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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으로 본의아니게 갖게 된 휴가. 도서관에도 갈 수 없던 차에 스마트폰으로 도서관에 접속해 '문구의 모험'을 빌렸다. 

문구의 모험이라니. 책 제목을 들은 사람들은 '문구류가 막 싸워?', '문방구가 어디 여행 다니는 거야?'라고 웃으며 묻는다. 분명 다 큰 어른들이건만, 제목을 듣고는 어린 시절 읽었던 닐스의 이상한 모험이나 꿀벌 마야의 모험 같은 책을 떠올렸단다. 역시 어린시절의 경험이 영향을 미치는 것은 독서라고 예외가 아닌가 보다. 

 

영국 문구협회장을 지냈다는 제임스 워드의 이 책을 고른 것은 많은 책에서 수 없이 인용된 것을 보고 어떤 책인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문구의 모험이라기 보다는 '문구의 역사'가 더 어울리는 제목이란 생각이다. 

 

 

종이 클립이나 펜, 연필의 발달사를 문자, 종이의 역사와 엮고 셀로판 테이프나 포스트잇이 발명될 수 있던 배경으로  15% 규칙이 있던 3M의 분위기를 든다. 파피루스에서부터 에버노트 몰스킨 스마트 노트에 이르기까지, 더 나아가 디지털 세계의 스큐어모픽 디자인 skeuomorphic design까지 훑어준다. 원래 글이 그런지 아니면 번역 탓인지 알 수 없지만 군데군데 지루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뭉텅 지나칠 수 만은 없는 것은 깊은 통찰과 맛깔난 글발이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이메일과 아이팟의 세계에서는 값싼 만년필조차 지위 상징물 status symbol이 될 수 있다. 재산이 얼마나 많은지가 아니라 얼마나 취향이 세련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상징물 말이다. 

 

글쓰기 매체로서 연필은 그 내용에 책임질 필요가 절대로 없었다. 연필로는 충동적인 글을 써도 된다. 완전히 결심한 단계는 아니더라도 연필로 일기에 그것을 써둘 수는 있다. 언제나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 것이다. 

 

3M이 일련의 난관을 창의적으로 극복하고 광업회사보다는 접착제 회사로 성공을 거둔 과정을 살펴본다면 이 회사가 강력한 혁신의 기업문화를 가지게 된 것이 의외가 아니다. 딕 드루가 원래는 사포를 만들어야 하는데도 테이프를 개발할 수 있었고, 실버가 (아직) 쓸모도 없는 풀에 그처럼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문화 덕분이었다. 3M에는 15% 규칙이 있었다. 이는 직원들이 업무 이외에 다른 기힉에도 어느 정도 시간을 쓸 수 있게하는 규칙이었다. 그들은 이런 창의적인 자유덕분에 마감시간에 쫓기며 과녁을 맞히는 데만 몰두했더라면 찾아내지 못했을 발견을 해냈고 서로 다른 부서와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협업을 이룰 수 있었다. 

 

테크놀로지라는 種은 불멸이다. 전구가 발명되어 사람들은 양초로 집을 밝히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양초는 사라지지 않았다. 용도가 달라졌을 뿐이다. 양초는 테크놀로지의 영역에서 예술의 영역으로 이동했다. 우리는 양초를 어두침침하고 불을 낼 수 있는 위험요인이 아니라 낭만적인 물건으로 본다. 레코드판의 찍찍거리고 불완전한 음질은 CD나 mp3에 비해 오히려 따뜻함과 매력으로 받아들여진다.

 

컴퓨터 파일과 달리 손편지는 유일무이한 사적인 물건이다. 포스트잇에 전화번호를 적어두는 일에도 물리적인 것이 담겨있다. 물리적인 것은 뭔가를 의미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좋아한다. 

 

화장품 가게보다 문구점에서 더 가슴이 뛰는 분, 또는 책상위 사물들의 흥미진진한 역사가 궁금한 분들께 추천한다. 

 

2016/01/11 06:31 2016/01/11 0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