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주의는 어디에서 오는가, 누구에게 무엇을 구해야 하는가

세속주의는 어디에서 오는가, 누구에게 무엇을 구해야 하는가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야고보서 4:1~2)

세속주의는 어디에서 오는가, 누구에게 무엇을 구해야 하는가

세속주의는 과연 어디에서 오는가?

전에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한 사람들이란 글에서 방향을 잃고 그저 빨리 달리려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세속주의는 그런 것이다. 힘껏 쏜 화살이 바람이 불면 과녁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다면 그런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오는걸까? 세속주의는 과연 어디에서 오는가?

세상에서 오는 것일까?

우리는 세속을 속세, 속된 세상으로 생각한다. 세상의 유혹에 굴복하고 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이를테면 친구들과 공차기로 한 약속 때문에, 기말고사 준비 때문에, 거래처 접대 때문에… 많은 이유로 ‘이번 주일예배는 꼭 참석해야지’ 하는 다짐이 무위로 돌아가 버린 경험도 한번씩 있을 것이다.

그런 일들이 과연 환경에서 오는 문제일까?

세속주의는 내 안에서 온다

조건은 환경에서 주어졌다지만, 결국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핑계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세속주의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 중심에서 나오는 문제다. 세속주의는 바깥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다.

내적 전쟁이 외적 전쟁보다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세상에서 가장 이기기 어려운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이다. 오죽했으면 바울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로마서 7:24)’ 고 했을까.

 

누구에게 무엇을 구해야 하는가

무엇을 구해야 하나

사람은 누구나 복을 바란다. 하지만 어떤 복을 구해야 하는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우선적으로 원하는 것이 믿음이 없는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라면 거룩함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믿는 사람이라면 영적인 복을 구해야 한다.

맞다. 그렇다면 거룩함을 위해 내 일상의 시시콜콜한 일을 아뢰는 것은 삼가야 하나. 난 그렇지 않다고 본다. 영만 중요하고 육은 그렇지 않다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왜 제자들을 위해 손수 아침을 차려주셨겠는가. 또,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왜 우리 몸까지 부활시키시겠는가.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다. 물질적인 것은 수단일 뿐이다. 사랑의 대상이 아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요한1서 2:15~16)

누구에게 구해야 하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주시기를 원하신다. 영육간은 물론 물질적으로도 풍요롭기를 바라신다. 그 이유는 우리가 착한 일을 할 때 부족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9:8)

하지만 그 복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어야 한다. 약이라고 모두 몸에 좋은 것이 아니듯, 부요함이라고 모두 다 이로운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 구해서 누가 줬느냐가 중요하다. 이것은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모두 통털어 해당된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하러 사병 318명을 이끌고 나가 엘림왕 그돌라오멜과 동맹군 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때 소돔왕은 아브라함에게 전리품을 권했지만 아브라함은 거절했다. 내 복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뿐 다른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선언했다.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화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 (창세기 14:22~23)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에 이렇게 응답하셨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창세기 15:1)

정말 부럽지 않은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복을 가로막는 세속주의. 그것은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온다. 믿는 성도는 다른데서 받는 존재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께 받는 존재다.

아브라함이야기 4 -아브람, 롯을 구하다

겸손과 교만 – 마음을 굳어버리게 놔두지 말자


이 글은 2018.6.10. 주일설교, ‘성도는 오직 하나님께 받는 존재다‘를 듣고 나름대로 정리한 글입니다.

반갑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