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 열매맺는나무
전쟁사에서 건진 별미들 – 세계의 전쟁이 만들어낸 소울푸드와 정크푸드
책-영화-기사 / 2017년 5월 25일

전쟁사에서 건진 별미들 – 세계의 전쟁이 만들어낸 소울푸드와 정크푸드   전자레인지, 라디오, 아웃도어, 생리대, 안전벨트, 선루프, 침낭등 캠핑용품… 모두 전쟁을 통해 발달한 우리 주변의 생활용품 들이다. 전쟁은 있어서는 안되지만 전쟁을 통해 과학기술이 혁신적으로 발달하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우리 생활주변으로 스며드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속에서 생존에 직결되는 식생활이 변화하고 새로운 것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을 쓴 윤덕노님은 25년간 매일경제 기자를 지내며 경제분야 뿐 아니라 음식평론에 대한 글도 여러 지면에 연재하고 책으로 출간한 바 있다. 이 책은 국방일보와 전쟁기념관에 연재했던 컬럼을 엮어낸 것으로, 우리가 자주 먹는 건빵, 부대찌개, 카레라이스, 주먹밥, 팝콘, 커피믹스, 스팸 등의 유래와 비하인드 스토리를 재미있게 엮어 우리에게 전달한다.   건빵 일본은 1534년, 포르투갈 상선의 선원들이 먹던 빵pao를 전투식량으로 주목하기 시작했다. 작은 전투를 거치면서 군용빵(건면포)을 발전시켰는데, 폭우가 내려도 건면포를 공급받은 관군은 배부르게 먹고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아편전쟁 이후 본격 개발에 들어가 점점 소형화하고 별사탕도 추가했다.(건빵에 들어있는 별사탕은 원래 1569년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가 오다 노부나가에게 선물한 것으로 만주침략때부터 일왕의 하사품이란 명목하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 침략전쟁의 산물 우리나라는 해방후 일본이 남기고간 1,600여섬 규모의 건빵에서 출발했는데 6.25 동란 때도 생산이 충분치 않아 군용식량의 역할을 충분히 하지는 못했고 1956년 이후 본격적으로 생산에 들어간 시련극복의 결과물이었다.   카레라이스 카레라이스는 어디 음식일까? 흔히 인도에서 왔다고 생각하지만,…

금속의 세계사
책-영화-기사 / 2017년 5월 23일

금속의 세계사   지금으로부터 꼭 한 달 전 주일 오후. 산책 겸 이진아 기념 도서관에 들렀다. 읽어야지 하고 마음 먹고 있던 책 몇 권을 골랐는데, 그 중 하나가 이 금속의 세계사란 책이었다. 이 책에는 우리와 친근한 일곱가지 금속(구리-납-은-금-주석-철-수은)이 담겨 있는데, 그 순서가 인류가 사용하기 시작한 순서대로 되어 있어 ‘세계사’란 이름에 어울린다. 어렵고도 딱딱할 수 있는 주제를 우리 주변의 흥미로운 이야기로 엮어 시공이라는 줄로 꿴 책이다. 쉬운 말로 쓰여있어 초등학교 5학년에서 중학생 정도면 옛날 이야기처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나 역시 단숨에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근래들어 ‘재미있게 술술 읽은’ 책 중에 하나로 꼽을 수 있겠다.     구리(Cu) – 금속으로 이뤄진 세계를 열다 구리는 인류가 가장 먼저 쓰기 시작한 금속으로 기원전 9500년경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그리스의 키프로스(Κυπροδ/Cyprus) 섬에서는 막대한 양의 구리가 생산되었는데, 라틴어 cuprum, 영어 copper는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납(Pb) – 멸망을 부르는 위험한 두 얼굴 뇌와 신경계통에 영향을 미쳐 사망에 까지 이르게 하는 납중독. 고대 로마가 멸망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당시 로마 사람들은 광적으로 납을 사랑했는데, 배관, 건축재, 안료는 물론이고 포도주 잔이나 식기로도 사용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여기저기 뿌려 먹는 감미료로 사용하기까지 했다. 감미료라니! 실제로 포도의 유기산과 납이 만나면 흰색의 ‘단 맛을 지닌’ 아세트산납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아이들이 납중독에 잘 걸리는 이유도 납 흡수율이 높을 뿐 아니라,…

