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일과 나의 일
묵상 / 2018년 1월 21일

하나님의 일과 나의 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아름답다. 많은 사람이 시간을 아껴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 말씀을 전하고 구제와 봉사를 한다. 받은 은혜가 감사한데 늘 모자람을 느낀다. 더욱 열심히 한다. 뒤를 돌아보니 뿌듯하고 칭찬하는 사람들도 생긴다. 그동안의 노력이 열매를 맺는 것 같다. 하지만, 이때야말로 조심해야 한다. 까딱하면 하나님의 일이 나의 일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과 나의 일 오래전, 주일 설교시간에 ‘목사나 장로라고 안심하지 말 것. 천국에서 못 볼 사람도 많을 것. 하나님 일을 한다고 했지만, 실은 자기의 정욕을 위해서 일했기 때문.’이라는 요지의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어린 시절 그 말씀은 사뭇 충격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다’고 하셨다. 내 마음가짐에 따라 하나님 일도 나를 위한 일이 될 수도 있고 먹고 살기 위한 일도 하나님의 일이 될 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나 자신을 보면 된다.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댓글이 달리고 좋아요 단추 누른 사람이 많으면 기분이 좋다. 글의 조회 수가 많거나 공유가 늘어나면 뿌듯하다. 내가 잘 쓴 것만 같다. 성과에 취하고 자기에 취한다. 우리는 이것을 자아도취라고 한다. 교만이 사악하다면 자아도취는 부끄럽고 유치하다. 이 둘이 범벅되어 어느덧 하나님을 위한다고 시작했던 일이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한 일이 되어버린다. 욕심은 탐심이고 탐심은 우상숭배다. 먹고사는 일에 바빠 하나님을 등한시하는 것도 문제지만, 하나님 없이 하나님…

빌라델비아 교회,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충성해 칭찬받은 교회
묵상 / 2018년 1월 18일

빌라델비아 교회,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충성해 칭찬받은 교회 볼찌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요한계시록 3:8)   말씀카드 몇해 전, 한 권사님이 말씀카드를 주변사람들에게 선물한 적이 있다. 본인이 나눠주지 않고 각자 뽑아 가졌는데, 그게 뭐라고 어린 시절 뽑기처럼 살짝 두근거렸다. 그때 내 몫이 된 것이 바로 위의 말씀이 적힌 카드였다. 순간 어찌나 감사하던지. 마치 마지막 심판 때 직접 그 말씀을 들은 것 처럼 감격스러웠다. 난 한 게 없는데, 너무나 연약한데 어떻게 이런 말씀을 하실까 송구하기 그지 없었다. 집에 와서 다시 이 말씀을 찾아보았다. 그 뒤로는 이런 말씀이 이어졌다.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평강, 평안에 관한 성경구절
묵상 / 2018년 1월 16일

평강, 평안에 관한 성경구절 마지막 때가 가까우니 깨어 준비하자는 의미에서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 세상 끝에 관한 성경구절이란 글을 올린 바 있다. 또 새해 들어서는 시간과 때에 관한 성경구절에 관한 글도 올렸다. 성경구절을 찾다 보니 ‘때’와 ‘시간’이란 말들이 생각 이상으로 마지막 때와 십자가, 심판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았다.평강, 평안에 관한 성경구절 성경은 마지막 심판과 구원을 위한 책이다. 그리고 그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니 당연히 많을 수 밖에 없다. 예수님은 분명히 오시고 심판의 때도 분명 가깝다. 믿는 자들이라면 그날을 준비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준비에서 더 나가 마지막 징조를 찾는 것에 너무 힘쓰다보면 불안과 공포스런 마음을 갖게 될 수도 있다. 사이버 세상에는 올바른 자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혼란스러운 때일수록 혹세무민하는 거짓된 정보도 넘치게 마련이다. 떠도는 정보(책이든 인터넷이든)에 휩쓸려 불안해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마지막 때에 관한 가장 확실한 정보는 성경에 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말한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데 무엇이 두렵단 말인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과 늘 함께 한다면, 우리는 담대한 마음으로 평강을 누리며 그날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참된 평안은 예수님께 있다. 마음 속에 예수님을 모시자. 풍랑이 일어 파도가 거칠어도 예수님께 소망의 닻을 내리면 두려울 것이 없다. 참 평안은 물결이 설렐 때도 예수님과 함께 하므로 누리는 잠잠함이다. 평강, 평안에 관한 성경구절   출애굽기 [31:17] 이는…

