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후가 걸은 길

바알의 당 있는 성으로 가서 바알의 당에서 목상들을 가져다가 불사르고, 바알의 목상을 헐며 바알의 당을 훼파하며 변소를 만들었더니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나, 이스라엘로 범죄케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열왕기하 10:26~29) – 예후가 걸은 길

예후가 걸은 길
Jehu of Israel, Guillaume Rouille, wikipedia

요즘 열왕기를 읽고 있다. 얼마전에 열왕기하 10장을 읽었는데, ‘예후가 걸은 길’이 며칠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예후는 요람(아합의 아들) 왕을 배반하고 북이스라엘의 열 번째 왕이 된 인물이다. 열왕기에서 나쁜 왕에게 붙는 표현이 있다. 바로 ‘여로보암의 길로 행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여로보암 보다 더 악한 왕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아합 왕이다.

아합의 길

아합은 페니키아의 도시국가 가운데 하나인 시돈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했다. 이세벨은 손꼽히는 악녀로 이름 높은데, 그 배경에는 그가 시집오면서 이스라엘로 들여온 페니키아의 잔인한 우상 숭배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자식을 산채로 바치는 풍습이다. 아합과 북이스라엘은 바알을 섬기기 시작했다. 엘리야 당시엔 이세벨을 위한 바알 선지자가 450명이나 될 정도였다.

예후는 바알을 위한 제사를 바치겠다며 바알을 섬기는 사람들을 한데 모아 숙청했다. 바알과 아세롯 신당과 신상을 헐고 불살라 변소로 만들어버렸다. 철저하게 바알을 뿌리 뽑았다.

그런데 그 뒤가 반전이다. 바알을 뿌리뽑고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것 같았지만, 예후는 의외의 모습을 보인다. ‘여로보암의 길’에서 떠나지 않았다. 여로보암의 길은 어떤 길인가.

여로보암의 길

통일왕국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나뉘었다. 북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은 곤란하게 되어버렸다.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은 그때까지 동일한 하나님을 섬겼다. 제사를 드리기 위해선 솔로몬이 지은 성전에 가야 했다. 그런데 그 성전이 예루살렘에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싫어도 남 유다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것이 되고, 왕권은 약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여로보암은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가지 않도록 꾀를 냈다.

  • 금송아지 우상 둘을 만들어 벧엘과 단에 각각 하나씩 두었다
  • 레위 사람이 아닌 일반인을 제사장으로 삼았다
  • 백성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했다
    • 금송아지 우상을 애굽에서 백성들을 인도해내신 하나님이라고 가르쳤다
    • 하나님께서 명하신 절기를 무시하고 멋대로 날짜를 정해 따르도록 했다

어리석은 인간의 꾀는 처음부터 끝까지 악하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야고보서 1:15)고 했다. 형제를 실족케 하는 것은 연자맷돌을 목에 걸고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나을(누가복음 17:2) 정도로 끔찍한 죄다. 여로보암이 걸었던 길이 바로 이런 길이었다.

예후가 걸은 길

개혁을 하는 것처럼 보였던 예후가 걷게 된 길 역시 여로보암의 길이었다. 여로보암의 죄를 그대로 따랐다. 어째서 그랬을까? 죄인 줄도 몰랐을까. 바알을 훼파한 그가 과연 몰랐을 것 같지는 않다.

아깝다. 바알, 아세라 우상을 무너뜨린 그 기세로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나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다. 여로보암과 똑같은 욕심 때문에. 지도자를 잘못 만난 백성은 얼마나 불쌍한지.

남 유다에는 악한 왕도 있었지만 선한 왕도 있었다. 하지만 북 이스라엘에는 선한 왕이 하나도 없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예후가 걸은 길
앗시리아 왕 살마네셀 3세에게 조공을 바치는 예후, Black Obelisk of Shalmaneser III from Nimrud (circa 827 BC) in the British Museum (London) @wikimedia

내가 가는 길이 종착지를 결정한다

출발점이 같다고 종착지마저 같은 것은 아니다. 똑같이 서울역에서 출발해도 어떤 열차를 타느냐에 따라 종착지가 달라진다. 내가 지금 행하는 길이 어떤 길이냐에 따라 내가 도착하는 곳이 달라진다.

여로보암의 길을 걸었던 북 이스라엘은 BC722년 앗시리아에 멸망당했다. 나라만 망했을까. 백성도 죽는다. 몸만 죽었을까. 영적으로도 망했다.

남 유다는 어땠을까. 남 유다의 왕 여호람은 북 이스라엘의 공주 아달랴와 결혼했다. 남과 북이 국혼으로 맺어졌으니 전쟁도 없고 평화롭게 통일된 나라가 되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달랐다.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은 계속 있었다. 영적으로 더럽혀지기만 한 셈이 되었다.

생각해 보자. 아합과 이세벨의 딸이 다음 왕의 어머니가 되고 할머니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세벨에게 교육받은 딸이 과연 어떤 교육을 했을까. 성경은 아들 아하시야 왕이 ‘아합의 집 길로 갔다’고 말한다. 남 유다는 BC 586(또는 587)년 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당했다.

우리의 길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온전한 다른 길을 주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그분께선,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요한복음 14:6)고 하셨다.

누가 우리에게 ‘도를 아십니까?’ 하고 물으면 우리는 ‘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그 길을 걷고 있는지, 길을 잃고 헤매는 다른 이들에게도 그 길을 알려주고 있는지 묻는 말에도 당당하게 답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자고 다짐한다. 때론 한눈팔지라도 잘 걷고 있다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가고 있다고.

road to heaven
road to heaven, Iceland @Andrés Nieto Porr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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