저는 분노조절이 안되는 호텔리어입니다
책-영화-기사 / 2017년 3월 24일

저는 분노조절이 안되는 호텔리어입니다   ‘저는 분노조절이 안되는 호텔리어입니다’는 작가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일종의 르포다. 제이콥 톰스키(작가는 본인의 이름을 비롯한 인명을 모두 재구성해서 썼다고 한다)는 학자금대출이라는 빚을 짊어진채 취업문턱에서 연달아 좌절했던 젊은이였다. 철학이라는 전공은 오히려 취업에 방해요소로 작용될 뿐이었다. 그는 대리주차요원으로 호텔 일을 시작해 프론트 데스크를 거쳐 객실 지배인으로 승진한다. 겉으로 보면 승승장구하는 듯 했지만 화려한 호텔의 더러운 이면은 그를 실망시켰고 결국 호텔을 나와 유럽여행을 떠난다. 원래 방랑자적 기질이 강했던 톰스키는 1년을 유럽에서 유유자적했지만 결국 수중에 돈이 떨어지자 뉴욕으로 돌아가 다시 호텔에 들어간다. 호텔에 묵는 사람으로서는 잘 모를 뒷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맨 뒤에 실린 부록 ‘호텔 손님에게 알려주면 안되지만 알려주기로 결심한 몇 가지 팁’도 있지만, 이 글 본문 자체가 사실 팁 덩어리다. 팁을 주는 요령이라고 생각해도 되겠다. 차를 가지고 갔을 때 발렛 파킹하면서 흠집나는게 걱정이 된다면 이렇게 하라, 팁은 체크인 하고 나서가 아니라 하기 전에 줘야 좋은 방을 받을 수 있다, 객실 물컵에서 레몬향이 난다면 프레지를 의심해라, 객실에서 미니 바나 영화 이용하고 돈 내기 싫으면 이렇게 해라… 등등 셀 수 없는 비결(어찌 보면 사기)을 전수하고 있다. 부모님께 들었던 이야기도 있다. 예를 들면 아버지는 모임에서 밥 먹을 때, 먹고 나서가 아니라 먹기 시작해서 좀 있다 팁을 줘야 효과적이라고 알려주셨고, 시어머님은 호텔에서 찻잔이나 물컵, 양치컵을 이용하기 전에는 꼭 깨끗이 물로 씻으라고…

홍차, 너무나 영국적인
책-영화-기사 / 2017년 2월 14일

홍차, 너무나 영국적인 차茶를 너무나 좋아하는 큰 아이 책장에 늘 꽂혀있던 책, ‘홍차, 너무나 영국적인’이 내게로 왔다. 이 책은 차의 종류나 다도를 다룬 책은 아니다. 오히려 차를 중심으로 엮은 문화사에 가깝다. 흔히 영국인은 재미 없는 사람들이고 영국 음식은 맛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영국의 티 타임은 그 어느나라 보다 호화롭고, 그들의 공원이나 정원은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이 책을 읽으면 영국인들의 기질과 차가 역사속에서 어떻게 만나 많은 것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영국인에게 가장 어울리는 차 작가는 사교불편증을 가진 영국인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차가 홍차라고 한다. 어째서일까? 영화나 책에 보면 어색할 때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내 정신좀 봐. 찻 물 올리는 것을 잊었네’ 같은 말이다. 영국 사람들은 차를 끓이면서 마음과 몸을 은근히 이완시키곤 한다.   영국에선 커피집과 찻집, 어떤 것이 먼저 생겼을까? 영국, 하면 홍차기에 찻집이 먼저 생겼을 것 같지만, 예상과 달리 17세기 커피 하우스라는 것이 생기면서 커피 문화가 꽃폈던 곳이 영국이었다. 당시 커피 하우스는 1페니 동전 하나만 내면 들어갈 수 있었고, 온갖 사람들이 모여 정보가 넘칠 정도로 모여 ‘Penny University’라고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여성들은 들어갈 수 없었는데, 차라리 들어갈 수 없는 것이 다행일 정도로 분위기도 위생도 좋지 못한 곳이었다고 한다. 18세기 들어서면서 최초의 티 가든(tea garden)인 복스홀 가든이 생겼다. 이곳은 여성들도 출입이 가능했고,따라서 정원-차-여성의 조합이 이뤄져 차는 커피를…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책-영화-기사 / 2017년 2월 8일

