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처음 가신 곳이 성전이었다. 예루살렘 입성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한 결정적 사역, 바로 십자가를 지신 이유 때문이었다. 따라서 성에 들어가서 첫 번째로 가신 곳이 성전이라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성전을 방문하신 것은 그저 그런 ‘방문’이 아니었다. 예수님께서는 곧 십자가를 지셔야 했다. 성전 방문은 이를테면 접수나 인수, 나아가 회복의 역사라는 의미가 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하신 일을 통해 ‘성전은 이렇게 회복되어야 한다’ 하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는 바로 성전 기능을 회복시키는 것에 있었다.

1. 성전에서 하신 일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며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두목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침을 찾지 못하였더라.

(누가복음 19:45~48)

  1. 성전에 들어가사
  2.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며
  3. 선언하셨다 : “내 집은 기도의 집이다”
  4.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2. 성전 건물이 문제가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고 내 집은 기도의 집이라고 선언하셨다. 예루살렘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 본질적 기능에 문제가 있었다. 성전은 우리 모두 가져야 할 기능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본보기, 일종의 모델 하우스였다.

가. 인생의 고통이 찾아온 이유

우리 인생에 고통이 들어온 것은 때문이다. 죄가 망가뜨린 것이 무엇인가. 인간이 갖고있는 성전기능을 망가뜨렸다. 성전기능은 다른 것이 아니다. 바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능이다.

우리는 기도로 우리 마음을 올려드리고, 하나님은 이에 응답을 내려보내신다. 이것은 어떤 종교기능이 아니다. 인생 존재 자체다. 올라가는 게 망가지니 내려오는 것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인생과 온 우주가 저주와 눈물, 탄식 아래 있게 되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로마서 8:22)

나. 성전 건물이 아니라 본질이 문제다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께선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 여호와의 전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예레미야 7:4)

너희가 도적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좇으면서,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예레미야 7:9~10)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예레미야 7:11)

그것은 예레미야나 예수님 때, 그리고 우리가 사는 지금이나 다 마찬가지다. 교회와 예배당이 다르다. 또한 교회가 교회다워야 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듣고, 부르실 때 대답해야 한다1. 교회답지 않은 교회, 성도답지 않은 성도의 기도는 듣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고 하신다.

3.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성전의 문제는 건물이 아니라 본질적 기능에 있다고 하셨다. 더 나아가 우리 자신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신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린도전서 3:16~17)

더 나아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자는 멸한다고 한다. 무엇 때문인가. 예수님께서 왜 오셨나. 성전 기능 회복을 위해 오셨다. 어떻게 회복하셨나. 십자가에서 핏값을 주고 회복하셨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다. 다시 더럽히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더럽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기 전에 우리는 스스로 점검해야 할 것이 있다. ‘내 안에 성전기능이 활발하게 살아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성전을 더럽히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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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0.4.6. 고난주간 새벽기도회, (내수동교회, 박지웅 담임목사)를 드리고 내용을 나름대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제 생각과 느낌이 들어있어 설교 본문과 다릅니다. 설교 동영상이나 음성 자료가 필요하신 분들은 링크된 페이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Footnotes

  1. 예레미야 7:13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지 아니하였느니라

반갑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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