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그릇과 같은 우리

2014년 7월 23일

질그릇과 같은 우리

오래전, 메소포타미아의 테라코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석재가 드문 그곳에서는 진흙을 반죽해 구워 쓰는 테라코타가 발달했다. 일찍부터 발달했고 다양한 방면에 널리 쓰였다. 하지만 흙과 연료의 문제로 높은 온도에서 구울 수 없어 강도가 약했고 아름답지도 않은 그 단계에서 머물게 되었다고 한다.

질그릇은 이쁘지도 않고 잘 깨진다. 고급도 아니고 싸구려 막그릇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우리를 질그릇에 비유하곤 한다. 이유가 뭘까? 우리가 질그릇 말고 좀 더 ‘고급진’ 그릇이 될 수는 없을까?

 

 

깨지기 쉬운 질그릇

질그릇은 충격에 약해 깨지기 쉽다. 얇으레 하고 가벼우면서도 딴딴한 도자기가 되려면 좋은 흙으로 만든 그릇을 고온에서 두 번 구워야 한다. 도기는 보통 1300도 이하에서 굽고 자기는 1300~1500도에서 굽는다. 우리가 미술시간에 배워 친숙한 테라코타 같은 질그릇은 800도 정도의 낮은 온도에서 초벌구이만 했기에 약하다.

 

 

질그릇과 같은 우리

우리는 질그릇 같은 존재다. 말 한 마디에 상처 받고 작은 행동 하나에도 상처 받는 우리는 참으로 연약한 존재다.

 

 

그릇의 가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귀하다 하는 것은 우리 안에 보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릇의 가치는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배설물을 담는 요강이나 쓰레기가 담긴 쓰레기통도 있고 사약을 담은 약사발도 있다. 그런가 하면 밥그릇이나 물 그릇도 있고 앓는 향기로운 꽃을 품는 꽃병도 있다. 천하에 귀하지 않은 영혼은 없다. 하지만 우리 안에 어떤 것이 담겨 있느냐에 따라 더 귀한 존재가 될 수 있다.

 

 

무엇을 담을 것인가

생선 싼 종이에서는 비린내가 나고 향을 싼 종이에서는 향내가 나듯 우리 안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풍기는 향기와 인상이 달라진다. 내 안에 어떤 것을 담아 어떤 냄새를 풍기게 하느냐는 온전히 내 재량이고 내 책임이다. 과연 무엇을 담아야 할 것인가, 어떤 그릇으로 완성될 것인가는 내게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