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흐름, 그 단상

그리 오래 살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세상과 세월이 흘러가는 것을 보면 어쩐지 점점 그 속도가 빨라지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첫 돌을 맞는 아기의 일 년은 평생이지만 팔십을 산 사람의 일 년은 1/80에 불과하다. 그 시간을 어떻게 절대적으로 측정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보다도 더 절실한 것은 이런 변화들이 어떤 종국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아이들 말로 하자면 어떤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시간의 흐름, 그 단상

‘너도 신이 될 수 있다.’는 속삭임은 인간으로 하여금 선악과를 먹게 했고 바벨탑을 쌓게 했다. 세월이 흘러 사람들은 생각의 바벨탑을 쌓기 시작했다. 계몽주의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인간 이성의 발자취는 신의 자리에 인간을 놓으려는 끊임없는 시도다. 새로운 세상, 새로운 시대를 표방하는 그들은 인간을 신의 자리에 놓기 위해 사람이 지닌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역설한다. 이성의 힘을 찬양하던 시절이 지나 이제는 숨어있는 힘, 잠재력을 이야기한다. 내면을 살피고 나도 알지 못하던 무의식을 개발하라고 한다. 개봉되지 않은 힘이 개발되었을 때의 무한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끊임없이 ‘나’에 집중하게 한다. 나만 바라보게 한다.

철학에서 시작된 이런 운동은 각종 학문과 예술, 대중문화로 이어졌다. 세계관이 바뀌고 생활이 바뀐다. 경향이 바뀐다. 새로운 경향이 다수가 된다. 다수는 힘을 갖는다. 새로운 물결에 휩쓸리지 않으면 고루하고 뭘 모르는 막힌 사람이 되고 싫어도 그런 문화에 잠겨 살 수 밖에 없게 된다. 다수가 대다수가 되면 소수를 낙인찍을 힘이 생긴다. 전에는 바르고 곧다고 평가받던 사람들이 앞으로는 뒤쳐진 존재, 나아가서는 해로운 존재로 뒤집히는 순간이 온다. 가치관은 이미 바뀌고 있다. 정당성, 명분 부여만 남았다.

그런 마지막 종지부를 찍기 위해 남겨둔 하나의 수가 있다. 바로 종교다. 사람에게는 영원을 추구하는 본성이 있어 열심히 길을 찾는다. 그 길의 종착지가 좋은 곳이길 바라며 각기 제 길로 간다. 길은 여러가지나 결국 이르는 곳은 하나라고 한다. 종교로 비롯된 지구 곳곳의 분쟁을 가리키며 종교가 하나되는 세상, 분쟁이 없는 세상을 이루자고 한다. 반대하는 사람은 평화를 반대하고 분쟁을 좋아하는 위험한 무리가 된다. 공동의 선을 위협하는 해로운 무리, 격리되고 없애야 하는 존재가 된다. 로마제국의 기독교 박해나 일제시대 신사참배를 반대했던 교인들에 대한 박해가 되풀이 되지 않겠는가. 무서운가. 사실 그것보다 두렵고 떨려야 할 것은 따로 있다. 바로 마지막 심판이다. 하나님과 독대하는 그 순간을 지금 나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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