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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빌려와 읽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 

수필, 수상소감, 인사말, 음악, 번역, 인사말, 픽션... 다양한 글을 묶었기에 '잡문집'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합니다. 

서점에서 본 책은 표지가 불타는 듯한 진홍빛이었건만, 도서관에 있는 책은 모두 다 이렇게 하얀 표지이고 책 등도 바랬네요. 

 

 

많은 분들이 하루키의 잡문집을 이야기 할 때는 굴튀김을 먹는 법을 말하곤 합니다. 

물론 저도 홍운탁월을 이야기하는 그 감각적인 글도 좋아하지만, 여기서는 음악에 관해서 쓴 글 중 '여백이 있는 음악은 싫증나지 않는다'를 말하고 싶습니다. 

이 글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고등학생인 나에게 이천팔백 엔짜리 블루노트 레코드는 어마어마하게 큰 지출이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소중하고 정중하게 들었고, 구석구석까지 외웠고, 그것이 내게는 귀중한 지적재산이 되었습니다. 무리해서 샀지만 그만한 가치는 있었다고 봅니다. 활자인쇄가 없던 시대의 옛날 사람이 필사본을 만들어 책을 읽었듯이, 간절히 듣고 싶은 마음에 고생해서 레코드를 사거나 혹은 콘서트에 가죠. 그러면 사람은 말 그대로 온몸으로 음악을 듣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감동은 특별합니다.  
그런데 시대가 흐르면서 음악이 점점 값싼 것으로 변해갑니다. ... 물론 그런 식으로 듣는 게 어울리는 음악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음악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음악에는 역시 그 내용에 따라 적합한 그릇이 있다고 봅니다. 

 

이 구절을 읽다 보니 어린 시절 아버지의 LP를 듣던 때가 생각납니다. 

까맣게 윤이 자르르 흐르는 판에 흠이 날까, 혹은 지문이라도 묻을 세라 성스러운 물건이라도 다루듯 재킷에서 꺼내 조심스레 턴테이블에 올리고 플레이 '레버'를 '당겼'습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디스크 위로 바늘이 착지하는 순간을 언제나 숨 죽이며 지켜보곤 했지요. 그렇게 자동으로 올라갈 때는 그나마 좀 낫습니다. 처음부터 듣지 않고 중간부터 들을 때면 돌아가는 판 위로 위치와 타이밍을 잘 맞춰 바늘을 직접 내 손으로 올려야 했습니다. 정확하고 깔끔한 동작으로 한 번에 착지시킬 때의 그 쾌감 섞인 안도감이라니! 

 

아무리 조심해도 소용 없었는지, 음악을 들으려던 아버지께선 종종 "누가 이랬어!"하고 벼락같이 호통치던 일이 종종 있곤 했습니다. 그럴 때 보면 영낙없이 바늘 대가 휘어지거나 납작해져 있었는데, 누가 그랬는지, 왜 그렇게 됐는지는 아직도 의문입니다. 내 소맷자락에 걸려 그렇게 됐는지, 아니면 눈물이 글썽글썽해져서 자기는 아니라고 우기던 동생이 그랬는지 몇십년이 지나도록 오리무중인거죠. ㅎㅎ 

 

음악을 듣는 태도마저 정중하다. 

이 한 마디 말은 나를 순식간에 어린 시절 그 때로 데려다 줬습니다. 음반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고 또 바늘을 올리고 뚜껑을 덮어주는 일련의 의식. 그런 의식을 치러야 음악을 들을 수 있었던 그 꼬꼬마 시절로 말이죠. 

카세트 테이프와 CD, mp3를 거치며 음악듣는 과정은 가마솥에 지어야 먹는 밥에서 데우기만 하면 되는 햇반의 변화와 맥을 같이 해왔습니다. 거기에는 편리함도 있지만 생략된 절차만큼 감동도 줄어들기도 할지 모릅니다. 그래도 설거지 하면서 따라 부르거나 운동하면서 귀에 꽂고 듣는 음악의 편리함을 포기하기엔 너무나 길들여졌나 봅니다. 때와 장소에 맞춰 선택할 수 있는 시대를 살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이군요.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 10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비채
2016/12/09 06:15 2016/12/09 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