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기도 & 의인의 기도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찌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야고보서 5:15~18)

야고보서의 결론은 기도에 대한 말씀이다. 본문에는 두 종류의 기도가 나온다. 믿음의 기도(야고보서 5:15)와 의인의기도(야고보서 5:16)다.

믿음의 기도 & 의인의 기도

믿음의 기도 & 의인의 기도
믿음의 기도 & 의인의 기도 (야고보서 5:15~16)

믿음의 기도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브리서 13:8)

무엇을 믿는다는 것인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전이나 후나 그 임재와 역사에 변함이 없다는 믿음이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을 믿기에 장로들을 청하고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한다.

‘주께서 일으키시리라(15절)’고 했다. 내 기도가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나는 기도할 뿐, 일으키시는 것은 주님이시다.

의인의 기도

그런데, 우리 기도의 본질이랄 수 있는 이 ‘믿음의 기도’를 떠받치는 것이 있다. 바로 의인의 기도다. ‘의인의 간구’라고 할 때 의(義)는 도덕적인 의가 아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다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의롭다’ 칭함을 받았다. 하나님과 바른(의로운) 관계를 가진 사람은 도덕적인 의를 당연히 실천해야 한다. 그러나 도덕적인 의를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하나님과 바른 관계(의)를 가진 사람은 아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하리라. (마태복음 7:22~23)

예수님의 현존성과 변함없는 임재를 믿는 믿음의 기도가 진정으로 능력의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의인의 기도’가 전제되어야 한다. 하나님과 내가 바른 관계, 친밀한 관계가 아니라면 하나님의 역사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역사가 과연 나타나기는 할 것인가. 아무리 선지자 노릇하고 능력을 행해도 아무 의미가 없다.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시편 18:6)

친밀한 관계는 기도에 확신을 갖게한다. 다윗은 ‘내가’기도하면 하나님은 들으신다는 확신이 있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면 우리가 간구하기 전에 하나님 편에서 먼저 우리의 필요를 물어보신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마태복음 6:25)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26~33)

우리의 필요를 구하는 기도를 금하신 것이 아니다. 그것을 최종 목표로 삼는 것은 믿지 않는 이방인과 다를 바 없다, 먼저 구해야 할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 즉 하나님과 나의 올바른 관계라는 것을 말씀하셨다.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잠언 23:26)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 어떤 사람이 되느냐, 어떤 관계가 되느냐가 중요하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했다. 하나님께 내 마음을 드리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함께 마음을 나누는 그런 관계가 의로운 관계, 친밀한 관계라고 할 수 있겠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되셨고 우리 하나님이 되셨다. 예수님은 부활승천 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를 제자들도 누릴 수 있게 되었음을 알려주고 싶어하셨다.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 (요한복음 20:17)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하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에베소서 6:18)

바울은 기도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했다. 하나님과의 친밀하고 올바른 관계를 위한 기도가 필요하다. 이것이 의인의 간구다. 나의 기도는 어떠한가. 의인의 기도가 있어야 믿음의 기도도 가능하다.


이것은 ‘믿음의 간구, 의인의 간구‘, 2019. 4.7. 주일설교를 듣고 나름대로 정리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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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맺는나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10)' 고백의 기쁨을 함께 누리고자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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