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90편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성전이 완성되었을 때 솔로몬은 나라의 결국을 통찰하고 그 운명을 바꾸기 위해 기도 했다. 엄청난 확신이 없었다면 온 백성이 모인 가운데 국가 멸망을 두고 기도할 수 있었을까. 솔로몬의 이 엄청난 확신은 어디서 나왔을까? 또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라고 기도한 다윗의 확신은 어디서 나왔을까?

주의 백성, 주의 산업

그 답은 열왕기상 8장 51절에 나온다. 하나님 백성은 어떤 사람인가. 바로 주의 백성, 주의 산업이다.

저희는 주께서 철 풀무 같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주의 산업이 됨이니이다 (열왕기상 8:51)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소유다. 베드로전서 2장에도 우리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나온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9)

솔로몬은 정체성과 관계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그렇게 담대히 기도할 수 있었다.

우리와 하나님은 분리할 수 없는 연합관계다. 언약 관계에 있는 우리는 결코 따로 존재할 수 없다. 성령 안에서 영적인 연합. 이것이 우리의 시작이고 출발이다. 능력 있는 기도를 할 수 있는 근거와 비밀이 여기에 있다.

다윗의 기도 –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시편 90편

이런 기도는 솔로몬만 했던 것이 아니었다. 시편 90편을 보자.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도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과의 공동운명체임을 전제로 기도를 했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시편 90:3)

티끌은 파멸을 의미한다. 사람의 죄성 때문이다. 이것은 창세기 3장, 선악과 사건으로 영 죽을 수 밖에 없게 된 것을 가리킨다. 인생이 곧 슬픔이다. 3절부터 12절까지는 단순한 푸념이 아니다. 죄만 짓다 가는 인생에 대한 안타까움, 슬픔을 토로하는 것이다.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우리를 곤고케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년수대로 기쁘게 하소서 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임하게 하사 우리 손의 행사를 우리에게 견고케 하소서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하소서 (시편 90:13~17)

그런데 13절부터 갑자기 톤이 바뀐다. 분명 3절에 하나님께서 티끌로 돌아가라고 하셨다고 했는데, 13절에서는 ‘돌아오소서’를 외친다. 마치 “그런데요! 못 돌아가요. 우린 하나잖아요. 하나님께서 와주세요!” 하는 것만 같다.

쫓아낸 하나님께 난 못 가요. 하나님이 와주시라고 하다니. 정말 뻔뻔스러울 정도로 담대한 기도가 아닌가. 그뿐이 아니다. 거기에 더 나아가서 평생 즐겁고 기쁘게, 고생한 날 수 대로 기쁘게, 종과 자손까지도 책임져 주시고 하는 일마다 잘 되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기도를 좋아하신다. 믿음을 고백하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무엇에 대한 믿음, 어떤 믿음인가. 백번 얻어맞을 수 있다. 하지만 결코 분리될 수는 없다는 고백. 언약으로 연합된 결코 뺏길 수 없는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다. 내 자격 조건과는 상관없고 또 파기될 수 없는 운명공동체임을 확신했기에 이런 기도가 나올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무한히 용서하신다.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할까 묻는 베드로에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신다. 이것은 490번 용서하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께 영원히 용서받는 존재 아니니? 너희도 그렇게 해라” 하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시편 46편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찌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셀라) 시편 46:2~3

다윗은 세상이 뒤집어져도 우리 관계는 변치 않는다고 노래하고 있다. 이것은 짧지만 어마어마하게 큰 확신을 나타낸다.

솔로몬과 다윗의 기도는 이런 확신에서 나왔다. 이들의 기도는 역사와 운명을 바꿨다. 우리도 할 수 있다. 우리 역시 운명과 역사를 바꾸는 기도를 하는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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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과 역사를 바꾸는 기도 1-솔로몬의 기도


이 글은 2020. 4. 26. 내수동교회 주일설교 ‘운명과 역사를 바꾸는 기도(2)‘(담임목사 박지웅)를 듣고 나름대로 정리, 요약한 글입니다. 설교내용과 동일하지 않습니다. 설교 원문이나 동영상 자료가 필요하신 분께서는 링크된 페이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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