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로보는성경이야기 Archives - 열매맺는나무
아브라함이야기 9, 자식은 부모의 웃음-이삭
하늘나무 / 2014년 6월 15일

아브라함이야기 9, 자식은 부모의 웃음-이삭 이삭, 태어나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삭이 태어났다. 사라와 아브라함은 이삭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삭은 웃음이라는 뜻이었다. 오랫동안 기다린 아들이었다. 아브라함이 백 살이 되었으니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온 자식이었을까. 자식 하나 없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기쁨과 웃음을 가져다 주셨다. 쫓겨나는 이스마엘 이삭이 무럭무럭 자라 젖을 떼게 되던 날, 아브라함은 큰 잔치를 베풀었다. 이 잔치에서 사라는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는 장면을 목격하고 아브라함에게 말해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고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도록 하게 했다. 하갈과 이스마엘은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다 가죽 부대의 물이 떨어지자 죽을 수 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장성하여 활 쏘는 자가 되었고 바란 광야에 거주할 무렵 애굽 아내와 결혼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렸던 것은 이 날이 처음이었을까? 그날처럼 큰 사건은 아니었을 지라도 지속적인 괴롭힘은 있었을 것이다. 둘의 터울은 14살이나 된다. 열 다섯에 이삭이 태어났다면, 이스마엘은 15년간을 아브라함의 독자로 살아 왔을 것이다. 그러다 적자 이삭이 태어나자 그 지위는 곤두박질치고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하갈과 사라의 처첩간의 알력과 피해의식은 스스로 느끼는 박탈감 이상으로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14살이나 많은 이스마엘에게 젖먹이 이삭은 상대도 되지 않았을 텐데, 과연 어떻게 놀렸을까? 원문에 나오는 ‘차하크’란 말은 단순한 놀림이 아니라 위험이 뒤따르는 폭력성 있는 장난이나 성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어느 쪽이 되었던 사라로서는 이스마엘을 이삭에게서 떼어 놓을 수 밖에 없었을…

아브라함이야기 8 – 소돔, 소돔, 소돔
하늘나무 / 2013년 12월 29일

아브라함이야기 8-소돔, 소돔, 소돔 간절한 아브라함 천사들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약속의 말씀을 전한 뒤 소돔으로 향했다. 소돔의 죄악상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서서 말했다.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해 온 지역을 용서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이 다시 물었다. “오십에서 다섯 명이 부족하다면 온 성읍을 멸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멸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아브라함은 안타까운 마음에 거듭, 거듭 간절히 구했다. 결국 소돔에서 의로운 사람이 열 명만 있어도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게 되었다. 죄악의 도시 소돔 두 천사가 소돔에 도착한 것은 저녁때였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마침 성 문에 있다가 천사들을 보고 반갑게 맞이했다. 들어가지 않고 거리에 있겠다고 하는 천사들에게 간청하여 집으로 영접했고 무교병[ 누룩(이스트,효모)이 들어있지 않은 빵]을 구워 대접했다. 그때 밖에서 소동이 벌어졌다. 소돔 사람들이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몰려들어 집을 에워싸고 롯에게 요구했다. “오늘 밤에 너희 집에 온 사람들은 어디 있느냐? 데리고 와라. 우리가 관계를 해야겠다[ 성경원문에는 ‘상관하리라’로 나온다. 성관계를 갖는다는 뜻. 개역개정과 개역한글성경에는 ‘상관하리라’로, 공동번역성경에는 ‘재미를 보다’, KJV성경에는 ‘we may know them’으로, NIV성경에는 ‘we can have sex with them’으로 되어있다.].” 이웃집에 몰려가 그 집 손님을 동성애 상대로 내어 놓으라고 당당히 요구하고 있다. 동성애와 난교가 이정도로 횡행하다니, 아무래도 소돔은 우리가 생각하는 타락이라는 범주를 벗어난 곳이었나 보다. 롯은 당황했다. 그냥 손님도 아니고 상대는 무려…