근래들어 동생네 집이 빛나기 시작했다. 십오 년이 넘도록 살아온 같은 집인데 갈 때 마다 점점 더 말끔해진다. 엄마 집에 들어온 터라 엄마의 묵은 살림과 동생의 새 살림이 모여 구석구석 쌓였다. 가끔 보다 못해 치워주긴 했지만 어쩌다 들리는 나로선 역부족이었다.  비결을 묻는 내게 소개한 것이 ‘우리집엔 아무것도 없어’라는 일본 드라마와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는 이 책이었다.  미니멀리즘에 꽂힌 동생에 잡혀 그 자리에 앉아 만화가 원작이었음에 분명한 일본 드라마를 연달아 몇 편 봐야했다. 나중에 ‘우리집엔 아무것도 없어’의 작가 블로그를 보니 드라마속 집이 실제로 작가가 사는 집이었다. 정말 깔끔하기 그지 없다. 밥 해먹고 사는 집 같지 않다. 사람 넷, 고양이 네 마리. 도합 여덟이란 생명체가 복닥거리는 집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집이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도 비슷하다.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타인의 인생을 살면서 허비할 수는 없다– Steve Jobs 시간의 여유는 행복으로 직결되나 물질의 풍요는 그렇지 않다.– Tim Kasser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다.– 법정 자신에게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세계는 당신과 하나가 된다.-노자 위에 소개한 말은 작가가 직접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구절이다. 이 네 구절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나타낸다. 사실  필요한 것과 갖고 싶은 것은 같지 않은데도 사람들은 마약에 취한 듯이 곧 싫증 낼 물건을 사들이곤 한다. 그래서 집안은 쓰지않는 물건, 읽지 않는 책, 입지…

플라나리아
책-영화-기사 / 2017년 2월 5일

플라나리아 토요일, 온 가족이 모처럼 시간이 났다. 산으로 오가는 길에서 봤던 찜질방에 갔다. 뜨거운 사우나나 목욕은 좋아하지 않지만, 따뜻한 바닥에서 뒹굴거리는 것은 매력적이다. 어렸을 때 아랫목에 이불 하나 펼쳐놓고 형제들이 함께 놀던 기억 때문일까. 오래전, 숲속에 있는 점이 마음에 들어 딱 한 번 가봤던 찜질방. 다시 가보니 목욕 시설은 오래되고 낡아 샤워만 하고 나왔지만, 넓은 마루에 온 가족이 모여 아무것도 않하고 먹고 노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었다. 찜질방에는 숯가마, 옥돌 방, 아이스 방…. 종류도 많다. 식구들이 찜질방 구경을 간 사이 학교 도서관에서 전자책을 빌려읽었다. 그 책이 바로 지금 소개하는 ‘플라나리아’다. 제목이 특이해서 골랐다. 도서관 책은 결제할 필요가 없으니 전자책이라도 부담없이 골라읽을 수 있다. 재미 없으면 그자리에서 반납하면 되니까. 그런데 별 기대 없이 읽기 시작한 책이 의외로 재미있었다. 처음 몇 편은 장편으로 쭉 이어질 것 같은 이야기가 뚝 잘린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마지막 이야기는 읽는 내내 그 내용이 머릿속에서 동영상으로 살아 움직였다. 영화로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야마모토 후미오의 단편소설집이다. 플라나리아, 네이키드, 어딘가가 아닌 여기, 죄수의 딜레마, 사랑 있는 내일 등 다섯 이야기가 담겨있다. 플라나리아 유방암으로 절제수술과 복원수술을 받은 주인공은 스스로 생각해도 꼬인 성격. 사회부적응에 노인 알러지로 직장도 그만두고 부모 밑에서 지낸다. 하지만 부모와도 애인과도 잘 지내지 못하고 다시 태어난다면 플라나리아로 태어나길 꿈꾼다. 네이키드 MD였던 주인공은 결혼하면서 남편과…

