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국

2014년 8월 19일

콩국

… 새벽의 노량진 시장, 아이들이 좋아하는 기어다니는 꽃게 

 

해질녘 여름 시장 좌판 위의 우뭇가사리 넣은 콩국 

인사동 툇마루 막걸리와 골뱅이, 아내와 함께한 대작…

 

구본형의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삶에 있어 행복이란 무엇이고 여유란 무엇인가에 관한 구절이다.  

 

난 이제껏 밖에서 콩국을 사 먹어본 적이 없다. 콩국은 늘 집에서 만들어 먹는 여름음식이었다. 시원하게 콩국을 먹던 어느 여름 날 ‘콩국은 집에서 먹어야지 절대 밖에서 사 먹고 다니면 안된다’고 엄히 이르신 할머니 말씀 때문이다. 냉장시설이 시원치 않던 옛날 상하기 쉬운 음식인 콩국은 배탈과 직결되었으니 당연한 말씀이었다. 하지만 어릴 적 그 말씀은 ‘콩국 매식=배탈’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공식이자 율법 같은 말로 각인되었다. 그래서 고소하고 시원한 콩국은 몇 푼 돈을 주고 먹을 수 있는 그런 음식이 아니라, 늘 콩을 불려 삶아 갈아 걸러야 얻을 수 있는 귀한 별미가 되었다. 

 

콩국과 비슷하게 내게 금기시된 음식이 있었다. 돼지갈비다. 한창 돼지 디스토마 감염으로 시끄러웠던 시절, 아버지는 ‘밖에서 돼지갈비 같은 것은 사 먹지 말아라’고 말씀하셨다. 원래 아버지는 고기를 그리 즐기지 않으셨고, 나도 돼지고기는 언젠가 잡내로 괴로웠던 적이 있던 지라 그 말씀은 대학교 4학년 때 까지 지켜졌다. 하지만 대학 친구들과 돼지갈비를 숯불에 한번 구워 먹어본 뒤로는 한동안 가장 즐겨 먹는 음식이 되어버렸다. 

 

둘 다 집안의 가장 큰 어른들로부터 나온 말씀이었는데 콩국은 지켜지고 돼지갈비는 그렇지 않게된 까닭은 무엇일까? 나는 누가 한 말인가, 언제 들은 말인가에 따라 각인되는 깊이가 달라진다고 본다. 할머니는 어린 시절 내게 최고의 존재였다. 내 모든 소원을 이뤄주고 내 마음 깊은 곳을 이해해주며 미처 몰랐던 것을 깨우쳐 주고 앞길을 인도해주는 신의 대리자 같은 존재였다. 불경스럽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괴로운 일로 기도할 때면 나도 모르게 ‘할머니…’하며 시작하게 되어 스스로 곤혹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아버지도 대단한 존재지만, 할머니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내 소원은 알지 못하는 것 같았고 나를 이해하기는 커녕 너무나 바빠 얼굴 볼 시간도 없어 나도 아버지를 잘 알지 못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분명했지만 가깝지는 않은 그런 사이였다. 말에 담긴 힘은 어떤 사람으로부터 나온 말이냐에 따라 그 크기와 강도가 달라진다.  콩국에 담긴 힘이 돼지갈비에 담긴 것보다 훨씬 큰 것은 말할 나위 없다. 

 

훌륭한 교사란 사회적 지위는 물론, 배움의 많고 적음이나 실력 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얼마나 서로 통하는가, 학생이 교사에게 얼마만큼 마음을 열고 대하며, 교사는 학생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점 역시 중요하다. 객관화 하거나 수량화할 수 없기에 놓치기 쉽다. 일견 덜 중요해 보이기도 하지만, 극미량의 미네랄이 인체에 대단한 영향을 미치듯, 이것을 소홀히 하게 되면 개인과 사회에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런 점에 있어서 할머니는 내게 훌륭한 교사로 큰 역할을 하신 분이셨다.

