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Archives - 열매맺는나무
가을을 밟고
신촌산책 / 2014년 11월 5일

    그저 검기만 했던 길이  모처럼 노랗고 붉은 것들로 단장을 할 때면 나무는 점점 헐벗어 간다. 시간이 흘러 포근해 보이는 흰 옷으로 갈아 입을 때 까지  나무는 그렇게 흔들리고 서 있다. 뺏겼다기엔 미련 없이 떨궈낸 그 아름다운 것들을  차마 밟을 수 없어 살포시 발을 대어본다. 이 고운 빛 땅으로 들어가 돌아오는 봄이면 꽃으로 다시 보겠지만 가는 가을 아쉬워 이렇게 즈려 밟은 채 눈꽃 처럼 흩날리는 잎새를 떠나 보낸다. 

강낭콩
잡문집 / 2013년 7월 20일

    톡, 톡. 깍지에서 나와  떨어지는 콩.  패릿. 도톰한 깍지를 비틀어 훑어내면 토도독 떨어지는 보석같은 아이들. 뽀얀 바탕에 자줏빛 무늬, 공연히 떠오르는 블루베리 요거트에 침이 괸다.   톡, 토독.  싸 하니 올라오는 콩 풋내. 콩 싫다며 떼 쓰던 그 때,  콩 먹어야 튼튼해 진다며 바가지 한 가득 콩을 까시던 엄마, 할머니.  그 때로 날 실어 나른다.   콩을 먹는 것은 추억을 먹는 것인가.   톡, 토독 토도독. 반들반들 매끄럽고 아직은 촉촉한 것들 어느새 그릇 가득 수북이 쌓일 때면 손끝은 풋내에  물들고. 콩 쌓이듯 차곡차곡  풋내로,  추억으로, 여름은 그렇게 내게 물들어간다.   

잡문집 / 2010년 12월 7일

아, 나도 꽃은 네 밖에 있는 줄로만 알았다.  꽃은 네 안에도 있는 것을.  아니, 네 자체가 꽃인 것을.  안으로 감춘 꽃술 향기되어 스며나고 고운 네 맘 밖으로 번져 꽃잎된 것을 그땐 미처 몰랐다.  오늘도 난 네 향기에 취해 잠이 들고 보드란 네 꽃잎에 위로받는다.   

가을
잡문집 / 2010년 10월 23일

곶도 지고 잎도 지지만 시간이 흐르매 더욱 돋는 것도 있구나. 전화없다 서운해마라. 잊었나 싶었을 때 생각나고 잊혀졌나 싶었을때 모이게 되더라.  어릴적 우정이야 봄볕처럼 짧은 것. 늙어 새로 핀 정 묵을수록 좋으니 술독같고 장독같고.  곶지고 잎지는 시간 너와 함께라서 향기롭다. 멀리 있어도 함께하니 곶지고 잎지고 비나리고 눈내리고. 내 그때마다 네 생각하려니 너도 내 생각 해주겠지.  ㅡ 화정군의 노트에 달았던 댓글 2010.10.23.

가을생각 #1
잡문집 / 2010년 9월 30일

갈 햇살 잎새 모여  고운 빛 단풍되고    따신 볕 흘러고여  열매에 스며드니    볕에 익고  바람이 식혀주고    갈은 그렇게 익어가고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