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림이 없느냐 – 예레미야 5장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모래를 두어 바다의 계한을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계한을 삼고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가 흉용하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노나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 (예레미야 5:22)

떨림이 없느냐

하나님께서는 바다의 경계를 정하셔서 물이 그것을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다. 어찌 이것뿐일까.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자연 질서가 유지되도록 그것을 붙들고 계신다. 평범해 보이고 당연하게 느껴지는 일상 구석구석 하나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보고 떨림이 없느냐 묻고 계신다.

1. 영적 지각이 살아있는 사람은 떨림이 있다

우리는 언제 떨게 되나. 두렵거나 감동, 감격을 느꼈을 때 우리는 부르르 떨게 된다. 이런 하나님의 손길을 보고서도 떨림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가 영적으로 무감각한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살아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다. 예레미야 5장 22절 말씀을 보면 오랜 시간 기도하고 교회 꼬박꼬박 출석하는 사람이 깨어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바로 이렇게 하나님의 손길에서 떨림을 느끼는 사람이 영적으로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하신다.

2. 깨어있는 사람은 익숙한 것도 늘 새롭게 여긴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마태복음 6:25)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마태복음 6:28)

예수님께서는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보면서 찬양하셨다. 이것은 감상적 기질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일상에서 하나님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영적인 눈이 열려있는 사람, 다시 말해 깨어있는 사람은 익숙한 것을 익숙하게 여기지 않는다. 익숙한 일상과 자연을 늘 새롭게 보고 감사할 것, 기도할 것을 찾아낸다. 영적으로 살아있는 사람은 일상 속 작은 일에서도 감탄하고 감사한다.

3.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은혜를 받을 수 없다

그러나 너희 백성은 배반하며 패역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미 배반하고 갔으며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예레미야 5:23~25)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무엇이 문제인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좋은 것을 받을 수도, 누릴 수도 없고 사회와 나라의 문제가 된다.

가. 은혜를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의 본심은 어떻게 하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어 떠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죄와 허물이 그런 모든 좋은 것들을 막고 물리쳤다고 하신다. 무감각한 모습, 바로 그것이 죄가 되고 허물이 되었다는 말씀이다.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다.

이런 사람이 주일날 예배를 드려봤자 뜨거운 예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될 수 없다. 죽은 예배가 된다.

나. 은혜를 누릴 수도 없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찌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누가복음 16:31)

자연과 일상의 기적을 보고도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 살아나 하나님을 증거해도 하나님과 함께하는 은혜를 누릴 수 없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복을 누리지 못하는데 어떻게 부스러기 같은 다른 은혜를 누릴 수 있을까.

너희가 많이 뿌릴찌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찌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찌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학개 1:6)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를 누릴 수도 없다. 일을 많이 해도 수입이 적고, 입고 먹고 마셔도 만족이 없다. 봉급을 받는 족족 지갑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다 새어나가 버린다.

다. 사회와 나라의 문제가 된다

내 백성 너희 중에 악인이 있어서 새 사냥군의 매복함 같이 지키며 덫을 놓아 사람을 잡으며 조롱에 새들이 가득함 같이 너희 집들에 속임이 가득하도다.

그러므로 너희가 창대하고 거부가 되어 살찌고 윤택하며 또 행위가 심히 악하여 자기 이익을 얻으려고 송사 곧 고아의 송사를 공정히 하지 아니하며 빈민의 송사를 공평히 판결치 아니하니 내가 이 일들을 인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같은 나라에 보수하지 않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예레미야 5:26~29)

감사와 감동이 없는 사람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고, 이런 사람은 배반하고 반역하는 자(23절)라고 하신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없다(24절). 그런 사람이 하는 일들은 모두 악할 뿐이다.

어떤 악한 일들을 하는가. 이미 창대하고 거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탐심이 그득하다. 재판에서 공정한 판결을 하지 않고 고아와 과부를 착취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과 그런 나라를 보수하시겠다고 하신다.

보수 報酬란 행위에 따라 받는 값을 말한다. 악한 일에 받을 보수는 벌밖에 없지 않은가. 이런 악한 자들로 인해 나라가 벌을 받는다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4. 고난이 오면 영적으로 깨어난다

고난이 오면 모든 것이 감사해진다. 영적으로 깨어난다. 일상이 기적임을 깨닫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겪는 이번 고난은 기회다. 우리 영을 깨우자. 우리 영이 다시 일어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안에 예수의 영을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렸다. 설교가 끝나고, 몇몇 교인들이 보내온 영상을 편집한 화면이 나왔다. 그 영상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

그동안 주일이면 예배당에 모여 예배드리는 것을 정말 당연(의당 그래야 하긴 하지만)한 것으로 여겨왔다. 그런데 이렇게 함께 예배드리지 못하는 상황이 되니, 그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은혜였음을 깨달았다. 없어 봐야, 빼앗겨 봐야 소중함을 알게 된다더니 정말 그랬다.

예배당 앞 골목길을 오가다 서로 마주치는 교인들끼리 밝게 웃으며 “안녕하세요!” 나누던 인사, 구역 모임에서 사랑의 교제와 애찬을 나누던 일상. 그런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것이었는지. 그런 나날들을 하루속히 다시 맞이하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

떨림이 없느냐
정동진에서

이 글은 ‘여호와를 찾으라 6 – 하나님을 찾는 자는 감탄하며 산다‘(2020.3.29. 내수동교회 주일설교, 박지웅 담임목사)를 듣고 나름대로 정리, 요약한 글입니다. 제 생각과 내용이 들어있어 설교 본문과 다릅니다. 설교 본문 텍스트 자료나 음성, 동영상 자료가 필요하신 분들은 링크된 페이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반갑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