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믿음의 분량대로
묵상 / 2017년 12월 16일

성경읽기, 기도, 찬양 – 모든 것은 믿음의 분량대로 모든 것은 믿음의 분량대로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매일매일의 일과일 수 있지만, 다른 이에게는 주에 한 번, 혹은 월례행사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즐겁게 기꺼이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해야 한다니 억지로 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모든 것은 믿음의 분량대로 해야 한다. 획일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로마서 12:3)   자기 스스로 기쁜 마음으로 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자신이 그만큼 한다고 남에게도 똑같이 하라고 강요할 것은 아니다. 이유식 먹는 아이에게 단단한 음식을 권하거나 양이 적은 사람에게 억지로 많은 양을 먹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반대로 자기에게 힘들다고 즐겁게 말씀 읽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사람에게 너무 신앙에 매이지 말고 좀 더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라고 강요할 것도 아니다. 사람마다 믿음의 분량도 다르거니와 각자 받은 소명이 다르기 때문이다.   각자 다른 소명, 다른 그릇 우리는 모두 각자 받은 소명이 다르고 또 종류와 크기가 다르게 지음 받은 그릇이다. 그래서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존중이 필요하다.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각기 다른 지체로 한 몸이 되는 우리는 서로 각자 다른 역할을 맡고 있다. 믿음의 자녀들이 모두 신학자나 목사, 전도사가 될 필요는 없다. 되어서도 안된다. 나무의 잎과…

성화(聖化)에 관한 성경구절 – 믿는 자에게는 행위가 뒤따라야 한다
묵상 / 2017년 12월 14일

1. 구원받은 자에게 믿음과 행위는 하나다 1) 믿음으로 의에 이른다 우리는 누구나 믿음으로 의에 이른다.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다. 행위로 된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라 일에 대한 ‘보수’로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구원은 오직 은혜기에 어떤 행위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믿는 자에게는 행위가 뒤따라야 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로마서 3:28)   행함으로 구원을 받으려 한다면 얼마나 노력을 해야 하겠는가. 인간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기에 아들까지 내어 주시고 믿기만 하라고 하셨다. 때문에 우리 노력이 들어가지 않았다해도 값이 없거나 싼 것이 아니다.   2) 믿는 자에게는 행위가 뒤따라야 한다 구원의 방법에 있어서는 이렇게 믿음과 행위가 나뉘는 것 같으나, 의롭다 여김을 받는 순간 상황은 바뀐다. 의롭다 여김을 받은 자는 그 의로움을 행위로 나타낼 의무가 있다. 믿는 자에게는 행위가 뒤따라야 한다. 동전이 한 면만으로는 존재 할 수 없듯, 믿는 자에게 있어서는 믿음과 행위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해야 하며, 또 그렇게 변한다. 이것을 순종, 성화(聖化)라고 부른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가짜 믿음이다. 하지만 섣불리 어떤 사람을 보고 행함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죽은 믿음, 가짜 믿음을 가졌다고 해서는 안된다. 사람에게는 나름의 그릇, 믿음의 분량이라는…

선행의 이유
묵상 / 2016년 5월 27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라고 한 것 처럼, 믿고 시인하면 구원을 받는다. 자녀된 자로 아버지 집에 살 권리를 받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일까? 그렇지 않다. 물론 잘난 자식이건 못난 자식이건 모두 사랑하는 자식이고 모자란 구석이 있는 아이에게 더 신경이 쓰이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는 것은 부모에겐 영광이고 내게는 기쁨이다. 선행의 이유가 여기 있다. 겨우 받는 구원이 아닌 칭찬받는 자녀가 되기 위해서다. 구원은 단번에 이뤄지지만, 거룩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인격을 이뤄가는데는 평생이 걸린다.     [관련글] 이신칭의, 성화, 그리고 연단 성화     저장저장

우리가 알거니와
묵상 / 2016년 5월 20일

    문구점에 들렀다가 캘리그래피용 펜을 발견했다.  다음날, 막내를 위해 기도하던중 생각난 말씀구절을 적어보았다. 막내만을 위한 말은 아니겠지. 항상 나를 꿋꿋하게 하는 말씀.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 보다 훨씬 적극적인 느낌이다.  