아브라함이야기 7 – 아들을 약속받은 아브라함과 사라
하늘나무 / 2013년 12월 6일

아브라함이야기 7 -아들을 약속받은 아브라함과 사라 하나님의 첫번째 약속 첫번째 약속은 아브람이 99세, 사래가 90세 되었을 때였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아브람이 엎드렸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과 사래에게 아들을 주시고 여러 민족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시며 그들의 이름을 아브라함과 사라로 바꿔주셨다. 아브라함은 ‘열국(列國)의 아버지’라는 뜻이고 사라는 ‘왕비, 여주인(女主人)’이라는 뜻이었다. 아브라함에게는 바뀐 이름이나 하나님의 이 놀라운 축복보다 나이가 많다는 현실이 더 크게 다가왔나 보다. 아브라함은 엎드린 채로 웃었다. 그리고 마음으로 생각했다. ‘내 나이 이제 곧 백 살. 사라의 나이도 아흔.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자식을 낳겠어.’ 이제껏 ‘네 후손을 별처럼 많게 하겠다’는 약속을 의심 없이 믿어왔건만, 이번에는 그 언약의 말씀이 쉽게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저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았으면 좋겠습니다.”지금 있는 자식이나 잘 살기 바라는 심정이었나 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시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 아들을 낳을 것이니 너는 그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해라. 내년 이맘때 이삭과 영원한 언약을 세울 것이다.” Abraham and the Three Angels (watercolor circa 1896–1902 by James Tissot)   하나님의 두번째 약속 두번째 약속은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있는 곳이었다. 날이 뜨거울 때 아브라함이 장막 문 가에 앉아있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보낸 세 사람이 왔다.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발…

아브라함이야기 6 – 하갈과 이스마엘
하늘나무 / 2013년 11월 25일

아브라함이야기 6-하갈과 이스마엘   사래, 여종 하갈을 아브람에게 보내다 아브람과 사래가 가나안 땅에 정착한지도 10년이 되었다. 별처럼 많은 자손을 주신다고 했던 하나님의 언약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아직도 자식이 없었다. 아브람도 그랬겠지만 사래는 미안하고 초조한 마음에 시달렸다. 밤은 밤대로 낮은 낮대로 괴로울 뿐이었다. 견디다 못한 사래는 아브람에게 말했다. “하나님께서 내가 아기 낳기를 허락하지 않으시나 봐요. 그러니 제발 내 여종과 잠자리를 가지세요. 혹시 아나요, 그 일로 자녀를 얻게 될지.” 이렇게 말하는 사래의 마음은 갈가리 찢어지는 듯 했다. 아브람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이제까지 없던 자식이 무슨 소용이냐고, 내게는 자식보다 네가 더 소중하다고 말해주길 바랬다. 쓸 데 없는 소리 하지 말고 믿고 기다려보자고 차라리 화를 내주길 바랬다. 하지만, 하지만 아브람은 사래의 말을 듣겠다고 했다. 털썩. 사래는 그 자리에 주저 앉고 싶었다. 힘이 다 빠졌다. 하하.. 사래의 넋 빠진 웃음은 스스로 비웃는 소리가 되어 장막 안을 돌아다녔다. ‘그래, 딱 그 정도 였던 거야.’ 제가 먼저 아브람에게 말했는데, 아브람은 제 말에 동의한 것 뿐인데 이상하게 꼭 배신당한 것만 같았다. 아팠다. 마음이 아프니 몸까지 아파왔다. 하지만 추스리고 일어나야 했다. 사래는 자신의 여종 중에서 애굽 사람 하갈을 골라 남편에게 첩으로 데려다 주었다. 마음이 변한 하갈 아브람과의 동침으로 임신하게 된 하갈은 사래를 주인으로 보지 않고 멸시하게 되었다. 사래로서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분했다. 아브람에게 따질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받는…

아브라함이야기5-하나님과 세운 언약
하늘나무 / 2013년 11월 16일

아브라함이야기5-하나님과 세운 언약 별처럼 많은 자손을 약속하셨다 싯딤 골짜기 전투 사건 이후 어느 날, 아브람의 환상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셨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네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다.” 아브람이 말했다. “나의 주 하나님, 제게 무엇을 주시려고 하십니까? 제겐 자식이 없어 제 상속자는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씨를 주지 않으셨으니 집에서 키운 이 사람이 제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엘리에셀(Eliezer)은 다마스커스 출신으로 아브람의 충성스런 종이었다. 오늘날로 말하면 대그룹 총수의 비서실장이라고나 할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다. 네 몸에서 날 사람이 네 상속자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선 아브람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 말씀하셨다. “하늘을 우러러 보라. 뭇 별들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 별처럼 많을 것이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이 말씀을 믿었다. 하나님은 이 믿음을 아브람의 의로 여기셨다.   믿음이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것 믿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고 손으로 만질 수 없음에도 믿는 것이다. 그것이 믿음의 실상이다. 아브람은 여든에 가까운 나이가 되도록 자식 하나 없었다. 나이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은 자식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것도 별처럼 많이 주시겠다는 말씀을 믿었다. 아브람은 절대적인 믿음을 가졌다. 그러기에 그는 어디인지 알지도 모르는 채 하나님 말씀 한 마디를 따라 고향을 떠났고, 노인이 되어서도 별처럼 많은 자손을 주겠다는 말씀을 그대로 믿었다. 정말 어린 아이와…