시간과 때에 관한 성경구절
묵상 / 2018년 1월 7일

시간과 때에 관한 성경구절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알차고 부지런히 살려고 다짐한다. 그것이 헛된 노력이 되지 않으려면 방향과 방법이 올발라야 한다. 또 작심삼일이 되게 하지 않으려면 의지만으로는 안된다. 아예 습관으로 만들어 몸에 배게 해야 한다. 습관으로 만드는 좋은 방법은 의식화 ritual 하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눈 뜨자마자 하는 짧은 기도, 간단한 스트레칭, 화장실 다녀오기, 찻물 올리기, 성경책 읽기, 글쓰기, 가족과 함께하는 아침 예배, 식사준비와 식사… 이런 식으로 실에 구슬 꿰듯 해 놓으면 얼마 가지 않아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자리 잡게 된다. 시간과 때에 관한 성경구절 결혼하기 전에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요즘처럼 소중하지 않았다. 귀해야 소중하다. 이 귀한 시간을 내기 위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귀한 시간이 어디 아침 시간뿐일까. 무엇을 하든 다 알맞은 시간과 때가 있고, 그 시간은 늘 귀하다. 그런 시간과 때에 관한 성경구절을 살펴본다.   구약 신명기 28:12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찌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32:8 지극히 높으신 자가 민족들에게 기업을 주실 때에, 인종을 나누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백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에스더 4: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모든 것은 믿음의 분량대로
묵상 / 2017년 12월 16일

성경읽기, 기도, 찬양 – 모든 것은 믿음의 분량대로 모든 것은 믿음의 분량대로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매일매일의 일과일 수 있지만, 다른 이에게는 주에 한 번, 혹은 월례행사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즐겁게 기꺼이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해야 한다니 억지로 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모든 것은 믿음의 분량대로 해야 한다. 획일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로마서 12:3)   자기 스스로 기쁜 마음으로 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자신이 그만큼 한다고 남에게도 똑같이 하라고 강요할 것은 아니다. 이유식 먹는 아이에게 단단한 음식을 권하거나 양이 적은 사람에게 억지로 많은 양을 먹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반대로 자기에게 힘들다고 즐겁게 말씀 읽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사람에게 너무 신앙에 매이지 말고 좀 더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라고 강요할 것도 아니다. 사람마다 믿음의 분량도 다르거니와 각자 받은 소명이 다르기 때문이다.   각자 다른 소명, 다른 그릇 우리는 모두 각자 받은 소명이 다르고 또 종류와 크기가 다르게 지음 받은 그릇이다. 그래서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존중이 필요하다.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각기 다른 지체로 한 몸이 되는 우리는 서로 각자 다른 역할을 맡고 있다. 믿음의 자녀들이 모두 신학자나 목사, 전도사가 될 필요는 없다. 되어서도 안된다. 나무의 잎과…

성화(聖化)에 관한 성경구절 – 믿는 자에게는 행위가 뒤따라야 한다
묵상 / 2017년 12월 14일

1. 구원받은 자에게 믿음과 행위는 하나다 1) 믿음으로 의에 이른다 우리는 누구나 믿음으로 의에 이른다.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다. 행위로 된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라 일에 대한 ‘보수’로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구원은 오직 은혜기에 어떤 행위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믿는 자에게는 행위가 뒤따라야 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로마서 3:28)   행함으로 구원을 받으려 한다면 얼마나 노력을 해야 하겠는가. 인간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기에 아들까지 내어 주시고 믿기만 하라고 하셨다. 때문에 우리 노력이 들어가지 않았다해도 값이 없거나 싼 것이 아니다.   2) 믿는 자에게는 행위가 뒤따라야 한다 구원의 방법에 있어서는 이렇게 믿음과 행위가 나뉘는 것 같으나, 의롭다 여김을 받는 순간 상황은 바뀐다. 의롭다 여김을 받은 자는 그 의로움을 행위로 나타낼 의무가 있다. 믿는 자에게는 행위가 뒤따라야 한다. 동전이 한 면만으로는 존재 할 수 없듯, 믿는 자에게 있어서는 믿음과 행위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해야 하며, 또 그렇게 변한다. 이것을 순종, 성화(聖化)라고 부른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가짜 믿음이다. 하지만 섣불리 어떤 사람을 보고 행함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죽은 믿음, 가짜 믿음을 가졌다고 해서는 안된다. 사람에게는 나름의 그릇, 믿음의 분량이라는…