 

하지만, 할머니의 그런 말씀도 훨씬 뒤에, 적어도 십 대 이후, 혹은 스무 살 넘어 들었다면 과연 같은 효력을 미쳤을까. 사 오십 줄에 들어선 사람에게 누가 ‘얘야, 콩국은 밖에 나가 사 먹으면 안된다. 배탈 난다.’ 말해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나 같아도 관심 갖고 챙겨주는 그 마음만 고맙게 받고 말 것이다. 그러니 예닐곱 살에 들은 콩국과 십 년 뒤에 들은 돼지갈비 이야기는 효력이 다르게 미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콩국과 돼지갈비로 말미암아 얻게 된 것은,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일 수록 어린 시절에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중요한가에 관해서는 개인마다 이견이 있겠으나, 인간 됨됨이를 구성하는 기본 골격과 그 바탕은 어린 시절에 마련되어야 한다. 그밖에 기술적인 것, 지엽적인 것, 말랑말랑한 내용물, 가변적인 것들은 그때그때 발달단계와 필요시기를 고려해 학습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탄생의 순간, 다른 모든 기관들은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발달된 상태인데 반해, 두뇌는 출생 후 몇 년 동안 계속 발달할 여지를 둔 미숙한 채인 것은 더 이상 머리가 커지면 정상 출산이 불가능해 지는 점도 있겠으나, 머리에 담는 것은 가슴에 담는 것 보다 좀 나중이어도 된다는 반증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고, 로버트 풀검은 ‘내가 배워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책을 썼다. 많은 문제들은 기본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발생한다. 국영수나 기타 교과 성적이 좋지 않아 생기는 것이 아니다. 말썽쟁이가 학교에서, 군에서, 국회에서, 법조계, 학계, 심지어 종교계 까지 사회  곳곳에서 생기는 것은 그들이 학창시절 공부를 못해서가 아니다. 어릴 때 ‘밖에서 파는 콩국 먹으면 배탈나기 쉽다’, ‘남의 것을 탐내면 안된다’, ‘남의 집 살이 하는 사람도 똑 같은 사람이다’, ‘네가 대접 받고 싶은 대로 다른 사람에게도 똑 같이 해줘라’, ‘욕심부리지 마라, 나눠 먹어라’하는 말들을 해주는 사람, 온전히 나를 이해해주고 감싸주는 사람, 내가 온전히 기대고 마음을 열 그런 사람이 곁에 없었던 까닭이다. 

 

삼대가 어울리는 대가족이 핵가족으로 되면서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잃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어머니들은 직장으로 내몰렸다. 문제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선택이 아니라 많은 경우 어쩔 수 없이 형편 때문에 이뤄진다는 점에 있다. 이제 아이들은 방과 후 반겨주는 이 하나 없는 집에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간다. 여유가 있는 아이들은 학원을 전전하며 학원 교사나 친구들과 어울리지만, 그마저도 없는 아이들은 홀로 집에 남아있거나 거리를 배회한다. 나를 이해해주고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은커녕 사람 그림자나 목소리도 없다. 아이들은 늘 배고프다. 간식을 챙겨주는 식구가 없어 그럴 수도 있지만, 관심과 사랑에 늘 목마르고 배고프다. 

 

사실 아버지가 직장에 나가 돈을 벌고 어머니는 집에 남아 살림과 육아를 담당하는 가정의 분업이 일반화 된 것은 산업사회 이후의 일이다. 그 전에는 온 식구들이 모든 일을 나눠 맡았다. 이제 아이들에게 집에서 돌봐줄 어른이 필요하다고 누구 한 사람이 집에 들어 앉아있기는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고용시장은 불안하고 임금은 혼자서 온 식구의 생계를 책임질 만큼 넉넉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제 아이를 둘러 싸고 있는 사람들이 그 일을 함께 해야 한다. 부모는 지금보다 더 아이를 안아줘야 한다. 좀 더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들어줘야 한다. 이웃과 교사도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콩국 이야기를 해주는 할머니 역할을 해야 한다.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관심 갖고 보살펴 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은 이제 더 미룰 수 없는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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