아브라함이야기 4 -아브람, 롯을 구하다
하늘나무 / 2013년 11월 15일

아브라함이야기4-아브람, 롯을 구하다 전쟁이 일어남 무슨 일이었는지 소돔과 고모라와 그 주변 나라들 간에 전쟁이 일어났다. 시날과 엘라살, 엘람, 고임의 네 나라 임금과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소알이 서로 편이 되어 싸웠다. 그들은 싯딤 골짜기에 모여 전투를 벌였는데, 그 지역은 역청 구덩이가 많은 지역이었다. 역청은 원유가 굳어져 반쯤 고체 상태로 땅 표면 가까이 부존하는 것으로, 옛날 노아가 방주에 방수를 위해 발랐던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후퇴하던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가 이 역청 구덩이에 빠지고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가는 바람에 그들의 모든 재물과 양식은 적국의 왕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당연히 소돔에 거주하던 롯 역시 사로잡힌 몸이 되었고 재물 역시 노략질 당하게 되었다. Makes the Enemies Flee Who Hold His Nephew/ 1613 etching by Antonio Tempesta/ the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롯을 구해낸 아브람 당시 아브람은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도망친 한 소돔사람으로 부터 롯이 사로잡혔음을 듣고 자신의 집에서 길러내고 훈련시킨 사병 삼백십팔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갔다. 밤에 그들을 쳐부수고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쫓아가 자기 조카 롯과 롯의 온 식구, 친척들과 함께 재물까지 찾아왔다. 아브람은 사로잡힌 조카를 구하기 위해 사람들을 이끌고 달려가 구해냈다. 롯을 잡고 있던 것은 인질범 몇 명이 아닌, 그 나라 왕을 전투에서 이긴 전투부대였다. 자신의 안위는 뒤로한 채위험함을 무릅쓰고 구해낸 아브람은 대단하다. 그것은 의리와…

아브라함 이야기 3- 아브람, 조카 롯과 헤어지다
하늘나무 / 2013년 11월 6일

아브라함 이야기 3-아브람, 조카 롯과 헤어지다 애굽에서 나온 아브람과 사래는 조카 롯을 데리고 네게브를 거쳐 전에 장막을 쳤던 곳인 벧엘과 아이1 사이에 이르렀다. 아브람은 소유한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했고,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따로 있었던데다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들2도 이미 그 땅에 거주하고 있던 터라, 사실 그들이 머물게 된 곳은 부유한 두 집 식솔들이 함께 살기에 넉넉한 공간은 못되었다. 따라서 그들의 목자들이 서로 다투는 일이 많았던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느날, 아브람이 롯에게 말했다. “우리는 한 집안이다.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있는 온 땅 중 마음대로 선택해 독립해라. 네가 왼쪽으로 간다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겠고, 네가 오른쪽으로 간다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 Wenceslas Hollar – Abraham and Lot separating 롯은 눈 앞에 펼쳐진 넓은 땅을 바라보았다. 요단 지역을 보니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였다. 그때는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기 전이었으므로 요단 지역은 하나님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도 같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롯이 말했다. “저는 동쪽 땅, 요단 지역으로 가겠습니다.” 롯은 요단 온 지역을 택해 동쪽으로 떠났다. 아브람은 그대로 가나안 땅에 거주했고, 롯은 그 지역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가게 되었다. 소돔은 우리가 알다시피 악행으로 가득한 도시였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뒤, 하나님께선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눈을 들어 네가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 사방을 살펴보아라. 네게…

