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년2학기 가을

2013년 9월 29일

이웃 블로그 순례길에 로도스 섬에 살고 계신 올리브나무님 블로그에 들렸다. 아직도 그곳은 여름이지만 10월 어느 날인가 갑자기 겨울이 들이닥친다고 했다. 로도스 섬의 겨울은 가을 없이 곧바로 오는가보다. 

 

댓글을 남겼다. “이곳도 점점 봄 가을이 짧아지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가을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날이 갈 수록 줄어들고 있어요. 제가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운 가을은 대학 4학년의 캠퍼스였습니다. 본관 앞 은행과 플라타너스, 낙엽 태우는 냄새, 이른 아침 쌀쌀한 날씨를 데워주던 자동판매기 커피를 잊을 수 없을 거에요. ^^”

 

 

Autumn at IU

[Indiana Univ. @flicker이미지]

 

기실 4년 동안 캠퍼스가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동쪽 산기슭에 중앙도서관이 새로 문을 연 것을 빼놓고는. 하지만 이제 마지막 학기라는 생각에 4학년 2학기 가을은 더 아름답고 소중했다. 조교의 잘못이었던가 행정상의 잘못이었던가 기억은 이제 잘 나지 않지만, 우리 전공은 전원 한 과목을 더 들어야 했고 사회교육법을 맡았던 강사 한 분은 공직에 계신 분이었던 까닭에 출근 시간 전에 수업해야만 했었다. 가을이 깊어지자 이른 아침 학교는 왜 이렇게 추웠던지. 우리는 학교에서 가장 맛있다는 본관 자동판매기 커피를 마실 수 있음에 감사하며 그 향기에 즐거워하고 온기로 차가워진 손을 녹였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면서 보이는 교정은 정말 아름다웠다. 은행나무, 단풍나무, 졸참나무, 밤나무… 그중 압권은 국기게양대 옆 커다란 플라타너스였다. 불타오르는 듯한 황갈색 잎들은 나무 자체가 커다랗게 불타오르는 횃불처럼 보였다. 난 11월을 가장 아름다운 달로 기억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쩜 그때 찍어놓은 사진 한 장 없을까. 그때 디지털카메라가 있었다면, 지금은 늘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분명 많은 기록이 남아있었을 텐데. 그렇다면 지금처럼 남의 학교 이미지를 플리커에서 찾아서 올리는 일은 없었을 텐데. 하지만 아직도 눈을 감으면 파노라마 사진처럼 떠오른다.

 

물론 내가 기억하는 것과 지금은 많이 다르다. 내 마음속에 있는 본관 앞 풍경은 지금 정말 많이 달라졌다. 우묵하게 들어간 숲도 없어지고 운동장도 없어졌다. 그 자리에는 대신 갈라진 홍해를 연상시키는 건물이 들어서 있다. 그래도 학교는 여전히 아름답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늘 아름답다. 그래도 가장 아름다운 것은 가을이고, 그중에서도 4학년 2학기의 깊은 가을이 가장 아름다운 가을이었다. 


한 친구가 이 글을 읽고 생각난다며 링크시켜 준 곡. 알레산드로 마르첼로의 오보에협주곡.

내가 추억하던 분위기는 이런 애상적인 분위기는 아니었으나… 고맙다, 친구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