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 셋째날 – 쇠소깍, 서귀포, 용머리해안, 성이시돌목장

2017년 2월 3일

 

제주도 여행 셋째날 – 쇠소깍, 서귀포, 용머리해안, 성이시돌목장

드디어 여행 마지막 날. 첫째날과 둘째날에는 제주시에서 출발해 시계방향으로 돌아 동쪽을 돌았다. 마지막인 셋째날에는 다시 쇠소깍-서귀포-용머리해안-성이시돌 목장 순으로 해서 시계방향으로 마저 돌아 공항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쇠소깍


쇠소깍은 쇠(소), 소(沼못), 깍(하구河口)가 합쳐진 말로 하천과 바다가 만나 이룬 커다란 웅덩이라고 할 수 있다. 티비에서 가끔 보던 투명 카약이나 뗏목이 떠 있는 바로 그곳이다.

쇠소깍으로 흘러내리는 효돈천은 물기가 거의 없어 건천이다시피 했다. 사실 제주는 옛날 지리시간에 배웠다시피 현무암지대라 비가 오면 그대로 스며들어 대수층을 흐르다 바다 가까이 짠물을 만나면 솟아 오른다. 그것을 용천湧泉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하천에는 물이 없고 바다를 만나는 하구에서 이렇게 수량이 풍부한 못이 만들어졌나보다.

아이들은 투명카약을 타고싶어했고, 나는 줄을 잡고 이동하는 뗏목인 테우를 타고싶어했지만 모두 뜻을 이루지 못했다. 나이 탓을 하는 남편과 엘보가 아픈 나 때문에 카약 꿈은 접어야 했고, 테우는 아쉽게도 원하는 식구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서귀포 쪽으로 다시 길을 나섰다.

이국적인 서귀포의 가로수

 

서귀포, 시내도 재미있다

서귀포 가는 길은 가로수부터 이국적인 느낌이었다. 하염없이 쭉 뻗은 길엔 차도 많지않아 그저 달렸다. 뜨거운 볕 아래 에어컨의 고마움을 느끼며 한참을 달렸다. 그렇게 달리면서 정방폭포도 소정방폭포도 지나쳤다. 나중엔 천지연 폭포도 올 때 마다 봤으니 볼거 없단다.

“그냥 가.”
이런 증세는 힘들거나 배고플 때 나타나는 증세. 난 커피 브레이크와 식사 처방을 내렸다. 그래서 찾은 곳이 유동커피다.

 

유동커피

제주 서귀포 유동커피

유동커피는 막내가 자기 이름과 비슷하다며 추천한 곳인데, 알고보면 근처 많은 커피집들 중에서도 꽤 유명한 곳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반기는 서늘한 바람과 커피향. 피곤이 저절로 풀리는 듯 반가웠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 막내는 요거트, 한겨울 빼고는 차갑게 마시는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머지 식구는 라떼 아트로 장식된 커피 하나씩. 점심때가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은 점점 많아져 어느새 카페 안은 사람들로 꽉 찼게 되었다. 우리도 이중섭 생가에 들렀다 올레 시장에 가기 위해 일어섰다.

 

이중섭 생가

유동커피에서 길을 건너 언덕배기로 올라가다보면 오른쪽으로 우묵하게 들어간 곳에 이중섭 생가가 있다. 이 집 전체도 아니고 방 하나를 세 내어 지냈다고 한다. 가난했지만 그래도 가족이 함께 지냈던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한다. 아주 오래전, 백윤식이 이중섭으로 나왔던 프로그램을 본 적 있었다. 그렇게 사랑했는데 너무 가진게 없어서 처갓집으로 처자식을 보내야했던 마음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일본으로 식구들을 만나러가기 위해 전시회를 열어 그림은 팔렸지만, 난리통에 그림값을 제대로 받지 못해 좌절했을 때는 또 얼마나 찢어지듯 아팠을까.

지난 10월,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이중섭전 에서 그가 쓴 편지를 볼 수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어찌나 구석구석 스며있던지. 마음이 아팠다.

 

서귀포 올레시장

서귀포 올레시장은 오일장인 향토올레시장과 상설시장인 매일올레시장이 있다. 날짜가 맞는다면 향토시장을 찾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매일올레시장이라도 들러보자.

매일올레시장에는 주차장도 잘 마련되어있다. 이 시장은 관광객 덕분인지 깔끔한 환경에 제주라는 특색, 주차 걱정과 카드만 가지고도 쇼핑이 가능한 곳이다. 어려움을 겪는 재래시장도 많은데 이렇게 운영하면 좀 더 사정이 나아지지 않을까.

아, 그리고 또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는데 바로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도록 가격을 크게 써 붙여놓았다는 점이다. 전에 몇몇 시장분들께 가격을 써놓지 않는 이유에 대해 질문했더니 그래야 손님들이 묻고 흥정이 시작된다고 한다. 하지만 마트나 백화점, 수퍼 혹은 인터넷 쇼핑에 익숙한 세대는 정찰제에 익숙하다. 사람들에게 뭘 묻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묻기만 하고 사지 않는 것을 어려워한다. 깨끗한 환경과 주차장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가격표시와 카드환영은 지갑을 열게 만든다.

