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4장이 전하는 부활의 메시지


누가복음 24장이 전하는 부활의 메시지는 독특하다. 13~35절,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예수님 사이의 대화가 나온다. 다른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는 부분이다. 이것을 중심으로 1~12절, 36~53절이 배치되어있다. 무심코 넘겼던 구절에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깨닫고 감동하는 것은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일인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누가복음 24장이 전하는 부활의 메시지

13~35절을 중심으로 누가복음 24장을 세 부분으로 나눠 살펴보자. 각 부분마다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반응과 변화가 보인다. 놀랍기만 하던 부활 사건이 어떻게 믿어지는지, 무엇이 매개로 작용하는지 알 수 있다.

1. 세 부분으로 나눠 보는 누가복음 24장

가. 누가복음 24:1~12 – 여자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돌아가셨다.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님 시체를 달라고 요구했고, 장례를 지냈다. 안식일이 지나고 다음 날 새벽, 여자들(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이 예비해두었던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갔다가 무덤이 텅 빈 것을 보게 되었다.

그들에게 든 생각은 ‘예수님이 부활하셨구나!’였을까?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기뻐한 것이 아니라 걱정했다. 천사는 예수님이 살아나셨음을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한 말이 바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였다.

무슨 말씀을 하셨나. 여자들은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하셨던 말씀을 기억했다. 그들에게 믿음이 싹텄다.

그들은 돌아가 사도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전했다. 하지만 사도들은 ‘허탄한’ 것으로 여겨 믿지 않았다.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고 직접 배우고 일했던 그들이 이럴진대, 다른 사람은 어떻겠는가. 부활이란 그만큼 믿기 어려운 일이다.

나. 누가복음 24:13~35 – 엠마오로 가는 길

여자들에게 전해 들은 부활 소식을 그저 허탄한 것으로 여겼던 무리 중 두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엠마오라는 곳으로 가면서 그 소식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누가복음 24장이 전하는 부활의 메시지
엠마오로 가는 길 1877@wikimedia

그때, 어떤 이가 다가와 길동무가 되었다. 새 친구는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라 말하며,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에 관한 성경 말씀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저녁 식사 때 비로소 눈이 밝아진 두 사람은 새 길동무가 예수님인 것을 알게 되었다.

다. 누가복음 24:36~49 – 11 제자

엠마오로 가던 두 사람은 즉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11 사도와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부활과 만남에 대해 말했다. 그때 다시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 하지만 그들은 반가워하는 대신 유령이라고 생각하고 겁에 질렸다.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누가복음 24:38)

귀로 들어도 믿기 어렵고 눈으로 봐도 믿기 어려운 것이 예수님의 부활인가 보다. 예수님께서는 겁에 질린 그들에게 손과 발의 못 자국과 상처를 보여 유령이 아니라 육신임을 증명하셨다.

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 (누가복음 24:41)

그들은 그래도 의심을 완전히 풀지는 못했다.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누가복음 24:45)

예수님께서는 고난과 부활, 구원과 말씀전파에 대한 성경 말씀을 깨닫게 하셨다.

2. 누가복음 24장이 전하는 부활의 메시지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눠 살펴보니 제자들이 부활을 듣고 체험하고 깨달아가는 과정이 눈에 들어온다.

제자들의 관점에서 봤을 때, 부활은 그저 전해 들은 소식이었고 남의 일이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들에게 마음을 열고 말씀을 깨닫게 하시자 그것은 나의 부활, 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믿음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뜻과 노력으로, 믿어야지 작정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직접 오신 것처럼, 우리에게 성령님이 오셔서 마음을 열어 깨닫게 하는 역사가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었다.

병자에게 약이 있으면 무슨 소용인가. 약이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약은 먹어야 작용한다. 부활도 마찬가지다. 부활이란 역사적 사실 그 자체다. 하지만 제자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인간의 부패성은 영적 자각 능력을 제로로 만들어 버린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다. 사실을 이야기하면 그것으로 충분한가? 그렇지 않다. 사실을 그대로 얘기해도 믿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누가복음에서 이렇게 강조할 필요도 없다.

사실이나 사실 전달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한가지 인자가 더 필요하다. 바로 성령의 역사하심이다. 누가복음 24장이 전하는 부활의 메시지가 바로 이것이다. 부활과 성령의 역사를 하나로 제시한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실 때 눈이 밝아지고 말씀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확신이 생기게 된다.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면 깨닫지 못한다. 말씀을 듣지 못하면 기억할 말씀이 없다.

천사들도 무덤에서 여자들에게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고 했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도 주님께선 ‘모세와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 하셨다. 예루살렘에서도 제자들에게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셨다.

“에바다!”

지금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살리시는 부활의 능력이 우리 안에도 체험되기를, 예수님의 부활이 내 부활로 작용하기를 기도하자.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마가복음 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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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0.6.5. 새벽기도 말씀(내수동교회, 담임목사 박지웅)을 듣고, 나름대로 정리, 요약한 글입니다. 설교 본문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반갑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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