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와 본성

2013년 8월 26일

치매에 걸리기 싫다. 
잠 안오는 낯선 도시 낯선 호텔의 객실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치매에 걸리기 싫다고. 만약 그렇게 되면 음란과 호색, 방탕함, 남 헐뜯기 좋아하고 돈을 사랑하는, 거기다 실은 게으르고 저열하기까지한, 이제까지 감추고 꽁꽁 숨겨왔던 내 밑바닥 본성이 더 이상 감출 수 없이 무방비 상태로 만천하에 낱낱이 날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드러날 것 같다. 그것이 두렵다. 
치매에 걸리면 인간의 본성이 드러난다고 한다. 내게는 고모님이 한 분 계신다. 그런 가설을 바탕으로 할 때 그 분은 정말 고아하고 깨끗한 인격을 가지신게 분명하다. 치매 후에도 효성과 우애가 깊고 다정하고 남을 존중한다.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깍뜻한 존대말로 대한다. 욕설은 치매 걸리기 전에도 후에도 고모 입에서 나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요즘도 당신의 몸은 물론 주변도 깔끔하게 유지한다. 
이십년전 칠십대였던 고모를 모시고 버스에 올라탄 적이 있다. 모시치마저고리에 수놓은 양산을 받치셨으니 여름이었나보다. 돌아보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요지는, “얼마나 곱게 늙으셨나! 나도 저렇게 늙고싶다. “는 것이었다. 얼마나 으쓱 했는지! “저 여자 정말 예쁘다.”란 말 보다 “저렇게 늙고 싶다.”는 말이 더 귀하고 가치있음을 그때 알았다. 
내가 지금 읽고 보고 듣는 것들이 내 생각이 되고 나 자신이 된다. 타고난 성질을 바꾸는 것은 하나님께만 가능한 일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노력으로 ‘세탁’ 정도는 되지 않을까. 사람의 노력과 하늘의 도움으로 오랜 습관과 태도에서 돌이켜 온전하게 되어 가는 것. 성화(聖化)이자 말씀의 체화(體化)가 바로 그것이겠다. 비단 치매 걸려 드러나게 될 내 조악한 밑천을 가리려는 얄팍한 발상에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해 볼만한 가치로운 일이 아닌가. 보다 나은 인간으로 나를 개조할 수 있다니 말이다. 
여름 밤이 이렇게 길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긴 밤을 보냈다. 시트 스치는 소리가 이렇게 크게 울리긴 처음이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다 보니 뜬금없이 별 생각을 다 했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전에는 걸리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질병들을 걱정하게 되었다. 음주, 흡연, 과식과 운동 부족 등이 많은 성인 질환을 불러온다. 너도나도 다이어트와 신체 단련에 힘쓰는 생활을 한다. 몸에 힘쓰는 만큼 정신도 단련하고 절제할 필요가 충분히 있다.
2013. 8. 23. 잠 안 오던 금요일 밤. 
연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