쓰임 – 잠언 16장 4절
묵상 / 2017년 12월 7일

쓰임 야훼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잠언 16: 4) The LORD hath made all things for himself: yea, even the wicked for the day of evil.(Proverbs 16:4)   1. 쓸모 없는 것은 없다 쓸모 없는 것이란 없다. 다 쓸 데가 있다. 하나님께서 온갖 것을 다 그 쓰임에 맞게 지으셨기 때문이다. 균(菌)이 병이나 일으키지 무슨 쓸모가 있을까 하지만, 그 균이 없으면 김치나 요구르트, 치즈, 된장 같은 음식들은 있을 수 없다. 썩는 것도 필요하다. 썩는 것이 없다면 세상은 이미 쓰레기로 뒤덮였을 것이다. 세상에 쓸모 없는 것은 없다.     2. 악인도 쓰임이 있나 1)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바이러스나 미생물은 그렇다 치고, 악인은 무슨 쓸모가 있나? 하나님께선 우리를 지으실 때 선하게 지으셨다. 지성과 자유, 그리고 책임을 주셨다. 최초의 살인 이후, 하나님께선 죄를 다스릴 힘도 함께 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를 죄로 의식하지도 못하고 즐겨 짓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신다. 그러므로 악한 자가 자기 유익을 위해 하는 악한 행위가 때론 하나님의 자녀를 위한 징계로 사용되거나 거꾸로 승리의 기회로 되게도 하신다(하만과 에스더).   2) 악인을 손가락질하는 나는 의로운가?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로마서 3:10~12) 한…

히스기야 왕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
묵상 / 2017년 12월 4일

히스기야 왕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 “우리 하나님 야훼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야훼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니라. (열왕기하 19:19) 이 밤에 야훼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그가 그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쳐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그들이 도망하매, 그 아들 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열왕기하 19:35~37)   히스기야 왕 히스기야 왕은 아하스 왕의 뒤를 이은 남 유대의 왕이었다. 아하스는 스무살에 왕이 되었는데, 정직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인신공양을 할 정도로 우상을 섬겼던 왕이었다. 히스기야는 스물 다섯에 왕이 되었는데, 아버지와는 달리 정직했을 뿐 아니라, 산당을 제거하고 주상과 아세라 목상은 물론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까지 부수는등 종교개혁을 단행했던 인물이었다(열왕기하 18:1~4).   당시 상황 당시 유대민족은 북 이스라엘과 남 유대 두 왕국으로 분열되었다가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앗시리아)의 손에 멸망당하고 남쪽의 유대만 남은 상황이었다. 히스기야 왕 14년에 당시 패권을 잡고 있던 앗수르에게 침략을 당했다. 금 삼십 달란트와 은 삼백 달란트를 요구하는 앗수르왕 산헤립(Sennacherib)왕에게 성전 문짝과 기둥의 금까지 벗겨 바치는 수모와 수탈을 당했다. 그뿐 아니라 산헤립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갖은 말로 모욕하고 야훼 하나님까지 능멸하는 교만을 부리며 민심을 이반시키려고 했다(열왕기하 18:13~35). 이에 히스기야 왕이…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첫번째 성탄절에 관하여
묵상 / 2017년 12월 2일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첫번째 성탄절에 관하여   복음서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네 권으로 되어있다. 예수님 탄생에 관한 이야기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와있다. 그런데 그 묘사된 장면이 조금 다르다. 혹자는 이것을 예수님 탄생이 실제 역사적 사실이 아닌 증거라고 말하고, 또 어떤 이들은 성경의 무오성은 틀렸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거짓을 말하는 어느 누가 버젓이 틀린 증거를 가지고 자기 주장을 하겠는가. 세상 재판정에서도 잘못된 증거를 들고 변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신이 온전하다면 말이다. 하물며 성경인 것을. 잘못된 기록(그것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다 아는 예수님 탄생 기록을)을 통한 믿음이 박해를 받을 때마다 더욱 거센 불꽃으로 타오르고 2천년 가까운 세월동안 지구를 한 바퀴 돌면서 유지될 수 있었겠는가. 마태와 마가의 기록이 다른 것은 그들의 관점이 달랐기 때문이다. 영화를 찍을 때 여러 대의 카메라가 서로 다른 각도에서 한 장면을 찍듯, 서로 다른 시각으로 예수 탄생을 기록해 온전한 하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마태 – 왕으로 오신 예수님 예수님의 계보 마태는 ‘왕으로 오신 예수님’에 촛점을 맞춰 기록했다. 왕에게 중요시 되는 것은 정통성이다. 그래서 마태는 첫 머리에 예수님의 계보를 기록했다. 마태복음 1장 1절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로 시작해 17절’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하는 것이 그것이다.  …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 관한 성경구절
묵상 / 2017년 11월 25일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 관한 성경구절 예수님이 언제 오셨는지 그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왜 오셨는지는 모르는 사람은 없다. 우리를 위해 오셨다. 화평을 이루기 위해 오셨다. 모든 믿는 자에게 값 없이, 단번에, 완전하게 구속하겠다는 구원의 약속을 위해 오셨다. 그 구속은 죽어야만 이룰 수 있는 약속이었다. 그렇다. 예수님은 죽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가장 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다. 그리고 우리가 겪는 모든 연약함, 아픔, 슬픔, 괴로움은 물론이고 죽음까지 몸소 겪으셨다. 그리고는 죽음을 이기고 다시 부활하셨다. 그렇게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 관한 성경구절을 모아보았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 관한 성경구절   신명기 18:15 네 하나님 야훼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이사야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53:2,3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61:1,2 주 야훼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야훼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24시간 깨어있는 군병된 영성
묵상 / 2017년 11월 20일

