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시기를 잘 넘긴 두 과부 이야기

어려운 시기를 잘 넘긴 두 과부 이야기 그리고 엘리야와 엘리사

어려운 시기를 잘 넘긴 두 과부 이야기 그리고 엘리야와 엘리사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에나 있다. 그만큼 인류가 많은 고비를 겪어 넘겼다는 뜻이겠다. 그중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잘 아는 이야기 하나가 성경에 있다. 이집트 왕자 애니메이션으로 잘 알려진 요셉 이야기다. 7년이나 흉년이 들다니, 매년 풍작이었던 우리나라에 사는 나로서는 그저 전래동화처럼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좀 다르다. 어쩐지 위기의식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환경파괴, 기후변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방위적으로 터져 나오는 문제로 뉴스나 신문 보기가 싫어졌다.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더 힘들었던 시절, 믿음으로 그 고비를 넘긴 두 과부가 생각났다. 마지막 남은 떡 하나를 아들과 나눠 먹고 죽어버리겠다던 사르밧 과부. 그리고 죽은 남편이 남긴 빚 때문에 빚쟁이에게 두 아들이 끌려갈 처지에 놓였던 과부 두 사람이다.

혼자 남은 여자는 살기 힘들다. 좋은 시절을 살기도 힘든데 어려운 시절엔 말할 필요도 없다. 자식이 딸리면 책임은 늘어나고 자유는 줄어든다. 그 여인들은 어떻게 그 고난의 시기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을까.

어려운 시기를 잘 넘긴 두 과부 이야기 그리고 엘리야와 엘리사-사르밧과부

1. 사르밧 과부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

저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가로되, ‘청컨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나로 마시게 하라.’ 저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저를 불러 가로되 ‘청컨대 네 손에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저가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저와 엘리야와 식구가 여러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열왕기상 17:9~16)

가.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정을 다 알고 계신다 – 우연이란 없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같은 하나님의 사람이나 왕처럼 높은 사람뿐 아니라,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 하나하나의 사정을 모두 다 알고 계신다. 사르밧(누가복음 15장에는 사렙다로 나온다)에서 곧 죽을 작정으로 있던 가난한 과부의 마음속 생각까지 헤아리고 계신다.

또 얼마 뒤면 이 아들이 죽을 것도 아시고 살릴 사람까지 안배해 보내셨다. 인간으로서는 우연이라고 말하겠지만, 사실 긴 안목으로 보면 세상에 우연이란 없다.

나. 내가 모자란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쓰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내게 모자랐던 부분을 능력으로 만들어 주시기도 한다. 사르밧 과부는 왜 죽으려고 했나. 먹을 것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없다고 생각했던 그것이 능력이 되어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를 먹일 수 있었고, 또 결과적으로 자기 아들도 살 수 있었다.

무엇이 이것을 가능하게 했나.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사랑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다. 내게 가장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것이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것이 능력이 되고, 그것으로 어려운 고비를 넘을 수 있다.

다. 순종이 가장 큰 능력이 된다

겨우 한 끼 될만한 반죽을 선뜻 순종하는 마음으로 내어놓은 사르밧 과부의 믿음은 정말 대단하다. 하지만 그걸 받아먹은 엘리야도 대단하다.

하나님이 당분간 몸을 의탁하라고 보낸 집은 사르밧의 유지도 평범한 가정도 아니고 정말 찢어지게 가난한 집이었다. 마지막 양식을 탈탈 털어먹고 죽으려는 과부의 집이었다. 그런 집의 마지막 식량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먹어버렸다. 믿음이 아니었으면 그 불쌍한 여인의 마지막 떡을 목으로 넘길 수 있었을까.

순종은 내게 믿음이 있다는 증거이고, 그것은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이 된다. 왜냐하면 순종은 고백이기 때문이다. 사르밧 과부는 마지막 떡을 내어놓음으로써 떡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있음을 증명한 셈이다.

어려운 시기를 잘 넘긴 두 과부 이야기 그리고 엘리야와 엘리사-기름병

2. 끊이지 않고 나온 과부의 기름병

선지자의 생도의 아내 중에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가로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채주가 이르러 나의 두 아이를 취하여 그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엘리사가 저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고하라.’ 저가 가로되 ‘계집종의 집에 한 병 기름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가로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라. 빈 그릇을 빌되 조금 빌지 말고,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여인이 물러가서 그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저희는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들이 가로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고한대, 저가 가로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 (열왕기하 4:1~7)

이 이야기는 엘리야의 제자 엘리사에게 일어났던 일이다.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빚을 졌던 제자는 죽고, 그 빚을 갚지 못하자 빚쟁이는 남은 두 아들을 빚대신 끌고 가겠다고 하는 상황이다. 제자의 아내는 남편의 스승 엘리사에게 와서 구조를 요청한다. 이 이야기를 읽다 생각나는 점을 몇 가지 정리해 보았다.

가. 무거운 짐은 하나님 앞에 내려놓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

걱정거리는 하나님 앞에 내려놓자. 밤새 고민하고 힘들어했던 일도 기도 후에 접근하면 놀랍도록 쉽게 해결되는 경험을 종종 하게 된다. 혼자 힘들어하지 말자. 모든 것을 지으시고 아들까지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쉬게 하시겠다고 부르고 계신다.

나. 우리가 가진 작은 것을 쓰신다

이 여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기름 한 병 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사용해 기적을 일으키셨다. 사르밧 과부에게 남은 마지막 끼니,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두 개에 불과했던 한 아이의 도시락, 소년 다윗의 손에 들린 돌멩이 하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진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을 들어 능력으로 쓰신다.

다. 믿음의 자녀로 키운 어머니

그릇을 빌려오라고 했을 때도, 문을 닫으라고 했을 때도 그 과부의 아들들은 순종했다. 과부 어머니 혼자 순종했던 것이 아니었다. 두 아들도 함께했다.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

어려운 형편에서 아이들 모두 순종하는 믿음의 자녀로 키운 어머니가 대단해 보였다. 비록 당장은 경제적으로 몹시 어려웠을지라도, 그 고비를 넘어 장성한 아들들은 더욱 큰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지 않았을까.

열왕기나 역대기를 읽다 보면, 왕의 이름 옆에 늘 보이는 이름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왕의 어머니다. 그 어머니의 이름은 무엇이고 어디 출신인지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유대인의 법을 할라카 Halakhah라고 한다. ‘사람이 걷는 길’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전통적으로 부모가 모두 유대인이면 자식 역시 유대인이다. 하지만 한쪽만 유대인일 경우 아버지는 소용없다. 어머니 혈통만 인정된다.1

부왕의 믿음이 좋아 ‘다윗의 길로’ 행했더라도 모후가 우상을 섬기는 이방여인이면 아들은 그 어머니의 영향으로 악한 왕이 되었다2. 반대로 아버지가 ‘아합의 길을 걸었던’ 왕이었더라도 어머니로부터 바른 교육을 받았을 경우엔 훌륭한 왕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3. 그러니 어떻게 신앙에 있어 모계를 따르지 않을 수 있을까.

Footnotes

  1. 2009년, 영국 법원은 유대인 아버지가 낸 차별금지법위반 소송에서 전통을 깨고 부계측 자녀도 인정한 판결을 내린 사실도 있다.
  2. 르호보암의 어머니는 암몬 사람이었고, 여호람의 어머니는 아합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였다
  3. 히스기야의 아버지는 유다에서 두 번째로 악한 왕 아하스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제사장 스가랴의 딸 아비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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