습관의 힘 -반복되는 행동이 만드는 극적인 변화
책-영화-기사 / 2016년 12월 14일

습관의 힘 -반복되는 행동이 만드는 극적인 변화 습관의 중요성은 누구나 안다. 행동을 바꾸면 습관을 바뀌고 습관을 바꾸면 운명이 바뀐다고들 한다. 정말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 책에선 개인이 습관을 고침으로 어떻게 인생을 바꿀 수 있는지, 기업이 사람들의 습관을 이용해 이윤을 추구하는지, 세상을 바꿀 가능성 등을 여러가지 예를 들어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책을 쓴 찰스 두히그 Charles Duhigg는 뉴욕 타임즈 심층보도 전문 기자이며 이 ‘습관의 힘’외에도 습관에 관한 책을 여러 권 낸 바 있는 작가다. 과자 먹는 습관을 버릴 수 없었던 그가 습관의 비밀을 알기 위해 700여편의 논문과 다국적 기업의 연구자료를 파헤치고 과학자와 경영자 300여명을 인터뷰해서 써낸 책이다. 역시 스타 기자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닌가 보다. 핵심 습관 keystone habit 으로 알려진 것에 집중함으로써 리자는 자신의 삶에서 기계적으로 행하던 다른 모든 습관들까지 다시 프로그래밍 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선택이 습관이다. 하나하나의 습관이 그 자체로는 상대적으로 큰 의미가 없지만, 매일 먹는 음식, 밤마다 아이들에게 하는 말… (중략)… 등이 결국에는 건강과 생산성, 경제적 안정과 행복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매일 행하는 행동의 40%가 의사결정의 결과가 아니라 습관때문이다.

니얼 퍼거슨의 시빌라이제이션(Civilization)
책-영화-기사 / 2016년 12월 11일

지난 10월, 리디북스에서 ‘니얼 퍼거슨 100% 포인트백, 10년 대여 이벤트‘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10,000원에 10년 대여하면 1만원을 포인트로 돌려주는 이벤트였죠. 읽어보고 싶었던 책인데 책 가격만큼 그대로 포인트로 돌려준다니 감사한 마음에 읽게 되었습니다. 돌려받은 포인트로는 읽고 싶었던 또 다른 책을 구입해서 잘 읽었구요. ^^ 시빌라이제이션이란 이 책의 제목은 아시다시피 ‘시빌라이제이션 civilization’입니다. 시빌라이제이션의 사전적 의미는 문명, 문명화를 말합니다. 이 말에는 미묘하게나마 교화(敎化)의 뉘앙스가 비치는 느낌입니다만, 누가 누구를 교화하는 것일까요? 문명인이 비문명인을 교화하거나 비 문명인이 스스로 문명인이 되고자 하는 노력을 통해 일어나는 결과와 그 과정을 말한다고 생각됩니다. 서로 다른 문명이 만나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아가며 변화하는 것이라고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이야기 할 수도 있겠지만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것 처럼 상대적으로 더 강력한 문명이 그렇지 않은 문명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겠습니다. 그런 까닭에 일본은 문명화의 답을 脫亞入歐에서 찾았고, 우리나라 역시 서양의 옷을 입고 머리를 자르는 것을 개화의 상징이라 여겼을 수도 있습니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를 경영하기 위해 식민지를 문명화하는데 힘썼는데, 이 경우엔 의심할 바 없이 문명화는 바로 서구화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서양과 그 나머지 세계 니얼 퍼거슨이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은 서양문명입니다. (서양이 과연 어디고,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학자마다 다르고 애매모호합니다만) 서양과 나머지 세계를 나누고, 15세기 이전에는 강력했던 동양(이슬람, 중국)을 추월해 500년 이상 주도권을 잡고 세계를 이끈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21세기는 앞으로 어떻게…

