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를 사랑하는 자, 빛 가운데 있는 자

2014년 11월 19일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요한1서 2:9~11-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어두움에서 나와 빛 가운데로 걸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어두움에 있는 자라고 하였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동시에 형제를 미워한다면, 그 믿는 다는 말은 거짓이고 헛된 믿음이라는 뜻이겠다. 빛이 있으되 빛 속에 있지 못하고 빛 속에 있다고 말은 하면서도 스스로 눈먼 자 되어 빛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물을 드리다가도 형제에게 원망받을만한 일이 생각나면 먼저 형제와 화목하고 난 뒤에 다시 드리라(마태복음 5:23,24)’고 했을 정도로 형제 사랑은 중요하다. 또,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며 영생이 없다(요한1서 3:15)’고 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는 자는 마음속으로 이미 그 형제를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고 그런 사람은 예수를 믿는다 해도 실은 믿지 않는 어둠에 있는 자니 영생이 없다는 것이다. 

주 기도문에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구절이 있다. 예수님이 채찍으로 맞고 십자가에 달려 자신을 내어 줌으로 우리의 죄 값을 치르셨다. 그냥 ‘용서해 줄께’한 것이 아니라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히브리서 8:12)’고 하신다. 그러니 너희도 용서하라(에베소서 4:32)고 하신다. 

 

내 동생중 하나는 전에 시댁문제로 우울해 했던 때가 있었다. 입만 열면, 문자만 보내면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도 어느 새 하소연과 불평으로 빠지곤 했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오래 지속되자 편을 들어줄 수도 타이를 수도 없게 되었다. 나부터 그 이야기를 들으면 나쁜 에너지에 휩싸이게 되고 급기야는 동생의 전화나 문자마저 피하는 지경에 이르르게 되었다. 화가 났다. 동생을 미워한 것은 아니었고 사랑하기에 그 애가 처한 상황이 더 안타깝고 속상한 것이었지만, 내가 그 애에게 품은 마음과 한 짓은 미워하는 사람과 무엇이 달랐을까. 부딛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그저 기도만 했다. 어느새 동생은 우울함에서 벗어났다. 아내의 우울증은 남편의 사랑에서 우러난 적극적 협조가 절대적이다. 멀리 있는 형제보다 가까이 있는 남편이 낫다. 

 

형제라고 하면서 믿는 사람들이 힘들게 할 때가 있다.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은 지속적이지만 피를 나눈 형제가 아닌데 한결같은 사랑을 기대하긴 어렵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빛 속에 있으려면 미워하지 않아야 하고, 미워하지 않으려면 사랑해야 하는 것을.

 

 형제를 사랑하는 자 빛 가운데 있는 자

 

댓글 없음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