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종류의 인생 – 가인의 후손과 셋의 후손

두 종류의 인생 – 가인의 후손과 셋의 후손

지난주 주일 설교(하나님 노릇 하지않기) 가운데 ‘두 종류의 인생’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내게 큰 위로와 감동으로 다가왔다. 더구나 몇 번을 읽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 내용이 있어 정리해 본다.

두 종류의 인생이 있다. 가인의 후손과 셋의 후손이다. 가인의 후손과 셋의 후손은 모두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내용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인의 후손 – 하나님 없이 살았던 세속주의 인생

두 종류의 인생 - 가인의 후손과 셋의 후손

Reliefs of the Giotto’s Belltower/ 두발가인이 동철 작업을 하는 모습을 나타낸 부조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

에녹이 이랏을 낳았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았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았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라멕이 두 아내를 취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며,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하여 육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그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이었더라. (창세기 4:16~22)

가인의 후손이란 하나님 없이 살았던 세속주의 인생을 대표한다. 목축, 경제, 음악, 금속, 기계… 세상 모든 문명의 조상이 되었다. 인간적으로 남긴 것도 많고 화려하게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엔 그 살아간 날들이 별 의미 없는 것이었다. 업적과 자손만 계보에 나와있을뿐, 그들이 살았던 날들은 나와있지 않다.

셋의 후손 – 하나님과 동행한 의미있는 인생

Enoch translated. Genesis cap 5 v 24. De Vos/ 에녹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아담이 일백 삼십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아담이 셋을 낳은 후 팔백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 삼십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셋은 일백 오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 칠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 십 이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므두셀라는 일백 팔십 칠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을 낳은 후 칠백 팔십 이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구백 육십 구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창세기 5:1~27)

셋의 후손들은 인간적으로 봤을 때 대단한 업적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엔 화려한 업적을 남긴 가인의 후손보다 하나님과 함께한 셋이 후손들의 일생이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하나하나가 ‘몇 살에’ 아이를 낳고 ‘몇 년을 더 살며’ 자녀를 낳다가 ‘몇 살을 향수’하고 죽었다고 그 연수를 세어주신 것이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들이 서로 만난지 삼백오십일일 되었다고 세는 것 처럼 그 하루하루가 소중하셨나보다.

 

요셉은 꿈을 꾸고 노력해서 큰 사람이 되었나

이 말씀을 들을 때 내게는 정말 큰 위로가 되었다. 세상은 사람들에게 ‘큰 꿈을 꾸라’고 한다. ‘꿈 꾸는 대로, 바라는 대로 이룰 수 있다’며 힘을 내라고 한다. 큰 업적을 남기라고 한다. 그럴듯 하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세상은 꿈꾸고 노력하는 사람은 누구나 ‘성공’하는 그런 이상적인 곳인가?

요즘은 교회도 마찬가지다. 꿈을 꾸는 사람이 되라고 한다. 요셉을 꿈꾸는 자의 모델로 이야기한다. 그런데, 과연 요셉이 파라오 에 버금가는 높은 사람이 되고 권력자가 되는 꿈을 꾸고 노력해서 성공한 사람인가?

물론 어린시절 꿈을 꾸긴 했다. 그리고 그 꿈 덕분에 배다른 형제들은 그를 죽여버리고 싶어했다. 무슨 꿈이었나. 하나는 추수할 때 형들의 곡식단이 요셉의 곡식단을 둘러서서 절하는 꿈이었다. 또 하나는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이었다1. 하지만 꿈을 이루고 말리라 마음먹고 애쓸 작정이었으면 그런 꿈 얘기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노예로 팔린 뒤나 혹은 시위대 감옥에 갇힌 다음에 ‘내가 꼭 높은 지위에 올라 권력자가 되겠다’ 고 마음먹고 노력했을까? 만약 그랬다면 에드몽 당테스 같은 인물이 되어 복수의 화신이 되었을 것이다. 성경 어디에도 그가 어릴 적 꾸었던 꿈을 생각하며 와신상담 했다는 기록은 없다. 그저 하루하루를 하나님과 동행하며 성실하게 살았다는 기록만 보일 뿐이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창세기 39:2~4)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 Joseph and Potiphar’s Wife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하자 요셉은 이렇게 말한다.

이 집에는 나보다 큰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 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창세기 39:9)

유혹에 실패하자 모함해 요셉을 옥에 가두게 하는데, 감옥에서도 요셉은 하나님과 함께 했다.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창세기 39:20~23)

요셉은 꿈을 꾸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 결국 그 노력으로 성공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하나님과 함께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이 되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았을 뿐이다. 우리 역시 각자 다 하나님께서 빚으신 그릇이다.

 

하나님과 함께 하면 성공한다

하나님과 함께 하면 성공한다. 하지만 그 성공 기준은 세상의 것과는 다르다.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성공이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가장 큰 복이다. 예를 들어 큰 부자가 있다고 할 때, 그에게 몇 푼 받고 떨어지는 것과 평생 그 부자의 자녀로 사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큰 복인가 생각하면 금방 알 수 있지 않을까.

셋의 후손들은 그런 인생이었다. 물론 셋의 후손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노아의 홍수도 있지 않았을 것이고 지구도 이렇게까지 힘들어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처럼 혹한과 혹서로 시달리는 일도 아마 없겠고, 우리도 8,9백 살씩 장수하다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셋의 후손이란 하나님과 동행하며 세상과 구별되는 삶을 사는 인생을 말한다.

“큰 업적을 남기지 않아도 괜찮아. 세상에 이름을 날리지 않아도 괜찮아. 큰 돈을 벌고 큰 권력을 잡고 사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아도 상관 없어.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저 주어진 하루하루를 하나님과 함께 살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사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야.” 내가 받은 메시지가 바로 이것이었다. 이 메시지는 내게 정말 큰 위로가 되었다.

큰 꿈을 꾸라고, 뭔가 해내고 성공하라고 모두 다그치는 속에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상처를 받고 인생을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좌절하는지 모른다.

딱히 꿈이 없는 사람도 많다. 많은 꿈 중에서 고르기 어려운 사람도 많다. 능력이 넘치는 사람도 많고 반대로 모자라는 사람도 많다. 사실 능력이 많고 적음을 재는 기준이 뭔가. 성공의 기준을 허튼데 잡아두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성경은 말한다. 세상에서, 학교에서, 심지어 요즘은 가정에서 말하는 성공이 사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냥 주어진 삶을 하루하루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의미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큰 분의 인정을 받는 것이 가장 성공한 인생 아닌가.

Footnotes

  1. 창세기 37:1~36

열매맺는나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10)' 고백의 기쁨을 함께 누리고자 글을 씁니다.

2 Responses

  1. Ann 댓글:

    참 좋은 말씀이예요. 세상과 구별되라 하셨는데, 삶의 잣대는 저도 모르게 세상속에서 찾을 때가 많았습니다. 요셉처럼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옥에 갇혔을 때에도 요셉이 일을 잘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계셨음을 잊지 않고 싶습니다^^

    • 우리가 잘났건 못났건 모두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만이 우리의 왕인데, 자꾸 다른 데에서 기준을 찾곤 하죠. 모든 것 되시는 주님과 늘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반갑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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