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된 것, 참된 것

2015년 6월 10일

전도서를 처음 읽은 것은 십대 때였다. 깜짝 놀랐다. 맨 처음, 이 책을 지은이는 솔로몬이라는 소개가 나오더니, 그 다음은 바로 ‘헛되다’라는 말이 처음부터 끝까지 주욱 써 있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 전도서 1:2-

성경은 희망과 사랑과 꿈을 이야기 하는 책이라고 생각하던 내게 전도서는 충격이었다. ‘헛되다, 필요없다, 내가 그거 안 해봤겠는가? 근데 다 소용없더라’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했던 솔로몬이 온갖 인생에 좋은 것을 누리는 것은 헛되다고 말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고 여러 업적을 남긴 그가 자기가 한 모든 것이 헛되다고 한다. 가장 지혜로운 왕으로 유명한 그가 아는 것이 병이고 공부하는 건 다 쓸 데 없다고 한다. 쾌락이나 권력, 기타의 것들이 헛되다는 것은 그러려니 했지만 지혜와 공부가 사람을 피곤하게하고 다 헛된 것이라니. 이제 와서야 그러려니 하지만, 당시엔 그랬다. ‘성경 맞아? 이거 읽어야 하는 거야 말아야 하는거야?’ 

내 아들아 또 이것들로부터 경계를 받으라.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

– 전도서 12:12 –

한참 공부해야 했던 고등학생에게 지혜의 왕이라던 솔로몬이 친히 ‘공부는 피곤한 것’이라고 말하다니, 이거 참 맥 빠지는 소리가 아닌가. ㅎㅎㅎ. 하지만 한편으론 위로도 되었다. 다들 공부와 대학을 이야기 하는 때에 그 솔로몬이 이렇게 말해주니 통쾌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전도서만 읽으면 허무함이 느껴졌다. ‘이 책이 말하는 것은 허무함이 아닐텐데’, 하면서도 ‘헛되도다’로 끝나는 문장들은 ‘허무주의, 비관주의가 여기서 나온거 아니야?’ 싶게 했다.  

이렇게 죄 헛되다니, 그럼 참된 것은 무엇인가 이 책의 결론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결론은 마지막 두 줄.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 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 전도서 12:12,13 –  

좀 실망스러웠다. ‘다 쓸 데 없는 것들이니 치워 버리고 하나님이나 믿으라는 말일까? 지혜로웠던 사람도 나이들면 다 이렇게 독선적이 되는걸까?’ 이렇게 되면 그냥 무조건 믿으라는 무식스런 어른들과 뭐가 다를까 싶었다. 지혜를 사랑해 ‘네게 무얼 주랴?’는 하나님의 질문에 ‘지혜’를 달라고 했다는 솔로몬에게 살짝 배신감마저 느꼈다. ‘진정 참된 것은 뭘까? 이게 다일까?’

전도서만 읽으면 떠오르는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얻게 된 것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모든 것이 헛되다는 말이 맞다. ‘하나님이 거기 없으면’이란 전제가 빠졌다. 이 세상의 헛되다는 것들을 각 항으로 하는 식을 엄청나게 큰 대괄호로 묶어 놓고 그 괄호 밖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을 지키라’는 상수항을 두었다. [{(헛된 것)+(헛된 것)+ ………+(헛된 것)}]하나님 이라고나 할까. 돌을 쌓아도 목적 의식을 갖고 쌓으면 성이 되지만, 그저 무의미한 돌 쌓기는 돌 무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 하는 것은 중요하다. 가족간의 사랑과 화목도 중요하다. 큰 업적을 남기는 것도, 소소한 일상도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거기에 하나님이 빠지면 모두 헛되고 무의미한 일이 되버린다. 대학 가는 것, 좋은 직장을 얻는 것, 출세하는 것, 걸작을 남기는 것… . 이런 것에 최종 목표를 두는 사람은 불행하다. 그것이 달성되고 난 다음 사무치는 허무감, 허탈함을 감당할 길이 없다. 내 인생의 최우선 순위를 어디에 둘 것인가, 최종 목표는 무엇으로 할 것인가에 따라 참된 행복, 참된 성취감을 누릴 수 있다. 내 인생이란 마라톤 골인 지점에 무엇을 놔둘 것인가.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9:26-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 히브리서 1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