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했던 내 이름

나는 내 이름이 정말 싫었다. 지현이, 지연이… 비슷한 이름 중에도 여자 답고 예쁜 이름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다른 친구들 이름은 다 그런 예쁜 이름인데. 내 이름만 남자 이름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렇게 느끼게 된 것은 아마 이름이 같았던 아이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아주 어린 시절,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아이들은 다 남자아이들이었고 게다가 하나같이 근사함과는 거리가 먼 아이들이었다. 선생님께서 이름을 부르면 그런 말썽꾼들과 함께 벌떡 일어나는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아이들은 어김없이 킥킥거렸고, 그땐 왜 그랬는지 그런 것들이 정말 너무나 창피했다. 이름을 지어 주셨다는 외할아버지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이름 때문에 속상한 나머지, 나중에 커서는 꼭 이름을 바꾸고야 말리라는 결심을 하며 세월을 보냈다.

싫어했던 내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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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내게 생각을 바꾸게 한 일이 있었으니, 그것은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영어회화 선생님과의 짧은 대화였다. 20대의 어느 날이었던가, 집 근처에 있는 영어학원에서 회화수업을 듣기 시작했는데, 하나씩 영어이름을 정해 발표하는 순서가 있었다. 그 많은 영어이름 가운데 어떤 이름으로 해야 최대한 흔하지 않고, 예쁘고, 지적이고, 싼 티 나지 않고, 우아하며 그리고도 귀여운 느낌이 살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하지만 좀처럼 정할 수 없었고, 드디어는 선생님께 직접 물어봤다. “제 이름은 이재현이라고 하는데, 어떤 이름으로 해야 어울릴까요?”

그 선생님은 내 이름을 몇 번 되뇌더니, 지금 이름이 어감도 로맨틱하고 충분히 매력적이므로 굳이 영어이름으로 바꾸지 않아도 된다고 대답했다. 어느 누가 아무리 말해도 믿어지지 않던 것이 아무 관계 없는 외국인 강사의 한 마디에 말끔히 해결되다니 참 우습다. 나랑 아무 관계가 없으니  구슬리거나 위로함 없이 객관적으로 말해줄 거라 여겨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땐 정말 Ann 뒤에 e 하나 더 붙여 Anne을 만들고 싶어하던 빨간 머리 앤의 심정이 너무나도 잘 이해되고 절절히 공감하던 시절이었다. 나중에 결혼을 하고 시어머니께서 ‘잘 사는 이름’이라고 돈을 주고 작명소에서 이름을 새로 지어다 주셨다. 그런데 그 이름이 공교롭게도 어렸을 때 내가 원하던 이름 중 하나인 ‘지현’이었다. 남자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편하게 집에서 살림하면서 다복하게 지내는 이름이라나. 그런데 또 그런 설명을 듣고 보니 원하던 그 이름이 청개구리처럼 싫어졌다. 사람의 마음이란 어제 오늘이 다른 것인가 보다. 지금도 지현이란 이름은 내가 좋아하는 이름 중 하나다. 하지만 내 원래 이름을 버려가면서까지 택하고 싶은 이름은 아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름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쭉 써온 이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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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맺는나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10)' 고백의 기쁨을 함께 누리고자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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