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산책

2017년 2월 16일

 

홍제천/사천교-한강/망원코스

숲속을 걷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 경사진 길은 곧 헐떡거림을 의미하기에 때론 물가를 걷는 것도 좋다. 한여름 땡볕만 아니라면 툭 터진 곳에서 햇살과 바람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벚꾳 피는 봄날의 양재천도 좋고, 여름철 군데군데 그늘이 있고 발도 담글 수 있는 도심 한 복판 청계천도 좋다. 하지만 내가 자주 가는 곳은 역시 가까운 곳에 있는 홍제천/사천교 – 한강/망원 코스다.

 

이른 봄, 한강 풍경

춥다고 얼어죽을까 꽁꽁 집안에만 스스로를 가둔채 지냈던 지난 겨울. 경칩은 아직 열흘도 더 남았는데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처럼 오랫만에 밖으로 튀어 나갔다. 사실 더 이상 집에만 있다가는 동면하러 들어가는 곰이 될 것만 같았다. 동물들은 투실해져서 들어갔다가 자고 일어나면 홀쭉해 지건만, 사람들은 겨울이 지나고 나면 더 퉁퉁해진다. ‘이제는 좀 움직여야지’하고 나선 홍제천. 그곳엔 이미 봄이 슬쩍 스쳐지나간듯 했다. 군데군데 물 오른 나뭇가지며 마른 풀 사이로 얼굴을 내미는 초록이들. 물 위도 이름모를 물풀이 자라고 있었다.

홍제천 사천교에 봄이 왔나봐

 

천변에는 마른 풀을 베고 긁어모아 태우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새로 나는 식물들을 잘 자라게 하고 환경을 정비하는 이유도 있지만, 해충의 알을 없애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나무에 짚으로 둘러주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한강 산책

강을 따라 걷다 오른쪽으로 뻗은 샛길을 따라 올라가면 월드컵공원으로 이어진다. 주말이면 아이들의 함성으로 가득한 놀이터가 목요일 아침은 적막하기만 하다. 어린 아이를 어른들은 ‘인꽃’이라고 했다. 사람은 사람이로되 꽃처럼 이쁘다고 해서 인꽃이다. 내가 보기에 아이들은 빛이다. 아이들이 있고 없고에 따라 그 자리가 환해졌다 어두워졌다 하니 아이들은 빛이다.

군데군데 응달진 곳에 잔설이 남아있다. 그저 눈으로 덮인 것이 아니라 며칠 전 추웠던 날씨에 얼음으로 꽝꽝 얼었다가 반쯤 녹아내리는 참이다. 마른 땅으로 잘 골라 딛어야지 자칫 잘못 밟았다가는 미끄러져 넘어지기 십상이다. 공원 끄트머리에 있는 공중화장실 뒤로 돌아나가면 비스듬히 휘어져 걸어내려갈 수 있는 구름다리가 있다. 그 다리를 건너면 바로 한강시민공원 망원지구다.

 

한강시민공원 망원지구

여름이면 성산대교 아래서 영화관람도 할 수 있고(작년에는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와 함께하는 ‘한강다리밑 영화제‘가 열렸었다), 잔디밭에서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저녁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즐거운 곳(여름저녁, 한강)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누렇게 메마른 잔디뿐. 황량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물에 닿을 듯 낮게 깔린 구름과 잿빛으로 물든 강물뿐인 지금도 나름의 멋이 있다.

 

한강 둔치를 따라 산책하다보면 곳곳에 보이는 것이 편의점과 공중화장실이다. 따로 떨어져있되 멀지 않은 곳에 적정 거리를 두고 있다. 마치 걷거나 자전거 타다 출출하면 손 씻고 먹고 또 다른 볼일도 보라는 듯이. 출출하다는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걷다보면 편의점이 보이는데, 출출하다보면 나타나는 것인지 아니면 편의점이 보이고나면 조건반사처럼 출출해지는 것인지 영 아리송하다. 슬슬 간식생각이 날 때 만나게 된 편의점에서 뭔가 먹다보니 다음에 편의점을 보게되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침이 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튼 걷자고 나온데는 지방을 불사르겠다는 기본 마음가짐이 있었을텐데 또 다른 한 구석에서는 간식거리를 생각하는 그런 모순이 내 안에서 벌어진다.

 

한강산책에 빠질 수 없는 간식 – 맥스봉과 맥주 한 캔

솔직히 이번 행차에는 맛보자 노린 것이 있었다. 바로 CreativeDD님이 블로그에서 소개한 허니버터맛 오징어 맥스봉 이다. 아니, 허니버터맛 오징어도 요상한데 그걸 소시지에 넣다니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었는지 아니면 이쪽에는 아직 들여놓지 않은 건지 구경도 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다른 소시지를 대신 고르고 날이 아직 춥다는 핑계로 컵라면도 하나 집어들었다.

한강시민공원에 나오면 맥주와 소시지 라면은 먹어줘야지

분명 살 빼러 나왔건만 집어들고 나온 것은 이런 것들. 하지만 둘이 나눠 먹었으니 별거 아니라고 위안.

 

한강망원지구 편의점 의자. 아이디어 좋고~

편의점 밖에 마련된 자리에 앉는데 의자가 차게 느껴지지 않는다. 요렇게 은박 돗자리로 처리한 센스가 놀랍다. 이런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올랐을까? 이런게 바로 생활의 지혜구나 싶다.

 

쓰레기를 휴지통에 버리고 나오니 발밑이 폭신하다. 아까도 밟았던 똑같은 잔디이건만, 배가 적당히 불러 그런지 다르게 느껴진다. 사람이란 이렇게 간사한걸까.
하늘을 본다. 날이 더 흐리다. 저녁때 비가 온다니 정말 그런가보다. 오늘 비가 오면 그건 마지막 겨울비일까, 아니면 첫번째 봄비일까.

한강시민공원 잔디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