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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 너무나 영국적인


차茶를 너무나 좋아하는 큰 아이 책장에 늘 꽂혀있던 책, '홍차, 너무나 영국적인'이 내게로 왔다.

이 책은 차의 종류나 다도를 다룬 책은 아니다. 오히려 차를 중심으로 엮은 문화사에 가깝다.

흔히 영국인은 재미 없는 사람들이고 영국 음식은 맛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영국의 티 타임은 그 어느나라 보다 호화롭고, 그들의 공원이나 정원은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이 책을 읽으면 영국인들의 기질과 차가 역사속에서 어떻게 만나 많은 것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영국인에게 가장 어울리는 차

작가는 사교불편증을 가진 영국인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차가 홍차라고 한다. 어째서일까? 영화나 책에 보면 어색할 때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내 정신좀 봐. 찻 물 올리는 것을 잊었네' 같은 말이다. 영국 사람들은 차를 끓이면서 마음과 몸을 은근히 이완시키곤 한다.

영국에선 커피집과 찻집, 어떤 것이 먼저 생겼을까?

영국, 하면 홍차기에 찻집이 먼저 생겼을 것 같지만, 예상과 달리 17세기 커피 하우스라는 것이 생기면서 커피 문화가 꽃폈던 곳이 영국이었다. 당시 커피 하우스는 1페니 동전 하나만 내면 들어갈 수 있었고, 온갖 사람들이 모여 정보가 넘칠 정도로 모여 'Penny University'라고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여성들은 들어갈 수 없었는데, 차라리 들어갈 수 없는 것이 다행일 정도로 분위기도 위생도 좋지 못한 곳이었다고 한다.

18세기 들어서면서 최초의 티 가든(tea garden)인 복스홀 가든이 생겼다. 이곳은 여성들도 출입이 가능했고,따라서 정원-차-여성의 조합이 이뤄져 차는 커피를 제치고 여성고객에 편승해 영국 가정으로 침투할 수 있게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팁(tip)이 여기서 등장했다는 것. 이 티 가든에는 테이블마다 'TIPS(to insure prompt service)'라고 적힌 상자에 돈을 넣게 되어있었는데, 이것이 팁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여성을 따라 가정으로 들어가게 된 차는 여유가 있는 가정에 정원문화를 꽃피게 하였다. 자연스럽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살린 영국식 정원이야말로 차를 마시기 가장 적합한 장소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계층에 따라 차 마시는 스타일도 달라져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를 보면, 지역에 따라 방언이 달라지는 우리 나라와는 달리 때론 대화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계층에 따라 방언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에 따르면 영국에서 사회계층은 차 마시는 스타일까지 달라지게 하는 요인이 된다고 한다.

상류층은 주로 얼 그레이, 중류층은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에 설탕 없이 우유를 넣어 마신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짙은 갈색으로 우려낸 차에 설탕과 우유를 듬뿍 넣어 큰 잔으로 마셨다. 이런 습관은 저녁식사와도 연결되는데, 상류층과 중류층이 저녁식사를 디너, 또는 서퍼라고 불렀지만 노동자들은 티tea라고 불렀다. 19세기, 산업화시대, 노동자들이 고된 일과를 마치고 저녁식사를 차와 함게 했던데서 유래했다. 비교적 싼 값에 훌륭한 열량공급원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호사를 누리는 기분을 낼 수 있었기에 차 마시는 습관은 하류층에 까지 급속히 자리잡을 수 있었다. 

반고흐 감자먹는사람들 반 고흐의 '감자먹는 사람들'에서 진하게 끓인 차를 마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노동자들의 티 브레이크 타임(tea break time)

이것은 원래 가랜드라는 농장주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전날 마신 술로 출근을 못하거나 일하다 사고를 내는 것을 막기 위해 퇴근하기 전까지 무제한 차를 공급했다. 그러자 분위기가 좋아지고 일의 능률도 올랐다. 이웃 농장도 점차 따라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공장에서도 도입하게 되었다. 20세기가 되자 직장에서 차를 제공하는 것이 노동자 복지정책의 큰 요소가 되었다.


영국인의 다양한 티 타임

영국사람들은 정말 차를 좋아한다. 1900년대 조사에 따르면 1년간 차 소비량이 독일이 36잔, 러시아가 275잔, 미국이 400잔인데 비해 영국은 2,000잔이었다고 한다. 최근 BBC의 발표에 따르면 영국인의 하루 차 소비량은 1억2천만 잔이라니, 영국인의 차 사랑은 정말 대단하다.

영국 사람들은 시시때때로 차 마시는 시간을 갖는데, 시간대 별로 갖는 티 타임은 보통 다음과 같다.
- early tea : 이른 아침 침대에서 마시는 차. bed tea라고도 한다.
- breakfast tea : 아침식사와 함께 마시는 차
- elevens' tea : 오전 일과중에 마시는 차
- afternoon tea : 오후에 간식과 함께 마시는 차
- high tea : 저녁식사 때 마시는 차 (노동자들이 저녁식사때 홍차와 더불어 고칼로리 음식을 먹은데서 유래)

- after dinner tea : 저녁식사 후 느긋하게 마시는 차
- night tea : 잠자리에 들기 전에 마시는 차




이렇게 보면 정말 아침에 눈 떠서 다시 잠들기 까지 하루 종일 틈틈이 마신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유럽 많은 나라들이 물 사정이 좋지 않다. 물에 석회가 녹아있어 마시기에 적합하지 않을 뿐더러, 씻기에도 좋지 않다. 유럽에서 잠시 공부했던 동생은 피부에 탈이 나기도 했었다. 차는 이런 물을 마실만하게 만들어 주고, 나쁜 물 대신 술을 마시던 노동자들의 음료가 되어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부족한 영양 공급원이 되기도 했다. 영국인의 차 사랑은 찻잎 하나 나지 않는 영국 대신 인도에 차밭을 일구게 했고, 무역불균형을 유발시켜 아편전쟁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모국의 관습을 따라하던 식민지 풍습은 보스톤 차 사건으로 독립의 촉매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차는 기호식품 그 이상이었다.


이 책을 보면 다양한 문학작품과 아름다운 회화작품을 함께 실어 실려 이해를 돕고있다. 차나 커피를 좋아하거나 관심있는 분들께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한번 술술 읽어도 좋고, 또 한 번 읽어도 좋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사건들, 영화나 책을 읽을 때 나왔던 장면들(제인 오스틴 원작의 영화들, 전망 좋은 방 등등)이 휙휙 스쳐지나갔다. 그런 것들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교양을 넓히는 기회로, 혹은 그저 재미를 위해서도 읽을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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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5 01:41 2017/02/15 01:41
Posted by 열매맺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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