순환시켜야 되는 그런 곳에선 어떻게 사나. 온실 속의 시든 채소 꼴로 살기에는 내 자신 너무 팔팔한 것 같다.

 

비가 그쳐야 들리는 빗소리

비가 그쳤다. 아파트에서 비가 그친 것은 어떻게 알까? 경비 아저씨가 길다란 싸리비로(라는 것은 뻥이다)… 가 아닌 연두색 솔로 된 긴 빗자루로 싹싹 쓸어 뒷정리 하는 소리가 들리면 비가 그친 것이다. 겨울에 눈이 올 때도 마찬가지다. 아저씨들이 빗자루질 하며 내는 샥샥 소리는 마음을 정갈하게 한다. 이른 아침 스님들이 곱게 비 지나간 자취를 그리며 하는 비질 못지 않다. 비로 촉촉해진 상태에서 마음까지 비질로 개운해 진달까.

 

 

[빗소리가 그리울 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