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 사상이냐 실재냐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고린도전서 15:12~13)

부활을 교리로 믿었던 사람들

고린도 교인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하는 말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었지만 죽은 자들의 부활은 믿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여기서 그들의 신앙 상태를 알 수 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었던 것은 그저 사상이나 교리로만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부활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시킬 수 없었다. 예수의 부활이 내 부활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부활 - 사상이냐 실재냐
아프로디테 신전에서 바라본 아크로코린토스 언덕
 고린도는 말씀이 전해지기 전, 신전에 매춘하는 무녀가 무려 1,000명이나 있던 우상의 도시였다

19, 20세기 유럽 신학

오늘날도 얼마든지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 교리로서의 부활은 믿지만, 역사적 실재로서의 부활은 믿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19, 20세기, 유럽에 이런 신앙운동이 있었다. 그들은 ‘역사적 부활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의미가 중요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 후 유럽의 교회는 초토화되었다. 영적으로 죽은 상태가 되었다.

사상과 실재의 차이

무슨 까닭이었을까? 사실과 의미, 실재와 사상에는 미묘하지만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생명력의 차이다. 그들은 틀렸다. 부활이란 사상이 아니다. 그것은 실재다. 사실이 중요하다. 사상과 실재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만남

사상과 교리는 부활을 ‘설명’할 수는 있어도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은 없다. 교제도 추억도 없다. 마치 유럽을 책으로 본 것과 실제로 여행한 것처럼 다르다. 아는 것과 체험은 전혀 다르다. 부활을 설명할 수 있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거기에는 아무런 능력이 없다.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에 무슨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까.

변화의 힘

무엇이 우리의 신앙을, 삶을 변화시킬까. 지금도 살아계신 주님, 그 부활하신 예수님의 실재가 오늘 우리의 영혼과 삶을 변화시킨다. 바울이 부활의 역사성과 실재성을 그토록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믿는 사람들을 사냥하듯 잡으러 다니던 사울이 사도 바울로 180도 바뀐 것은 무엇 때문이었나. 부활 교리가 그를 바꾼 것이 아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바로 그분의 실존이 바울을 변화시켰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나타나셨고, 그다음은 12 제자에게, 또 500여 명의 형제에게 일시에 드러내셨다. 그때까지 살아있던 사람도 태반이나 되었다. 그리고 바울 앞에도 보이셨다.

오늘날, 우리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실재 앞에서 무엇을 깨달았을까. 첫째, 자신이 덜 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만삭 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이란 말은 바울이 실제로 팔삭둥이라는 말이 아니다. 그렇게 덜 된 것 같은 모자란 존재라는 뜻이다. 교만이란 돌 때문에 미처 보이지 않던 자신의 실체가 보이게 되었다. 자기 자신을 보는 눈이 바뀌었다. 겸손은 훈련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둘째, 비로소 ‘은혜’를 깨닫게 되었다. 백 번 죽을 죄인을 버리지 않고 살리시는 주님의 사랑 앞에서 처음으로 은혜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린도전서 15:3~10)

오늘날 교회 안에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은 없다. 부활의 교리를 말하고 가르칠 수 있는 사람도 많다. 오늘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 교제하고 있는가? 동행하고 있는가? 이것이 사도적 신앙이다.

마귀는 우리 신앙을 교리와 사상적 신앙에 묶어놓으려 한다. 사람은 가만 놔두면 마치 중력의 법칙처럼 보이지 않는 실재에는 눈을 닫게 된다. 말씀을 머리와 가슴에 담은 것으로 끝내지 말고, 그걸 가지고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 교제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부활의 주님이 오늘도 내 삶 속에서 살아계신 주님이심을 믿고 증거 하는 삶을 살자.


이 글은 ‘부활 , 사상이냐 실재냐?, (2019.4.21. 내수동교회 주일예배, 박지웅 목사)를 듣고 나름대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과 동영상이 필요하신 분들은 첨부된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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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맺는나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10)' 고백의 기쁨을 함께 누리고자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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