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내 영광이 지날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출애굽기 33:22~23)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모세는 하나님께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달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찬란한 모습을 모세 앞에 드러내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내 영광스러운 모습이 지나갈 때, 바위틈에 세워두고 손으로 모세를 가리겠다’고 하셨다. 또 다 지나간 다음에야 가렸던 손을 떼 얼굴은 말고 뒷모습만 보여주겠다고 하셨다.

하나님께 얼굴이 어디 있고 등은 또 어디 있을까. 물론 모두 이해하기 쉽도록 하신 것이지만, 사실 등을 봐도 하나님을 본 것은 맞다. 그런데 어딘지 석연치 않았다. 뭔가 빠진 것만 같았다.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것만 같았다. 곰곰이 생각하며 다시 읽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기도 했다. 그러다 등을 보여주시겠다는 것이 큰 은총임을 깨닫게 되었다.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Moses, Pluchart @wikimedia

1. 생명을 살리심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출애굽기 33:20)

하나님 얼굴을 보고는 살 자가 없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등만 보여주시겠다고 하신 것은 모세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2. 앞장서서 행하시는 하나님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신명기 1:30)

하나님께서는 앞장서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싸워주신다. 뒤를 따르는 우리는 하나님의 등만 볼 수밖에 없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보다 앞서가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앞장서면 하나님을 볼 수 없고, 하나님께서 우리 등을 보시게 된다. 우리가 앞서 달리면서 ‘하나님 어디 계세요? 정말 계세요?’ 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3. 하나님보다 앞서지 말자

아말렉과 싸울 때,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아말렉의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사울은 아까웠다. 가장 좋은 것은 남겨두고 보잘것없는 짐승만 죽였다(사무엘상 15:1~9).

그래놓고는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기 위해서’ 그랬다고 변명했다. 사무엘은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사무엘상 15:22)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하나님을 기준 삼고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을 따르게 된다. 하나님보다 앞서는 것은 내가 기준이 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 대신 왕이 되려는 것이다. 반역이다. 내 앞에 아무것도, 하나님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만 따라가면 된다. 하나님보다 앞서지 말자. 하나님께 순종하자. 하나님의 등이 보이지 않으면 ‘아차!’ 하고 하나님 뒤로 달려가 순종의 자리에 서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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