아브라함이야기 2-이집트로 내려간 아브람
하늘나무 / 2013년 11월 2일

아브라함이야기2-이집트로 내려간 아브람 나의 신부, 나의 누이 아브람은 고향을 떠나 벧엘 남쪽으로 옮겨갔다. 어느 해, 그 땅에 심한 기근이 들어 아브람은 이집트로 이주하기로 했다. 이집트 근처에 도착했을 때, 아브람이 아내 사래에게 말했다. ‘내 생각에 당신은 너무나 아름답다. 우리가 부부라는 것을 알면 이집트 사람들이 나를 죽이고 당신을 뺏을지 모르겠다. 그러니 내 아내라 하지 말고 누이라 하자. 그렇게 하면 내 몸이나 목숨은 아마 안전할거야. 부탁한다.’ Abram’s Counsel to Sarai (watercolor circa 1896–1902 by James Tissot 파라오도 반한 사래의 미모 그들은 이집트에 도착했다. 사래의 미모는 아브람의 예상대로 이집트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고, 고관들도 보고 파라오 앞에 가서 그 아름다움을 칭찬했다. 그 결과, 파라오는 사래를 궁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파라오역시 사래의 미모에 반하고 말았다. 그는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자신의 여인으로 삼기로 작정했으니, 자신이 사래에게 매혹된 만큼 그 오래비에게 엄청난 후대를 했다. 연인이 될 사람의 가족에게 넉넉하게 베푸는 것은 여인과 그 가족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것이 될 테니, 그 정도 물질로 여인의 마음과 몸을 얻는 것은 파라오에게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을 것이다. 아브람은 자기 아내 사래를 다른 사내 파라오의 연인으로 넘기는 대신,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다. 그리고 소원대로 자기 목숨을 구했다. 아브람이 제 꾀에 넘어간 것이든, 원래 예상했던 결과였든 간에 어쨌든 그는 혼인하여 부부로 함께 늙어가던 아내를 다른 나라로 이민 가자마자 그 나라 왕의 여자로…

아브라함 이야기1-아브람과 사래, 하란을 떠나다
하늘나무 / 2013년 11월 1일

아브라함 이야기1 – 아브람과 사래, 하란을 떠나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Abraham’s Journey from Ur to Canaan/József Molnár   아브람과 사래, 하란을 떠나다 아브람과 아내 사래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떠났다. 그의 나의 75세 때였다. 하지만 그 부부 둘만 떠난 것은 아니었다.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았던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떠나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가나안 사람들이 거주하던 세겜 땅에 제단을 쌓고 벧엘과 아이 사이에 또 제단을 쌓은 뒤 남방으로 내려갔다.   믿음의 조상이 될만한 아브람 아브람은 나이 75세에 하나님의 말 한 마디에 고향을 떠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땅으로 출발했다. 심지어 그곳이 어디인지도 몰랐다. 하나님께서 내게, “지금 사는 집에서 나와라. 내가 살 곳은 나중에 가면서 보여줄께, 일단 짐을 싸서 나와라.” 하신다면, 나는 “네”하고 툴툴 털고 일어나 무작정 길을 나설 수 있을까? 그곳이 옆동네인지 아니면 지구 반대쪽에 있는 남반구 어디 섬나라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네”라고 말할 것이라고 자신있게 대답하긴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아브람은 했다. 나이 일흔다섯에 고향, 친척, 집, 친구 모두 버리고 말씀만을 좇아 길을 떠났다. 이것 하나 만으로도 아브람은 믿음의 조상이 될만하다.   조카 롯을 데리고 떠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한 가지 드는 의문은,…

바벨
하늘나무 / 2013년 10월 31일

그 옛날, 온 땅의 언어는 하나였다.  낙원에서 나온 이후 사람들은 동쪽으로 동쪽으로 이동했다. 그들은 어느 날 시날 평지에 머물러 살게 되었다. 사람들은 서로 말했다.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하게 굽자.” “벽돌로 돌을 대신하고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Pieter Bruegel/ The Tower of Babel/ Vienna, 구글이미지] 시날 (Shinar)평지는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의 사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오늘날 이라크 남부에 해당한다. 수메르 문명이 꽃 폈던 이곳은 비옥한 곳이었으나 반면 산이 없었던 까닭에 석재나 목재가 귀했다. 따라서  흙반죽으로 벽돌을 구워 만들어 사용할 수 밖에 없었고, 책도 다른 문명처럼 나무나 파피루스가 아닌 점토판으로 만들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연료문제로 불의 온도가 낮아 구워진 작업물의 강도는 강한 편은 아니었다고 한다.   사람들에게는 자기를 높이고 이름을 날리고 싶어하는 마음이 본능처럼 존재한다. 오죽했으면 입신양명(立身揚名)과 부귀영화가 인생의 목표가 되어 고전에 그렇게도 많이 등장하곤 했을까. 자기를 높이고자 할 때, 마음속엔 다른 것보다 자기 자신이 가장 높고 큰 자리를 차지하고 그것이 최우선이 된다. 하나님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내가 우상이 되어 내 자신만 섬기게 된다. 하나님이 내 맘에 없는데 이웃인들 있을까. 그들은 벽돌을 굳히며 양심도 굳혔고, 탑을 높이 쌓으며 교만도 쌓아가지 않았을까.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셨다. 그리고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다. 그들은 그 도시 건설하기를 그쳤다. 우리들은 그 이름을…

