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자본주의자

숲속의 자본주의자

바로 어제 ‘숲속의 자본주의자‘ 를 선물 받았다. 소로의 월든이 연상되는 책이었고, 실제로 작가도 그 책을 자주 언급하기도 한다. 부제는 ‘자본주의의 변두리에서 발견한 단순하지만 완전한 삶’이다. 정기적인 임금노동에 종사하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 만큼만 일하고도 살아갈 수 있는지 궁금해 7년째 지속중인 생활양식에 관한 보고서라 할 수 있다. 

숲속의 자본주의자

숲속의 자연주의자도 아니고 숲속의 자본주의자라니,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있을까. 하지만 이유가 있다. 숲속이라 함은 작가 박혜윤과 그의 가족들이 사는 곳이 시애틀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숲속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라 함은 자본주의를 활용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여유 시간을 누리면서 굶지 않고 살아가고 있어서다.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 동안 통밀을 갈아만든 빵을 팔고 유료 구독자에게 뉴스레터를 발행한다. 남편은 글을 쓰고 번역을 한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사는 한 달 생활비는 평균 100만 원. 그는 어떻게 해서 이런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서울에서 기자로 지내다 미국에서 심리학 석박사 학위를 땄지만, 연구사업을 따오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던 작가. 마침 그해 2013년 남편이 퇴사를 선언했다. 큰애는 초등학생, 작은 애는 유치원생이었다고. 주택단지 사업이 수포로 돌아간 부지를 사들여 이동식 조립 주택에서 산다. 유기농업을 하고 싶었지만, 새순을 먹어 치우는 동물들에게 분노하게 되었고, 사슴을 미워하느니 사슴처럼 살겠다며 빵집을 시작했다고 한다.

인터넷, 커피, 술 3無에 사교육도 없는 생활을 하는 박혜윤 작가. 나로서는 비슷한 관심사도 있고 납득하기 어려운 생각도 있었지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몇 가지 생각나는 점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어린 시절에 대한 해석

어린 시절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인생에 대한 시각이 바뀐다. 어린 시절을 상처라고 생각하는 대신 조기 훈련이라고 생각하니, 작가는 자신을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생각이 바뀌면 내가 상대하는 사람도 바뀐다. 남편과 치열하게 싸우고 이혼을 생각했지만, 남편이나 결혼을 바꾸는 데 관심이 없어지자 남편도 바뀌고 결혼생활도 바뀌었다.

2. 토니 셰이

토니 셰이는 하버드 출신의 대만계 미국인으로 미국 최고 인터넷 신발 쇼핑몰 자포스 창업자다. 손대는 사업마다 성공해 1조 원이 넘는 자산을 보유한 스타트업 천재였다. 사재를 털어 라스베이거스에서 도시 공동체 프로젝트 사업을 진행했는데, 꿈을 이루고자 하는 수많은 사람을 입주시켜서 자기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게 했다. 유타주에서도 같은 사업을 진행했는데, 그는 성공하면 할수록 현실에서 멀어졌다. 남을 도와주면서 자기 자신은 돌보지 않아 마약과 알콜에 중독되고 자기를 고립시켰다. 그는 산소를 없애보겠다고 들어간 방에 불이 나는 바람에 죽게 되었는데, 그때 그는 초와 히터를 가지고 들어갔다고 한다. 초를 태워 산소를 없애려다 불을 낸 것일까.

인간은 불완전하다. 이웃이 필요한 건 그 때문이다. 남에게 기대는 것도 남을 받아들이는 것만큼이나 용기가 필요하다. 겁쟁이가 되지 말자.

3. 남의 반응에 신경쓰지 않기

인터넷 세상에 악플이 많은 것은 다 아는 이야기다. 그런데 작가 면전에 대놓고 쓴소리나 험담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나 보다. 그들 중 대다수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작가에 대한 불만이 아닌 자기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했다.

여기서 얻은 결론은 사람들의 반응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 사람들이 타인을 보며 판단할 때, 그들은 늘 자기 자신을 비춰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타인에 대한 내 반응이 내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려준다.

4.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

어떤 사람이 세상을 등지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사막 한복판으로 갔다. 집, 식량, 물, 냉난방 등 완벽하게 준비한 터였다. 하지만 그런 필수품이 다 떨어지기도 전에 그는 미친것처럼 차를 몰아 가장 가까운 술집에 들어갔다. 누구랑 이야기하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다만 북적이는 술집에 혼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지겹게 느껴지기만 했던 타인의 존재가 사라지자 나도 없어지게 되는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다. 학교 다닐 때 많이 들었던 말이다. 사람 人자를 보면 두 획이 서로 받치고 있다.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홀로 지내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배필을 만들어 주셨다.

5.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이 말은 아카데미 수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한 말이다. 그전에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한 말이기도 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쓰면서 내가 즐거운 글을 쓴다. 내가 즐거우면 그것을 똑같이 즐겁게 읽어주는 독자가 틀림없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창작을 하는 사람들이 슬럼프에 빠져 힘들 때가 있다. 대개 타인의 기대에 너무 집중해서다. 그렇다고 내 이야기를 하면 백발백중 성공한다거나 성공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상 전체는 아니더라도 몇 명에게는 나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이 될 수 있다. 적어도 자기 혼자서라도 재미를 느낄 수 있다.

