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멜렉 Abimelech

성경에는 아비멜렉이라는 이름이 4번 나온다. 창세기 20장, 26장, 사사기 8, 9장, 역대상 18장이다. 사사기에 나오는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아들로 권력욕에 형제들을 죽인 사람이다. 역대기에 나오는 아비멜렉은 다윗 왕 때의 대제사장이다. 이들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창세기 20장과 26장에 나오는 아비멜렉은 과연 어떨까?

이삭이 만난 아비멜렉

26장에는 이삭이 흉년을 만나 그랄 땅으로 내려가 사는 대목이 나온다. 이삭의 아내 리브가도 그 미모가 사라에 못지않게 대단했나보다.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이삭도 자기 아내를 탐내는 사람들이 자기를 죽일까봐 리브가를 누이라고 말한다.

이삭이 거기 오래 거하였더니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 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정녕 네 아내여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를 인하여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 (창세기 26:8~9)

그렇지만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들킨다. 잠깐! 이상하다. 그랄 땅을 다스리는 아비멜렉이라구? 어디서 들었던 이름인 것 같은데?

아브라함이 만난 아비멜렉

다시 창세기 20장으로 가보자.

아브라함이 거기서 남방으로 이사하여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하며, 그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보내어 사라를 취하였더니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취한 이 여인을 인하여 네가 죽으리니 그가 남의 아내임이니라. (창세기 20:1~3)

역시 아브라함이 그랄 땅으로 갔을 때 만난 왕의 이름 역시 아비멜렉이었다. 이때 사라는 89세였다(89세의 할머니가 예뻐 서로 차지하려고 했다는 것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대홍수 이후 갑자기 수명이 줄어들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900살은 가뿐히 넘겼던 것을 생각하면, 그때의 노화 속도가 지금과는 달랐겠거니 짐작된다).

리브가가 이삭을 낳은 것이 90세였고(창세기 21:5), 37년 뒤인 127세에 세상을 떠났다(창세기 23:1). 이삭은 40세에 결혼해(창세기 25:20) 60세에 에서와 야곱 쌍둥이를 낳았다(창세기 25:26). 에서는 사냥꾼으로 자랐다(창세기 25:27).

이삭 가족이 흉년 때문에 그랄 땅으로 이사한 것은 에서가 사냥꾼으로 자라난뒤 의 일이고, 에서가 40이 되어 결혼(창세기 26:34)하기 전의 일이다. 대략 에서가 스무 살에서 마흔 살 사이로 생각하면, 이삭의 나이는 80에서 100세로 짐작된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그랄 땅에서 아비멜렉을 만났을 때로부터 이삭이 아비멜렉을 만났을 때까지도 역시 80~100년이 흐른 셈이다. 아브라함이 만난 아비멜렉과 이삭이 만난 아비멜렉이 동일 인물인 걸까 아니면 다른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블레셋 왕 아비멜렉

찾아본 결과, 아비멜렉(히브리어: אֲבִימָלֶךְ, Ǎḇîmeleḵ)은 개인의 이름이 아니었다. 이집트의 왕을 파라오, 페르시아 왕을 다리우스라고 했던 것처럼, 블레셋 왕을 가리키는 공통적인 호칭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창세기에서 맨 처음에 언급된 블레셋 왕은 그랄의 아비멜렉 왕으로서 이삭 시대에는 아비멜렉 2세로 계성되었다. 이와 같이 아비멜렉이라는 이름은 페르시아의 “다리우스”라는 이름과 같이 반복해서 나타나는 일조의 왕가(王家)의 이름이었던 듯하다.

(성경난제 백과사전 4, 글리슨 아처)

히브리 말로 아브 אַב는 아버지, 아바 אבא는 아빠다. 멜렉 מלך은 왕이다. 아비멜렉의 뜻은 ‘아버지는 왕’, ‘아버지 왕’이라는 뜻이다.

인신 공양으로 악명높은 몰렉(몰록, 말곰, 그모스)도 몰렉과 그 어근이 같다1. 페니키아 사람들이 섬겼던 이 우상은 페니키아 해양 문명이 닿는 지중해 일대에 퍼졌다. 카르타고(튀니지)의 타니트 신전 유적 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는 선진 문명 지역이었다. 지중해 일대 국가는 페니키아로부터 이 선진 문명을 받아들였다. 그리스 로마신화의 많은 이름들 역시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모스에서 영향을 받은 크로노스(로마신화의 사투르누스 Saturnus, 영어로는 Saturn) 역시 아이들을 잡아먹는 공통점이 있다.


창세기를 읽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어렸을 때 옛날이야기 처럼 듣던 이야기들이 자꾸 나오니 재미있지 않을 수가 없다. 요즘 현대어 성경을 필사하고 있는데, 이 성경은 영어 성경이 아니라 성경 원문을 요즘 우리가 쓰는 말로 옮긴 거라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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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s

  1. 용어사전 몰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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