이신칭의, 성화 그리고 연단
묵상 / 2015년 2월 21일

이신칭의, 성화 그리고 연단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로마서 1:17-   오직 믿음.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다. 거룩함. 우리는 세상과 더불어 살되 세상과는 구분되는 존재여야 한다. 단번에. 그러나 서서히. 모순 처럼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이것은 운전이나 의사 같은 ‘면허, license’에 비유하면 금방 이해된다. 누구나 소정의 교육과 절차를 거치면 운전면허나 의사면허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면허를 가진 이들이 모두 베테랑이거나 명의는 아니다. 자격은 있으되 그런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믿음은 구원을 위한 자격 요건에 불과하다. 성화되어 거룩한 자가 되려면 인생이란 학교에서 오랜 수련기간을 거쳐야 한다. 연단과 인내가 필요한 이유다. 쇠는 뜨거운 불과 찬 물, 아픈 망치질을 여러 번 거쳐야 목적에 부합한 도구로 거듭난다. 순수한 은이나 금을 얻기 위해 도가니에 넣고 수천 도의 열을 가한다. 오직 믿음으로 단번에 완전히 구원을 받지만, 거기 자격을 얻는 데에 그쳐서는 안된다. 그럴만한 자,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해 끊없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하늘나라에 가기까지 완성은 없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로마서 5:2~4-     ** 2017.12.13.추가 [추천글] 우리는 무엇을 팔고…

한 사람의 선택 – 아담 vs. 예수 그리스도
묵상 / 2014년 4월 6일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 로마서 5:12~21   아담의 선악과 사건 이후 인간은 죄의 종 노릇하여 영원한 생명에서 멀어진 유한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아담 한 사람으로 인간은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리고 말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한 의로운 이의 아름답고 은혜로운 행위로 다시금 막힌 담이 헐리고 영생에 이르는 은혜가 열리게 되었으니,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다. 교만과 욕심으로 눈이 멀어 어떤 이는 한 나무 앞에서 잘못된 선택을 했고, 무한한 사랑으로 자신을 돌아보지 않은 어떤 이는 한 나무에 달려 스스로를 내어 놓는 위대하고 거룩한 선택을 했다. 의로운 사람,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대신 죽기도 어려운데 누가 아무것도 아닌 자, 자신을 배신하고 정죄하는 사람들을 위해 죽을 수 있을까. 힘이 없어 참는 것도 아니고 능력이 있음에도 말 없이 견디는 것은 얼마나 큰 인내를 필요로 하는 것일까. 결국 그는 사망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 우리에게…

적성, 영속적 은사
묵상 / 2014년 4월 2일

  적성, 영속적 은사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로마서 12:6~9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한 몸이다. 한 몸이라는 말은 전부 몸통이라거나 한덩어리라는 말이 아니라 서로 ‘지체’가 되었다는 뜻이다. 머리, 손, 발, 눈, 귀, 코 등이 모여 한 몸이 된다. 이 지체는 각각 맡은 일이 있어 그 일을 서로 대신할 수 없다. 발로 듣고 코로 걷고 눈으로 먹거나 말할 수 없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판사, 교사, 목회자, 예술가, 회사원, 운동선수 등등 각자 다른 일들을 하고 산다. 다방면에 탁월한 능력이 있어 여러가지 일을 하는 이도 있지만, 보통 한 가지 일이 고작이다. 하지만 실망하지 말자. 눈으로 먹고 입으로 배설 할 수 없는 것 처럼, 마리아 칼라스면서 동시에 반기문 총장이나 피카소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재능, 적성은 은사다. 은사는 은혜로 받은 사명이다. 내게 있는 재능,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귀하게 여기고 늘 연마하여 전문가급으로 올려 놓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의 의무일 것이다.

선과 덕
묵상 / 2014년 1월 9일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로마서15:1-   나보다 약한 자를 먼저 배려해야 하는 것은 비단 육체적, 경제적 약자 만을 그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나보다 강한 면이 있더라도 믿음의 힘이 약하다면 그를 배려해야 한다.  서로 감싸고 돕기에, 적어도 그렇게 노력하기에 우리는 아름답다.

복을 받는다는 것
묵상 / 2014년 1월 5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요즘 같은 때 흔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한다.  ‘복을 받는 다는 것’은 무엇일까?  돈을 많이 벌게 되는 것을 말할까? 운이 좋은 것일까? 멋진 이성 친구를 만나게 되는 것일까? 과연 무엇일까? 이 모두가 될 수도 있고, 이 모두가 하나도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다. 복이 화가 될 수도 있고 화가 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쩌다 재수가 좋아 장난으로 산 복권이 1등에 당첨이 되고 운 좋게 근사한 여자를 사귀게 되었다 하자. 복권 당첨이 오히려 화가 되어 평화롭던 가정이 풍비박산이 나는 경우가 생각보다 꽤 있다. 여자 때문에 패가망신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 경우 처음에 복이라고 생각 했던 것이 과연 진정한 복이었냐는 것은 재고해 봐야 한다. 반대로 위기를 기회삼아 재기에 성공하고 오히려 처음보다 잘 되는 경우도 종종 본다.    복은 내게 당장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나쁜 일이 하나도 일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복된 삶이란 좋은 일이 일어나든 지금 당장 나쁜 일이 일어나든 결국에는 다 그것이 선한 것이 되어 돌아오는 그런 삶을 말한다.    올 한 해, 그리고 앞으로도 쭉. 나와 여기 모인 모든 사람이 그런 복된 삶을 누리게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