6. 스피노자

인간에게는 자유가 있다. 인간은 신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여기서 왠지 스피노자를 인용한다. 그는 유대계 네덜란드 사람이다. 그는 데카르트의 실체론을 부정하고 절대적으로 무한한 실체 안에 분할되지 않는 실체의 속성으로 사유속성과 연장속성이 있다고 보았다. 즉 관념(신)이 물질(자연)인 것으로 보았고, 이것은 범신론 내지는 무신론의 토대가 되었다. 육체와 영혼을 가진 유일한 존재로서의 인간과 성육신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데카르트를 부정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신까지 부정하게 된 것이다. 그는 곧 유대교로부터 파문되기에 이르렀다. 재미있지 않은가. 유대교에서는 예수를 신성모독으로 십자가에 달았는데, 예수를 부정하니 하나님을 부정한 결과가 되다니 말이다.

어쨌든 이성의 힘을 믿고 신의 지배를 벗어나게 한 천재로 스피노자를 소개하고 있다. 스피노자의 용어를 빌려, ‘양태는 바뀌었을지 모르지만 매 순간 내 마음의 힘으로 나의 자유를 선택하고 쟁취해야 하는 실체는 그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바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197쪽)’고 하는데, 나로서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그 문장의 의미도 모르겠고, 그가 말하는 자유가 뭔지도 모르겠다. 각자 나름의 생활방식을 선택할 자유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존 스튜어트 밀이 낫지 않았을까.

스피노자의 자유가 신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인가. 우리를 자유케 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으로부터의 자유인가? 더 이상 죄의 종노릇 하지 말라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라면 계속 죄의 종으로 남아있겠다는 것인데, 그것도 자유인가?

7. 개개인 자체가 축적된 지식의 산물이다

고전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법이라는 챕터에서 어떤 책이든 꼭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개개인 자체가 축적된 지식의 산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도 여기 공감하는데, 작가가 말한 것처럼 ‘진화의 과정을 거친 우리 육체와 사고방식, 지식도 마찬가지’라서가 아니다. 우리 안에 조상의 기억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조상의 경험은 정보화되어 내 유전자에 기록된다. 기억은 대뇌뿐 아니라 DNA에 기록되어 세대에서 세대로 유전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이다. 경험과 기억이 유전되고 신체 손상은 유전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또 같은 장에서 인용한 학부 시절 영문학 교수님의 말씀도 인상 깊다.

글의 주인공은 본인의 생각이고, 아무리 유명한 천재의 인용도 조연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자기의 길에서 자기의 생각이 가장 빛나야 합니다. 그게 세상을 위하는 글입니다. 천재의 글을 사소하게 만들 만큼 당당하게 학생의 생각을 쓰세요. 무지가 창피한 게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게으름이 창피한 겁니다.

8. 뇌 가소성

뇌 가소성이라는 개념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뇌는 플라스틱처럼 말랑말랑해서 필요할 때 변화시키고 새로 배울 수 있다는 이론이라고 한다. 뇌는 고정된 무엇이 아니라 연결된 회로이고, 연결을 선택해 만들 수 있는 회로는 무궁무진하다. 질 볼트 테일러라는 뇌과학자는 좌뇌 혈관이 터지는 뇌졸중을 겪게 되었는데, 그 상태에서 느낀 것은 좌절이 아닌 환희와 기쁨이었다고 한다. 마치 좌뇌가 비극이라고 판단해야 비극이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작가는 이 이론을 실제 생활에 적용한 이야기를 한다. 3살 된 아이의 고집에 분노가 폭발해 아이에게 소리 지르다 한 대 때리고 침대에 거칠게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곧 그것은 자신을 보호하려는 거짓말처럼 느껴졌고, 아동 학대범처럼 느껴졌다. 달라지기 위해서는 후회가 아니라 새로운 회로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고, 이제는 화로 연결되는 회로가 끊겼다고 한다.

숲속의 자본주의자:자본주의의 변두리에서 발견한 단순하고 완전한 삶, 다산초당, 박혜윤

9. 치열하게 살고도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들을 위하여

책 맨 끝 작가의 말을 보니, 이 책은 자연주의나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사람,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루 종일 치열하게 살고도 자리에 누우면 불안한 마음에 휩싸이는 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되어 있었다. 작가의 삶이 좀 부럽다. 하지만 서울에서 대전도 KTX타고 55분 밖에 걸리지 않는데, 그만한 거리에 있는 숲속에서 살 수 있을까 싶다. 출퇴근해야 하는 아이들도 있는데 말이다. 잠시 즐기는 휴가라면 몰라도 뿌리 내리고 살기에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각자 나름대로 맞는 생활방식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도시에서, 또 어떤 사람들은 숲에서 사는 것이 어울린다. 하지만 집 안 살림만 아니라 마음까지 미니멀리스트의 생활을 하기란 노력이 필요하다. 그건 어디에서 사느냐 하는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어디에 살든, 어떤 형편에 있든 자족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감사 없이 자족할 수는 없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나는 성경 구절이 있어 적어본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12~13)

숲속의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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