노아, 택하심과 사명
하늘나무 / 2013년 10월 4일

사람들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과 계획은 모두 악할 뿐이었고 행동 또한 부패했다. 이전까지 사람들의 수명은 895세를 살았던 마할랄렐과 777세를 살았던 라멕을 제외하고는 모두 900세를 훨씬 넘었으나 하나님께선 인간의 수명을 120세로 한정하셨다.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사람 지으신 것을 한탄할 정도로 근심하셨던 하나님은 마침내 지면에 있는 모든 것을 쓸어버리기로 하셨다. 단, 노아와 그 가족만을 제외하고.       노아는 어떻게 선택받을 수 있었을까.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나님과 동행한 자였다. 마음이 깨끗하기에 하나님과 교제하고 늘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분이지만 우리와 작은 일 하나도 함께하시길 원하시기에 우리에게 사명을 맡기신다. 그것이 큰일이 되었든 아니면 정말 작은 일이 되었든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별 차이가 없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시기를 원하시며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함께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된다.        하나님은 그에게 사명을 맡기셨다. 방주를 짓는 것과 그 방주를 채우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사항들은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나무의 종류, 규격, 문과 창문의 위치, 층수, 방수 방법까지 일일이 가르쳐 주셨다. 방주의 승객은 노아의 가족과 암수 쌍을 이룬 혈육있는 모든 생물로 정해졌다. 노아는 가족과 동물들이 먹을 양식을 준비해야 했다.        노아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일을 준행했다. 고페르 나무(잣나무, 삼나무, 편백 등으로 번역되는 수지성 침엽수)로 길이 136미터, 폭 23미터, 높이…

가인과 아벨
하늘나무 / 2013년 9월 29일

가인과 아벨. 그들은 아담과 하와 부부에게서 태어난 형제였다. 가인은 농사짓는 사람이었고 아벨은 양치는 이였다. 어느 날, 둘은 각각 제사를 드렸다. 가인은 땅에서 난 것으로, 아벨은 양으로 제물을 삼았다. 양은 받아들여졌지만, 농작물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왜지? 가인은 화가 났다. 분했다. 이건 차별 아닌가? 아니라면 어째서 ‘날’ 거부하시는 거지?                 편애가 아니다       유명한 이야기 카인과 아벨. 많은 사람이 부모의 편애와 그로 인한 불화로 해석하곤 한다. 존 스타인백의 에덴의 동쪽도 비슷한 맥락이다. 하지만 간과하는 것이 있다. 많은 사람이 범하곤 하는 오류이다. 무엇일까? 어떤 사건이나 물건을 거부하는 것을 ‘나’라는 인간 자체를 거부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들이 거부한 것은 나 자신이 아니다       엄마 생일, 딸이 반지를 선물했다. 엄마는 ‘얘, 다음엔 이런 반지 사오지 마라’고 말했다. 그리곤 다른 딸이 꺾어온 풀꽃은 반갑게 받았다. 또 다른 예. 책을 파는 영업사원이 권하는 전집을 고객이 거절했다. 또 다른 예. 내가 올린 기안은 거부되고 옆 박 대리가 올린 것이 채택됐다. 객관적으로 보면 알 수 있다. 엄마는 딸을 거부한 것이 아니고 고객은 영업사원을 거부한 것이 아니다. 상사는 나를 거부한 것이 아니다. 거부된 것은 반지, 전집, 기획서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흔히 나란 존재 자체가 상대방에 의해 거부되었다고 ‘느낀다’. ‘그들이 거부한 것은 내 제안이지 나 자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