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으로 성령을 받는가?

갈라디아서 3장 2절 / 무엇으로 성령을 받는가?

구역 모임에서 이번 4월에는 갈라디아서를 공부하고 있다. 갈라디아서는 ‘다른 복음’ 에 빠지는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향한 편지다. 이번 구역 공과 시간에는 갈라디아서 3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첫 질문은 ‘갈라디아서 3장에서 우리가 무엇을 가질 때 성령을 받고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까?’ 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무엇으로 성령을 받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갈라디아서 3장 2절 / 무엇으로 성령을 받는가?

답은 갈라디아서 3장 2절에서 찾을 수 있었다.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갈라디아서 3:2)

갈라디아서 / 무엇으로 성령을 받는가?
Galatians 3:2

무엇으로 성령을 받는가? 우리는 율법의 행위로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니다.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성령을 받아 그 능력이 나타나게 된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7)

1. 성령의 능력

성령의 능력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어떤 이는 병을 고치고, 어떤 이는 설교를 한다. 이렇게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으로 나타나는 은사는 여러 가지다.

은사는 여러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12:4~7)

2. 믿음이냐 행위냐

가.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온 다른 복음 – 율법의 행위로

앞서 말한 것처럼 갈라디아 교회에 다른 복음이 들어왔다. 율법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유대인 성도들은 구원을 받기 위해선 할례를 비롯한 여러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에게 ‘무엇으로 성령을 받는가?’하는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은 오늘날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유효하다. 이것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을 통해 구원이 어디서 비롯되는가, 즉 믿음이냐 행위냐 하는 오래된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

물론 율법은 중요하다. 율법은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한다. 또한 구원받은 성도가 성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기준이 된다. 하지만 율법 자체에 구원의 능력은 없다.

나.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으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받아 천국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된다. 이 기쁜 소식이 복음이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요한복음 14:6)’ 고 하셨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로마서 10:17).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에베소서 2:8~9)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 구원은 은혜다. 믿어지는 것 자체가 은혜요 선물이다. 선물은 그저 받는 것이다. 일한 대가가 아니기에 다른 것이 필요하지 않다.

다. 아브라함은 무엇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나?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여김을 받은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1) 행위로?

그의 행위(할례) 때문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아브라함이 의롭다 여김을 받은 것은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기(86세)도 전이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것은 99세 때였다.

  • 창세기 15:6 –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 창세기 16:15~16 –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나으매 아브람이 하갈의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 륙세이었더라.
  • 창세기 17:23~25 –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 날에 그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생장한 모든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 사람 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 양피를 베었으니, 아브라함이 그 양피를 벤 때는 구십 구세이었고, 그 아들 이스마엘이 그 양피를 벤 때는 십 삼세이었더라.

2) 율법으로?

그렇다면 율법을 잘 지켰기 때문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그때는 율법이란 것이 있지도 않았다. 율법은 그로부터 430년 뒤에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셨다.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그리스도)을 사백 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갈라디아서 3:17)

3) 믿음으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갈라디아서 3:7)

이것은 창세기 15장 6절,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말씀에 근거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 아브라함도 되기 전, 아브람의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 하셨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창세기 15:5)

아브람이 무엇을 믿었기에 의롭다 하셨나? 자손을 번창하게 해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아브람은 자기 자손으로 오실 메시아, 즉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믿었기에 의롭게 여김을 받았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갈라디아서 3:17)

3. 율법의 역할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갈라디아서 3:24)

율법 자체에는 구원의 능력이 없기에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 역할을 한다.

몽학선생은 헬라어로 파이다고고스( παιδαγωγός)로1, 귀족 집안 자제의 훈육을 맡은 노예를 가리킨다.

몽학선생은 차원 높은 지식,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노예 신분이지만 주인과 동등한 권한을 위임받아 감시하다 벌도 주고, 출입 일체를 통제했다2. 주인은 자식을 용서하겠지만, 몽학선생 노예는 가차 없이 벌을 주는 무서운 존재였다니, 사랑의 주님과 율법에 딱 맞는 비유가 아니겠는가.


무엇으로 성령을 받는가? 이 질문은 무엇으로 구원을 받느냐, 믿음이냐 행위냐? 하는 질문과 통한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도 옳고, 우리가 율법에서 해방되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율법을 폐기대상으로 삼는 것 역시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만큼이나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아 구원에 이른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비롯된다.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이끄는 몽학선생이며, 구원받은 우리가 성화된 삶을 살아가는 생활 규범이 된다.

구원받았고 율법에서 해방되었다고 해서 율법을 무시하며 살아선 안 된다. 믿는 자에게는 행위가 뒤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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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s

  1. 이 말은 나중에 pedagogy, 즉 교육학의 어원이 되었다
  2. 율법은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 영혼의 때를 위하여, 2019.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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