 

칠십리시공원

칠십리시공원풍경

올레시장에서 한 쇼핑은 정말 즐거웠다. 몇가지 먹을 것을 사 가지고 칠십리시공원으로 가져갔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공원 벤치에서 녹음을 즐기며 먹는 점심 피크닉은 진정 환상이었다. 특히 한라봉 쥬스와 고로케는 더할 나위없이 훌륭했다. 이 공원을 한 바퀴 돌다보면 놀라운 사실이 알게된다. 바로 천지연 폭포를 높은 곳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천지연폭포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고 구경하는 것 처럼 물을 내 손으로 만져볼 수는 없지만, 대등한 위치에서 눈높이를 맞춰 바라보는 경험은 여기서만 가능하다. 공원 입구에서만 머물다 가지 말고 꼭 한바퀴 돌아보시기 바란다.

 

산방산과 용머리해안

점심을 먹고 공원을 걷다 보니 어느새 한낮, 타들어갈 것만 같은 뜨거운 태양을 이고 달렸다. 첫날 마트에서 생수를 박스로 사서 숙소 냉장고에서 얼린 다음 아이스 백에 넣어 차 트렁크에 넣고 다녔는데, 그 진가는 마지막 날 발휘됐다. 아무것도 없는 들판을 달리다보면 문득 울산바위 같이 생긴 바위산을 만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산방산이다. 이 산은 보는 이에 따라 큰 감동을 준다. 산을 잘 보면 병풍같은 바위산에 파인 굴이 보이는데, 바람이 만든 것으로 ‘풍화혈(風化穴)’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바다쪽으로 한 10여분 정도 내려가면 하멜이 타고왔다는 배 모형과 하멜 전시관이 있는 용머리 해안이 나온다.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사암을 수 없이 많은 파도가 때리고 스쳐 조각해 놓은 주름같은 절경이 나타난다. 하지만 아무나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다. 물때를 잘 맞춰간 사람만 볼 수 있다. 우리가 갔을 때는 하필 밀물인데다가 파도가 심해 들어갈 수 없었다. 입장불가를 내건 바리케이트를 만났을 땐 정말 잘못세워진 것인줄만 알았다.

아쉬운대로 난파선 갑판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았다. 주름진 용머리해안 모습이 살짝 보였다. 자연에 아로새겨진 예술작품을 본다는 기대가 너무 컸던가. 아쉬운 마음을 안고 발길을 돌렸다.

용머리해안

성 이시돌 목장

애월에 가서 친구네 감귤밭에 있는 작업장을 구경하자고 마음 먹고 왔건만, 그 계획은 무산되었다. 자연스레 성 이시돌 목장이 제주여행의 마지막 코스가 되었다.

성 이시돌 목장은 성인 ‘이시돌’의 이름을 딴 목장이다. 성 이시돌(St. Isidr)은 중세 에스파냐의 농부로 하나님의 영토인 땅을 가꾸고 농사짓는 일에 열성을 다 했다고 해서 농민을 위한 성인이 되었단다. 난 ‘성인 이시돌’이라길래 성이 이씨고 이름이 시돌인 우리나라 분인줄 알았다. 아일랜드 출신의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 신부가 콜롬반 외방선교회 소속으로 제주에 왔다가 가난한 이들의 자립을 도와주기 위해 1961년 실습목장으로 세웠다고 한다. 많은 볼거리나 체험거리는 없다. 그저 사진찍기 좋은 장소라는 인상이었다. 목장에서 더 가면 성당, 수도원, 요양원, 복지병원, 피정센터 등이 있다고 하는데,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 알게되어 직접 가보지는 못했다.

제주 성이시돌목장 테쉬폰

위에 보이는 쓸쓸한 분위기의 건축물을 테쉬폰이라 부른다. 테쉬폰은 이라크에서 발달한 것으로, 여기 이 테쉬폰은 1961년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숙소로 지어진 이래 용도를 달리해 가며 쓰였다고 한다. 하루 종일 고된 일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들은 이 고요한 곳에서 저 창아래 누워 별빛을 보다 잠이 들었을까. 윙윙대는 바람소리를 자장가삼아 미처 하늘 바라볼 새도 없이 잠들어버렸을까.

제주 성이시돌목장의 말들

목장 입구부터 나 있는 길을 따라 걷다보면 저 끝에 바리케이트가 보인다. 젖소들은 그 너머에 있어 관광객들에겐 말만 보인다. 새파란 하늘 아래 말들이 한가로이 여기저기 풀을 뜯고 있는 말. 몸의 아름다움으로 따지자면 말은 내가 본 중 가장 아름다운 동물이다. 맺혀줬다 풀어줬다 곡선과 음영이 확실하고 양감 질감 볼륨감 모두 손에 잡힐 듯 살아있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도 누구라도 반할만 하지 않을까.

제주 성이시돌 목장 우유부단카페

주차장 옆에는 ‘우유부단’이라는 카페가 있다. 우유가 끊임없다니, 우유와 아이스크림을 파는 목장 카페에 딱 어울리는 이름이다. 그 카페 입구쪽에는 이렇게 우유팩을 상징하는 설치물이 몇 개 있다. 그늘과 앉을 걸상을 동시에 제공한다. 정말 재치있다. 그 이름 만큼이나 재치있다. 생활과 예술의 경계는 존재하는가. 여기서 생활예술을 봤다.

다른 부속시설을 들리지 않고 이 목장의 사진 몇 컷에 반해 일부러 찾아오면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평화롭게 이쁜 사진 몇 장 찍는다 생각하고 와야 한다. 입장료는 없다.

하루종일 머리 위에서 이글대던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나무에 어리는 햇살에 감귤빛이 더해진다. 그림자가 길어진다.
차창을 열고 바람이 머리칼을 어루만져 날리도록 내버려둔다.
제주를 느낄 시간이 몇 시간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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