버지니아 울프, 어느 작가의 일기
책-영화-기사 / 2016년 12월 10일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박인환이 누군지, 숙녀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 목마를 타고 과연 어딜 떠날 수나 있는 건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이 구절로 인해 익숙한 이름 버지니아 울프. 옛날 어린 시절 연습장 표지에 그림과 함께 적혀있던 구절로 버지니아 울프를 알게 되고, 집에 있는 책장 어디엔가 같은 이름의 작가가 쓴 책이 있다는 생각에 뒤져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델러웨이 부인’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당연히 재미 없었습니다. 초등학생이 읽기에 무슨 재미가 있었겠습니까. 그림도 없는 2단 세로 쓰기 책은 글씨가 성경책 보다도 작았습니다. 이 책은 버지니아 울프가 26세 였던 1915년 부터 53세가 되기까지 썼던 진짜 일기를 뒷날 남편 레너드 울프가 버지니아의 문필생활과 관련된 부분만 엮어낸 책입니다. 책을 통해 보는 버지니아는 감정 기복도 심하고 자주 아팠던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그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합니다만, 그것 보다는 오히려 초조하거나 비참한 기분일 때 주로 일기를 써서 그런 면이 더 부각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중고등학교 때 썼던 일기가 대부분 그렇거든요. 친구와 싸웠을 때, 뭔가 오해받거나 내적 갈등상황에 있을 때,  부모님이나 선생님으로 부터 꾸중을 들었을 때, 일이 생각만큼 풀리지 않을 때 꼭 일기를 쓰곤 했습니다. 밖으로 폭발시키는 것 보다는 나았으니까요. 누군가 그 일기를 본다면 조울이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해가 됩니다. 격정을 표현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어디에라도 풀어놓을 데가 필요한…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책-영화-기사 / 2016년 12월 8일

학교에서 빌려와 읽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 수필, 수상소감, 인사말, 음악, 번역, 인사말, 픽션… 다양한 글을 묶었기에 ‘잡문집’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합니다. 서점에서 본 책은 표지가 불타는 듯한 진홍빛이었건만, 도서관에 있는 책은 모두 다 이렇게 하얀 표지이고 책 등도 바랬네요. 많은 분들이 하루키의 잡문집을 이야기 할 때는 굴튀김을 먹는 법을 말하곤 합니다. 물론 저도 홍운탁월을 이야기하는 그 감각적인 글도 좋아하지만, 여기서는 음악에 관해서 쓴 글 중 ‘여백이 있는 음악은 싫증나지 않는다’를 말하고 싶습니다. 이 글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고등학생인 나에게 이천팔백 엔짜리 블루노트 레코드는 어마어마하게 큰 지출이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소중하고 정중하게 들었고, 구석구석까지 외웠고, 그것이 내게는 귀중한 지적재산이 되었습니다. 무리해서 샀지만 그만한 가치는 있었다고 봅니다. 활자인쇄가 없던 시대의 옛날 사람이 필사본을 만들어 책을 읽었듯이, 간절히 듣고 싶은 마음에 고생해서 레코드를 사거나 혹은 콘서트에 가죠. 그러면 사람은 말 그대로 온몸으로 음악을 듣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감동은 특별합니다. 그런데 시대가 흐르면서 음악이 점점 값싼 것으로 변해갑니다. … 물론 그런 식으로 듣는 게 어울리는 음악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음악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음악에는 역시 그 내용에 따라 적합한 그릇이 있다고 봅니다. 이 구절을 읽다 보니 어린 시절 아버지의 LP를 듣던 때가 생각납니다. 까맣게 윤이 자르르 흐르는 판에 흠이 날까, 혹은 지문이라도 묻을 세라 성스러운 물건이라도 다루듯 재킷에서 꺼내 조심스레 턴테이블에 올리고 플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