24시간 깨어있는 군병된 영성 십자가 군병 되어서 ‘십자가 군병 되어서’라는 찬송이 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디모데후서 2장 3절)는 말씀에 근거를 둔 찬송이다.   24시간 깨어있는 영성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기본 자세를 갖춰야 한다. 정신무장부터 되어있어야 한다. 군사는 피아 식별을 잘 해야 한다. 아군과 적군이 누군지 알아야 한다. 적이 누군지, 싸워야 할 대상이 누군지 모르고서는 싸울 수 없다. 군인이 싸우는 것은 적을 해치우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나와 동료, 가족과 내 뒤의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전투상황에서는 자도 자는게 아니다. 감각과 뇌의 일부는 늘 깨어 경계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십자가 군병된 자의 자세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6~18) ‘항상’, ‘쉬지 말고’, ‘범사에’. 무엇을 말하는가. 표현만 바뀌었다 뿐이지 ’24시간, 늘’ 이란 뜻은 마찬가지다. 24시간 깨어 기도하여 그 날이 도둑같이 이르지 못하게 하라고 하는 것이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데살로니가전서 5:1,4)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데살로니가전서 5:8) 그저 깨어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정신을…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 세상 끝에 관한 성경구절
묵상 / 2017년 11월 11일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 세상 끝에 관한 성경구절 예수님께서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마가복음 1:15)’ 고 하셨던 이후로 2천년이 흘렀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사람들은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에 대한 말씀을 점점 잊거나 부정하게 되었다. 그 깊은 마음속에 믿건 믿지 않건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행한 일 대로 보응을 받는다는데, 그 기준에 충분하다고 자부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니 두렵다. 그래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립보서 2:12)’고 했던 것인가 보다. 오랜 시간을 살지는 않았지만, 요즘처럼 마지막 때가 가까왔구나 싶었던 적이 있나 싶다. 세상 분위기는 거룩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 전쟁과 기근, 지진에 대한 소식이 끊이지 않고 이단, 사이비가 판을 치며 배도자는 늘어간다. 엔트로피 법칙을 들먹이며 무질서가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웃기도 한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겐 일어나지 않을 일로 생각될 것이고, 믿는 사람들 중에도 아직 멀었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안 오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예수님은 분명히 오신다. 언제 오실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빠를 수도 있다. 미처 준비도 못했는데 느닷없이 주님을 맞게 되면 얼마나 난감하고 두렵겠는가. 잘 사는 것이 무엇인가. 마지막을 인식하고 사는 사람이 지혜롭다.   마태복음 [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대로 갚으리라 [24:29~31]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